일본에서 의외로 마이너하던 전쟁 무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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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쇠뇌
중국이나 한국의 경우 쇠뇌 사용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부터 중국에서는 지금의 기관단총에 해당하는 연노부터 해서 야포에 해당하는 대형 노포까지 만들었고
한국 역시 신라가 장창과 쇠뇌을 이용한 방진 전술로 중국 당나라를 패배시킨 바 있고, 고려와 조선도 지금의 저격총 역할을 하는 각궁을 결합한 쇠뇌, 기관총 역할을 하는 수노기 등을 개발했죠.
그러나 일본은 헤이안 시대 이후 조용조제도가 무너지고 중앙정부가 유명무실화되면서 자취를 감춥니다.
중앙정부가 나서서 감독해야 할 만큼 대량으로 만들기 복잡하고 그러면서 사용하기 쉬워 무사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는 무기를 만들 이유가 없던 거죠.
2. 도끼
물론 일본도 도끼를 안 쓴건 아닌데, 연장으로써의 도끼가 아닌 전투용 도끼가 아주 마이너했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은 전투용으로 부월이나 대부 등 거대한 배틀엑스나 투척용 도끼는 물론이고, 도끼에 창날을 결합한 장병기도 참 많이 쓰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나기나타나 야리, 카타나, 테츠보, 심지어는 망치까지도 무기로 쓰는데 비해 도끼는 드뭅니다.
기껏해야 가끔 마사카리라고 하트 모양 구멍이 뚫린 도끼가 가뭄에 콩나듯 기록화나 기록에 나오는 정도?
뚜렷한 이유는 일본에서도 논란인데 도끼는 찍는 공격만 가능하고 평민들이나 쓴다는 편견 때문이 아닌가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3. 방패
정확히는 손으로 들고 쓰는 방패가 드뭅니다.
일본에서는 방패는 보통 유럽의 파비스처럼 나무를 펴서 설치하는 대형 방패 카키타테, 훗날 조총을 막기 위해 대나무 다발을 묶은 타케타바 정도나 쓰였습니다.
작은 방패는 역시 헤이안 시대 이전에는 간간히 보였으나, 이후 말을 타고 활을 쏘고 나기나타나 타치 등 양손 무기를 쓰는 무사들이 득세하면서 초 마이너한 무기가 되었죠.
대신 무사들은 방패를 버린 대신 갑옷의 소데란 부분을 앞으로 늘어뜨려 방패로 삼았는데, 일본 갑옷의 어께에 달린 네모난 장갑판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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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ECASTLE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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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망꼬망1님의 댓글
찍는공격만 가능하고 평민이 써서 피했다고 한다면 망치도 안써야 하는게 맞을것같아서요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kmaster님의 댓글의 댓글
중세 봉건 시대의 전쟁은 일반 농민이나 자유민이 참여하는 전쟁이 아니라 지배계급인 기사나 무사들이 중심이 되는 전쟁이었습니다
대규모의 총력전 개념이 아니었기에 소수의 무사나 기사 그리고 맷앰암즈 용병 같은 소규모 국지전 중심이었죠
당시 신분제 사회이고 전투의 중심이 기사 중심이다 보니 일반 농민들이나 자유민들이 공구로 많이 사용하던 도끼가 주력 무기로 사용되는 경우는 적었어요 단 농민병 위주의 러시아 쪽 슬라브계열이나 북유럽 바이킹 쪽은 도끼를 주력 무기로 많이 사용하긴 했습니다 이쪽은 서부 유럽 국가들에 비해 변방이었고 기사도와 카톨릭 문화가 늦게 전파된 편이라 바이킹 시대 부터 전투에서 많이 사용하던 도끼에 대한 터부가 좀 적은 편이었죠
철퇴나 도리깨의 경우 종교적인 이유와 당시 갑주에 대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호평을 많이 받았죠
기사들 같은 경우 노르만 계열의 영향을 받은 경우 아니면 도끼는 그렇게 잘 사용되는 수단은 아니었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산지 + 징집병 위주의 중앙집권적 군대였기에 일본과 다르게 농민들에게 익숙한 도끼와 도리께 등이 흔하게 사용되었지요 거기에 도끼는 한반도에서는 왕권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유럽 같은 경우는 철퇴가 왕권의 상징으로 많이 쓰이더군요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MoonKnight님의 댓글
자쿠에 달려있는 그거죠??
파키케팔로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