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북한의 대남 쌀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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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코지1 59.♡.181.69
작성일 2024.08.0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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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169838)​


1984년 8월31일부터 4일간 서울·경기·충청 일원에 내린 집중호우로 서울지역이 최악의 홍수사태를 겪었다. 한강이 위험수위인 10.5m를 넘어서면서 한강대교 등 4개의 차량통행이 전면통제됐고, 161개 지역 2만2500가구에서 9만38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저지대인 강동구 풍납동과 성내동 등은 주택들이 물에 잠기며 ‘수중고도’가 돼 버렸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휴교령이 내려지는 대형 수재였다. 전국적으로는 사망및 실종 189명, 이재민 35만1000명, 부상 153명에 피해액은 1333억원에 달했다.

남한의 수해소식을 전해들은 북한은 9월8일 방송을 통해 수해지역 이재민들에게 쌀 5만석, 옷감 50만m, 시멘트 10만t, 의약품 등을 보내겠다고 제의했다. 남측은 이 제의를 수용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했다. ‘정치공세’에 이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내부에서 적지 않았다. 국제 적십자사의 구호물자 제공제의조차 사양한 터였고, 한해 전인 83년 10월9일 버마에서 발생한 아웅산 테러의 앙금도 가라앉지 않았던 시점이다.


https://www.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0909281752145


아마 태어나기도 전의 일 이신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무려 전두환 때 임에도 북한은 홍수 피해를 입은 남한을 위해 쌀, 옷, 심지어 시멘트와 의약품을 지원 했었고  무려 전두환은 이를 받아서 수재민에게 배포를 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도 같은반 친구의 친척이 북한의 구호물자를 받아서 요긴하게 잘썼다고 근데 품질은 안좋았다는 사족을 달아 자랑하던 기억이 있구요. 


이후 우린 북한이 이름바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을때 북한 사람들이 어마하게 굶어 죽어가고 있을때.  북한 정권이 붕괴되기를 바라며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더랬죠. 


이 시기는 한민족의 역사상 전쟁 이후 가장 뼈아프게 기록되지 싶습니다.



북한에 비가 많이 내려 피해가 어마한가 봅니다. 

윤석열 정권이 북한을 지원할리 만무 하지만 이참에 민간 차원에서라도 대대적인 지원을 통해 다시 평화 네트워크가 구축되었음 좋겠습니다. 

   


댓글 38 / 1 페이지

hailote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hailote (59.♡.61.46)
작성일 08.01 14:07
고난의 행군때 붕괴하길 바라고 쳐다본게 아니고 인도적인 지원은 했습니다만.. 북쪽에서 군용으로 슈킹했습니다..

코지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지1 (211.♡.201.16)
작성일 08.01 14:10
@hailote님에게 답글 북한에서 지원했을때 군인가족 에게도 지원을 했었다면  남한이 군용으로 슈킹한거가 되나요 ?

hailot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hailote (59.♡.61.46)
작성일 08.01 14:10
@코지1님에게 답글 군인 가족에게 지원이 아니라 치장했으니 문제죠..

코지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지1 (211.♡.201.16)
작성일 08.01 14:14
@hailote님에게 답글 슈킹 했다는 근거도 없는 마타도어일뿐더러 게다가 군인은 굶어죽어도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반인륜적 선동이었죠. 그래서 지원하면 안된다며.  지원하면 핵폭탄되어 되돌아 온다며  조중동과 어버이연합 그리고 일베무리들이 주장을 했던기억이 나네요

hailot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hailote (59.♡.61.46)
작성일 08.01 14:21
@코지1님에게 답글 군용으로 돌렸다는건 여기저기 증거가.나왔습니다. 핵폭탄 이야기 하시는걸 보니 2000년대 초반 말씀하시는거 같네요. 그당시 우리는 김대중 -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가장 북한에 호의적인 시기였고 그 이후로는 북핵 제제로 인하여 지원에 상당히 제약이 붙던 시기입니다.

코지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지1 (59.♡.181.69)
작성일 08.01 14:28
@hailote님에게 답글 김영삼 정부때는 아예 김영삼이 지원을 하지 못하게 했었고 그 당시 군용으로 전용할만한 지원도 없었거니와  근거도 없는 마타도어 였으며 게다가 그런 이야기로  북한을 지원하면 핵폭탄되어 되돌아 온다며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깎아내리는 조중동 및 어버이연합들이 앵무새처럼 주장 했던 내용을 똑같이 말씀 하시는 거에요.

hailot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hailote (59.♡.61.46)
작성일 08.01 14:38
@hailote님에게 답글 댓글 안달려서요. 제꺼에 달아요. 일단 김영삼은 북핵 개발이랑 상관없는 시기입니다. 김영삼이 북한에 지원을 막은건 인공기 사건과 삼선비너스 억류사건등으로 갈등이 빚어졌고 저 사건들이 북한에 지원을 하던 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거 2000년 이후에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북한에 상당히 지원을 해줬고 소 5000마리 이벤트도 저때입니다. 이명박때도 북한과 교류는 있었지만 지원물자의 군용 치장문제와 북핵 제제로 인해서 제대로 지원을 못한것도 있습니다. 박근혜는 정부 수준이 말할필요가 없구요. 요는 항상 판을 엎는건 박근헤 이전에는 저쪽입니다..

파이랜님의 댓글

작성자 파이랜 (125.♡.101.154)
작성일 08.01 14:09
대북 관계 복원 하기 위한 타이밍인데
굥이 그럴리 없죠...

hailot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hailote (59.♡.61.46)
작성일 08.01 14:10
@파이랜님에게 답글 굥은 북한과 사이가 나빠지길 바라는 족속인데 가능할리가요??

코지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지1 (59.♡.181.69)
작성일 08.01 14:29
@파이랜님에게 답글 굥은 막겠지요. 민간 차원에서 지원을 말씀 드리는 겁니다

hailot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hailote (59.♡.61.46)
작성일 08.01 14:39
@코지1님에게 답글 국가보안법에 걸려요.. 민간이 북한과 접촉 자체가 불가합니다.. 안타깝죠.. 안그래도 중국과의 국경 지역에선 밀수 비슷하게 인도적 지원을 하는 단체들이 없진 않다고 하네요

코지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지1 (59.♡.181.69)
작성일 08.01 14:46
@hailote님에게 답글 목사들이 북한 사람들 접촉해서 탈북시키는 건 국가보안법에 괜찮지요 ?  심지어 탈북 시킬때마다 미국 NED에서 돈주며 지원하고 있는데.  이건 신종 인신매매 같지 않으세요 ?

hailot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hailote (59.♡.61.46)
작성일 08.01 14:57
@코지1님에게 답글 북한 사람과 접촉 자체가 문제가 될까요? 북한 정부 또는 기관과의 접촉이 문제가 될걸요.. 그리고 북한 개개인에게 민간 차원에서 도움을 줄수 있는건 한계가 있잖아요. 이전에도 썼지만 국경 지역에서 밀수 식으로 지원하는 단체는 있을겁니다

떡갈나무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떡갈나무 (1.♡.2.244)
작성일 08.01 14:50
@hailote님에게 답글 적십자사 통하면 될겁니다

hailot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hailote (59.♡.61.46)
작성일 08.01 14:59
@떡갈나무님에게 답글 적십자라.. 적십자가 북한에서 활동하는건 북한측에서 거부할겁니다. 힘들죠.. 결국엔 북한 김정은 정권을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오는 수 밖에는 없어요

떡갈나무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떡갈나무 (1.♡.2.244)
작성일 08.01 15:01
@hailote님에게 답글 북한도 적십자 있고, 국제 적십자 북한 사무소도 있습니다.
예전부터 같이 활동 많이 했어요.

hailot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hailote (59.♡.61.46)
작성일 08.01 15:08
@hailote님에게 답글 북한 적십자에 대해 알아보니.. 북한의 국경폐쇄로 인하여 활동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네요. 이마저도 쉽지 않군요..

메카니컬데미지님의 댓글

작성자 메카니컬데미지 (211.♡.138.253)
작성일 08.01 14:09
당시에 풍납동 성내천 건너 아파트 살았는데 저희 쪽은 수해 피해를 안 입었는데요.  당시에 누가 줬는지 어머니가 북한 쌀하고 천을 구경하라고 조금 얻어오셨더라고요.  확실히 우리 쌀보단 안좋아 보였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풍납동은 그 후로도 물난리가...ㄷㄷㄷ

코지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지1 (59.♡.181.69)
작성일 08.01 14:31
@메카니컬데미지님에게 답글 제가 살던 주위 지역에서는 아마 망원동, 연남동 이쪽이 큰 피해를 입었던거로 기억 합니다.  저도 쌀이 날라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네요

BlueX님의 댓글

작성자 BlueX (39.♡.25.175)
작성일 08.01 14:10
6~70년대 북한이 더 잘 살았다는거 모르는 분들이 태반이죠...

코지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지1 (59.♡.181.69)
작성일 08.01 14:33
@BlueX님에게 답글 사실 저도 그건 잘 모르겠더라구요. 6~70년대에는  남한보다 북한이 정말 더 잘살았을까 싶긴 합니다

밤페이님의 댓글

작성자 밤페이 (210.♡.70.162)
작성일 08.01 14:11
광목천 같은것도 왔는데..엄청 질이 낮았습니다..

북한이 지원한다고 했을때 한국이 단칼에 거절할 줄 알았는데..
오케이 콜~ 외치는 바람에..많이 당황했었다고 하네요.

코지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지1 (59.♡.181.69)
작성일 08.01 14:33
@밤페이님에게 답글 아웅산 테러 이후이기도 했으니까요

heltant79님의 댓글

작성자 heltant79 (61.♡.152.147)
작성일 08.01 14:18
이거 저희 할머니가 반상회에서 받아갖고 오셨습니다.
쌀에서는 냄새 났고 옷은 무슨 헝겊 같은 걸 가져오셔서 기억에 남았네요.

코지1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지1 (59.♡.181.69)
작성일 08.01 14:36
@heltant79님에게 답글 그 당시 삐라를 줏어서 경찰서에 갔다주면 학용품을 주던 시기이기도 하고.  근데 우리네 보단 품질이 확실히 안좋았었나봐요

프랑지파니님의 댓글

작성자 프랑지파니 (175.♡.150.159)
작성일 08.01 14:24
제가 국민학생 때네요. 성내동 살았었는데 저런 것 구경은 못 해 봤습니다. 기억이 없는걸지도..

리메님의 댓글

작성자 리메 (118.♡.10.63)
작성일 08.01 14:26
북한이 마지막으로 빤짝하던 시기군요.. 쩝

GreenDay님의 댓글

작성자 GreenDay (210.♡.177.30)
작성일 08.01 14:30
저때 작은아버지네가 침수 입었는데요.
정부에서 북한쌀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미보다 못한 상태로 냄새가 꽤 심하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국민학교 1학년때라 숙모가 엄마랑 이야기 하는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아즈아즈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아즈아즈 (223.♡.200.173)
작성일 08.01 14:34
저거 받아서 뻥튀기 해 먹었습니다

Chemchem93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Chemchem93 (128.♡.184.5)
작성일 08.01 15:00
학교에서 북한산 쌀이라며 라면봉지정도 분량을 선생님께서 가져와서 보여주던 기억이 납니다...

월남에서돌아온예비역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월남에서돌아온예비역 (118.♡.5.81)
작성일 08.01 15:02
쌀은 못받았고 옷이랑 시멘트는 받았는데
아버지가 옷은 몸빼바지를 벗어날 시기인데
품질도 안좋고 누가 요새 이런옷 입냐고
안받아오셨고 시멘트는 외벽발랏는데
그냥 석회수준이였습니다.

바다야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바다야 (98.♡.157.242)
작성일 08.01 15:40
한국전쟁때 월남하신 외할아버지께서 어디선가 이북 쌀이라며 받아 오셨던걸로 기억합니다. 드시지도 않고 방구석에 놓아두고 매일저녁마다 꺼내서 만져 보시며 소주한잔씩 하셨습니다. 그때 그 쌀은 그런 의미였던걸로 기억합니다.

humanitas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humanitas (78.♡.45.236)
작성일 08.01 20:27
@바다야님에게 답글 아이고.. 망향의 아픔을 달래시면서, 북한 쌀로 가지 못하는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대신하신 것이군요...

백장미님의 댓글

작성자 백장미 (223.♡.75.22)
작성일 08.01 15:43
이거 관련해서 누군가 지었던 시도 있었던 거 같은데 찾기가 어렵네요. 북쪽쌀 남쪽쌀 반반 섞어 밥을 지었다 그런 내용이었는데...

흐르는강물처럼흘러서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흐르는강물처럼흘러서 (106.♡.245.70)
작성일 08.01 15:45
북에서 선전용으로 준다고 한 것을 과감하게(?) 수용을 했습니다.
받은 수해용품들을 보고서 확실하게 남과 북의 격차를 느끼게 되었죠.
나름대로 북에서는 좋은 품질이었겠지만 쌀은 그냥은 못먹고 뻥튀기나 떡으로 만들어야 먹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나머지도 거의 사용하기 어려운 정도라 다시 보내서 북한 돕기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안타님의 댓글

작성자 이안타 (210.♡.82.191)
작성일 08.01 19:47
우리 쌀 아직 재고 많나요? 이럴때 생색내기용이라도 좀 주지...보관비도 들건데

xman님의 댓글

작성자 xman (39.♡.105.28)
작성일 08.01 20:00
망원동 살았는데 쌀과 천 받았어요.
밥해먹을 수준이 아니라서 떡해먹고
천도 옷해입을 정도가 아니라서 이불 싸는 천으로 썼어요.

보따람님의 댓글

작성자 보따람 (211.♡.50.62)
작성일 08.01 20:33
저 당시 북한이 자신의 체제 선전을 위해 크게 한번 인심을 썼는데,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경제력이 너무 차이가 나서 체감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우리가 지원을 하려고 할 때는 대한민국이라는 표시를 거부했고 그 이후로 북한은 지원을 거의 하지 않았지요.

1984년이니 1986년에 아시안게임, 1988년에 올림픽 그리고 1990년에 소련 붕괴 등을 보면 북한의 경제는 나락으로 가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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