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오십이 넘어 ‘호밀밭의 파수꾼’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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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게 된 계기.
우리집에는 아직 질풍노도의 시기를 관통중인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딸이 있습니다. 의사결정의 최고권자이자 집안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막후의 권력자. 얼마전 나는 아이와 매우 사소한 일로 다툰일이 있었죠. 평소 아이의 행동이 못마땅한 나로서는 그 순간 아빠의 페르소나를 창문밖으로 벗어 던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거친표현으로 뚜껑이 열리고 말았죠.
나는 아이의 말투를 들을 때마다 유독 나에게만 공격적이고 감정에 기스를 내는 사악한 말투로 대할까? 라는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그렇게 서먹한 몇일이 흐른 후, 슬그머니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손을 내밀었고 아이도 모른 척 나의 말을 받아 주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놀라고 깨닫게 되는건, 아이의 언행을 통해 깨달았던건 거울속의 18살의 내가 나를 보는듯한 두려움이 엄습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내게 말했습니다. "아빠에게 지고싶지 않아" .
공격적인 언사로 나를 대할 때 그 모습은 바로 나의 숨겨진 자아였고. 자식은 아빠와 엄마의 장.단점만을 가져가서 DNA를 구성한다고 합니다.특정 언행을 볼때 내 안의 숨어있던 또 다른 인격체인 억눌린 자아(그림자 자아)가 아이의 행동을 통해 엿볼때 나는 그 사실에 놀라게 되고 상대에게 화를 낸다는 것이였죠.
나 역시 심한 사춘기를 앓았던 시기를 거쳐 오십의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얼마전 성장소설로서 유명한 J.D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습니다. 아이에 대한 깊은 '사나운 애착' 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플롯
고등학교 소년인 홀든 콜필드 (Holden Caulfield). 그는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2박 3일의 여정을 일인칭시점으로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한 글이다. 총 2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제목이 왜 호밀밭의 파수꾼인가 하는 것은 소설의 말미인 22장에 묘사가 되어있다.
내용
성적은 나쁘고, 친구와 교사와도 사이가 원만하지 않아 펜시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주인공 홀든 콜필드(Holden Caufield)는 자신의 친구인 스트레들레이터가 자신이 한때 좋아했던 제인과 데이트를 했다는 이유로 그와 거친 몸싸움을 나눈 후 학교를 뛰쳐나와 뉴욕으로 향한다. 어차피 퇴학은 정해져 있었기에. 가는 여정내내 택시를 타고 뉴욕의 술집, 호텔, 클럽 등을 전전하며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려 하지만, 어딜 가나 위선자들이 판을 치는 광경을 목격한다. 결국 계속되는 환멸을 느낀 주인공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허드렛일을 하며 일생을 보낼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고 아껴주고픈 여동생 피비(Phoebe).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으로 들어간다. 어린 동생(피비)은 순수함과 자신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된 홀든은 그렇게 3일간의 가출일기의 막을 내린다.
주제.
질풍노도시기의 혼란스러움. 부모에 대한 양가적 감정.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혼자 조용히 살려고 한 주인공은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어린 동생(피비)의 순수함과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다.
인물
주인공 홀린 콜필드. 세속적이고 가식적인 세상애 대해서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는 인물이다.
어리석고 지적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경멸. 비하를 일삼는 사람들을 위선자라는 이름으로 맹폭을 가한다.
그 자신은 꽤나 고상하고 순수한 인물일 것 같지만 정작 그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가 바보라고 멍청이라고 경멸했던 사람들 보다 더 속물 같고 더 어리석은 행동들을 할 때가 많다. 거기에서 오는 부조화와 모순을 통해
청춘의 위태로운 사고를 엿볼 수 있다.
결론
청소년을 위한 성장소설이다.
그렇다면 이미 성인이 된 우리는 과연 홀든의 모습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홀든이 겪었던 혼돈과 방황을 이미 졸업하고 진정한 어른으로 살고 있는가?
이 작품의 즐거움은 언어의 강렬하고 확실한 속도감에 있다. 통속적인 지성에 대한 비판. 관용구대신 욕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고약해 보이거나 한심해 보이는 점도 있다. 어떤 파트에선 새련된 정직함이 아니라 진실은 감춘 체 피상적 불안만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들을 때 피곤함을 느낀다. 작가의 숨은 의도는 좀처럼 확인할 수 없다.
내가 읽은 성장소설 중 사랑을 다룬 책은 자기 앞의 생과 상실의 시대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삶에 대한 무한하고도 깊은 애정을 담은 소설이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등장인물들이 모든 일을 떠맡는다. 누군가는 작가의 의향을, 누군가는 반대편의 생각을 대변한다. 그들 모두에게 발언권을 줌으로써 작가는 역동성을 쥐고 있다. 자기 앞의 생에서는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아랍인, 아프리카인,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유태인, 버림받은 창녀의 자식들, 살아가기 위해 웃음을 팔아야 하는 창녀들, 창녀들의 아이를 돌보는 여자, 친구도 가족도 없는 노인, 한 몸에 여성과 남성의 성징을 모두 갖고 있는 성 전환자,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살인자…… 주인공 모모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역할을 통해 우리는 읽는 내내 작가의 역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J.D 셀린저의 콜필드의 주변인물에선 역할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십 대의 청춘의 삶과 방황을 다룬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선 와타나베 나오코 미도리를 통해 상황과 맥락 그리고 주변환경을 통해 작가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감정적 경험 혹은 통찰과 지혜를 청춘의 사랑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독자에게 전한다.
중년의 사랑에 대해 매력적으로 본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이였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일부 혹은 전부를 포기해야 한다. 지금껏 안정된 가정을 위해 살아온 가치관, 생활의 태도, 삶의 우선순위들은 모두가 바뀌는 것이다. 그것을 스스로에게 허용한다면 가장 먼저 닥치는 문제는 붕괴와 추락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중도 하차를 택한다.
사랑은 결국 성욕이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본질적 욕망에 대해 노년의 예술가는 어떻게 대하는가를 다룬 박범신의 소설 '은교' 또한
묘하게 오버랩이 된다.
결국 우린 모두 '사랑해야 한다'
헤리슨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꿈에서본거리님의 댓글의 댓글
최근에 다시 읽으니, 빠져들더군요.
저도 오십 조금 넘었습닏
강형진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