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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삼당합당에 대해서 반대로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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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린내 211.♡.202.182
작성일 2024.07.04 10:56
39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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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단 반대로 생각해보는 연습을 하면서 삼당합당에 대해서도 반대로 생각을 해봤습니다. 상대방의 주장에 반박하려면 일단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한다는 느낌으로요.


김영삼의 삼당합당…이 없이 통일민주당 혹은 평화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왔을 경우


  • 하나회 척결 다소 힘들어짐
  • 민주정의당은 결국 군부계의 영향이 절대적인 상태로 남아있음
  •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둘로 쪼개진 상황에서 민주정의당에게 대항이 가능한지 의문


등의 이유로 미얀마처럼 또다시 쿠데타가 일어났을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 들더군요.


안 그래도 삼당합당 이후에도 청명계획인가…? 여당 총재 김영삼(…) 포함해서 미행하고 쿠데타 계획 하려던거 들켰던 적 있어서 그런지, 삼당합당 없이 김영삼 혹은 김대중씨가 대통령 당선되었으면 무슨 짓을 벌였을지 모르겠다 생각도 들더랍니다.


결국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삼당합당은 대한민국이 진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는 단계에서 나타난 과도기 역할을 해주지 않았을까 - 생각으로 마무리 되더군요.


평상시에는 삼당합당에 대해서 지역갈등 고착화 및 배신 행위, 기울어진 운동장 고착화라는 점에서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한번 반대로 생각해봤는데 논리가 마음에 들진 않네요. 구멍이 너무 보이는 느낌입니다. 좀 더 자료를 찾아보고 고찰을 더 깊게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에요.


상대방 주장 이해하고 토론 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대단한건지...

댓글 12 / 1 페이지

0sRacco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0sRacco (164.♡.222.147)
작성일 07.04 11:00
제가 잘 몰라서 여쭙는데 '하나회 척결 다소 힘들어짐' 이건 어떤 근거가 있는지요?

그린내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그린내 (211.♡.202.182)
작성일 07.04 11:02
@0sRacco님에게 답글 하나회 척결은 결국 민주자유당이라는 거대한 여당의 힘과 하나회가 아닌 부산 출신 군인들의 감정을 이용하고, 같은 당인데 전두환 노태우는 봐줄 수 있다는 판단을 이용한게 아닐까 생각을 했었습니다.

통일민주당 상태에서는 당의 규모도 작아서 가능했을까 생각이 제일 기초적인 생각의 근거였습니다.

0sRacco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0sRacco (164.♡.222.147)
작성일 07.04 14:54
@그린내님에게 답글 거대 여당의 힘=집단의 힘 이전에 여당 소속 사람들하고 똥별들하고 '우리가 남이가!! 형님! 동생'!하면서 지내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아무리 여당 출신 대통령이라고 해도 그 커넥션을 깰만큼 강한 무언가를 김영삼이 가지고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쉽게 말해 김영삼은 굴러온 돌인데, 그 굴러온 돌이 똘끼 충만해서 별이란 별을 다 날리는데 개기지도 못하고 날아간 게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Drum님의 댓글

작성자 Drum (1.♡.144.122)
작성일 07.04 11:02
막줄 취지에 공감합니다.
저도 필요성을 느끼고 노력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주장만 들어서는 도통 납득이 안되는 주장도 작정하고 파고들면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는 숨겨진 추론들이 있더라구요.
물론 그 추론 과정이 주관적이다 보니 일부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걸 진실로 가정한다던지, 잘못 된 정보가 껴있다던지 하는 식이기도 하지만요.

그리고 그걸 알게되면 잘못 된 정보를 정정해주고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지점에 대해서도 추가 토론으로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높은 가닥을 잡으면 서로가 건전한 토론 의사가 있는 상태라면 어느정도 정정과 합의점이 가능하더군요.

그린내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그린내 (211.♡.202.182)
작성일 07.04 11:05
@Drum님에게 답글 숨겨진 추론 과정을 찾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다만 그게 어렵고, 그래서 토론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Drum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Drum (1.♡.144.122)
작성일 07.04 11:09
@그린내님에게 답글 그정도로 파고들려면 상대방과 작심한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많이 어렵더군요.
대체 방법으로 상대 주장을 상대 입장에서 혹은 말이 되게 셀프로 추론해가며 퍼즐을 맞춰서 상대에게 이게 맞냐고 역으로 물어보기도 하구요.

지혜아범님의 댓글

작성자 지혜아범 (175.♡.94.20)
작성일 07.04 11:13
시간과 희생이 좀 더 발생을 했겠지만
하나회 척결은 됬을 것 입니다.
정치라는 것이 밀당의 살아있는 집합체라 합당을 하면서
우리가 모르는 뭔가의 이면의 약속이 있었겠죠
그리고 그 약속을 어느 정도 이행하다 뒤통수를 때린 것이고요
안그랬다면 자기들 근간인 하나회를 뒤집어 엎어버리는데 그냥 두손 두발 다 놓고
구경만 했을까 생각이 듭니다.
상대를 방심하게 만들어 놓고 때렸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사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아사 (118.♡.110.74)
작성일 07.04 11:14
미얀마 상황을 보고, 당시 한국 군부 상황을 생각하면 김영삼 대통령의 삼당 합당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IMF가 크긴 하지만, 분명 잘 해낸 것도 많고, 하나회 정리는 대업이라고 생각 합니다.

처키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처키 (156.♡.224.127)
작성일 07.04 12:37
가정에 또 가정에 또 가정을 대입하면 의미있는 토론이 힘들어집니당.

Typhoon7님의 댓글

작성자 Typhoon7 (118.♡.74.130)
작성일 07.04 13:32
마왕을 물리칠 힘을 얻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판타지물의 캐릭터가 떠올랐습니다.
마왕은 물리쳤지만,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 인간세계를 위협하게 된...

RanomA님의 댓글

작성자 RanomA (59.♡.254.139)
작성일 07.04 13:34
늘 하는 얘기지만, 김영삼은 그렇게 대통령이 됐지만, 아무 직책도 없는 아들이 국정농단을 하도록 놔뒀습니다. 한마디로 최순실의 선배였고, 박근혜가 탄핵당한 것과 동일한 논리로 탄핵될 수 있는 대통령이었습니다.

humanitas님의 댓글

작성자 humanitas (78.♡.45.236)
작성일 07.04 14:38
뭐 쿠데타의 가능성이 100%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쿠데타의 가능성을 막는 것은 민주화의 진전입니다. 군부가 절대적인 독립적 힘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5.18 이후 왜 반미 정서가 강해 졌나요? 왜 미국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나요? 전두환 쿠데타 세력이 군을 광주에 투입해 학살을 자행할 때, 미국이 묵인하였다는 의심이 있었습니다. 1987년까지 국민의 쿠데타 세력에 대한 저항이 점차 확대되어 나갔고, 6월 항쟁에서 그 불꽃을 피울 때, 저 쿠데타 세력은 당연히 군을 동원할 계획을 세웠겠죠. 하지만, 그 계획은 저지당하게 되죠.

하나회 해체와 쿠데타 가능성.... 물론 당시까지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던 군내 핵심 사조직의 해체이니 쿠데타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미 그 전에 6.10 항쟁이 있었고, 직선제를 쟁취하였고, 대선에서 실패하였지만, 총선에서 승리를 가져오며, 군부독재 정권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물태우식 정책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그리고 이미 6.10에서 저들의 군동원은 저지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치 지형을 도루묵식으로 만든 것이 3당 야합이었던 것입니다.

즉, 김영삼의 3당 야합 이전에, 시민의 저항과 정치적 참여에 근거한 민주주의는 전진하고 있었고, 그 전진은 과거와 같이 한국 내 군의 정치에 대한 물리적 개입을 미국이 쉽게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었던 것이고, 3당 야합은 오히려 이런 흐름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새로운 상황 속에서 변화시켜 유지하려고 했던 군부 세력에 숨통을 틔워주며 도움을 주었던 사건입니다.

본 글을 쓰신 분께 말씀드리는 댓글이 아니고, 일부 댓글을 보고 드리는 댓글입니다.
그런데 왜 3당 합당과 하나회 해체만 따로 떼 놓고 보시는지, 혹은 주장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5.18이 있었고, 1987년 6월 항쟁까지 이어진 무수한 민주화 투쟁이 있었고, 그 결과 직선제 개헌이 있었고, 대선 이후에 있었던 총선에서의 승리가 있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은 약해져 갔고, 미국 역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한국 국내 정치 상황에 대응할 수가 없어져 갔습니다. 이 속에서 하나회 해체를 비롯한 장기적 군 개혁을 가져 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3당 합당이 있었고, 6월 항쟁으로 만들어진 정치 지형을 되돌리려는 시도였고, 결국 군부독재의 후예들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이루어진 김영삼 특유의 정치 방식이 곁들어진 하나회 해체는 장기적인 군 개혁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김영삼 그였기에  해체가 가능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그 때까지의 역사, 시민의 역할을 모두 배제한), 지금 군 출신 국힘쪽 인사나, 이번 채 해병 사건에서 보이는 군인사들의 모습에서 보이듯 하나회가 해체 되었지, 군 자체의 개혁까지 장기적으로 담보하는 개혁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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