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북한의 대남 쌀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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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169838)
1984년 8월31일부터 4일간 서울·경기·충청 일원에 내린 집중호우로 서울지역이 최악의 홍수사태를 겪었다. 한강이 위험수위인 10.5m를 넘어서면서 한강대교 등 4개의 차량통행이 전면통제됐고, 161개 지역 2만2500가구에서 9만38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저지대인 강동구 풍납동과 성내동 등은 주택들이 물에 잠기며 ‘수중고도’가 돼 버렸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휴교령이 내려지는 대형 수재였다. 전국적으로는 사망및 실종 189명, 이재민 35만1000명, 부상 153명에 피해액은 1333억원에 달했다.
남한의 수해소식을 전해들은 북한은 9월8일 방송을 통해 수해지역 이재민들에게 쌀 5만석, 옷감 50만m, 시멘트 10만t, 의약품 등을 보내겠다고 제의했다. 남측은 이 제의를 수용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했다. ‘정치공세’에 이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내부에서 적지 않았다. 국제 적십자사의 구호물자 제공제의조차 사양한 터였고, 한해 전인 83년 10월9일 버마에서 발생한 아웅산 테러의 앙금도 가라앉지 않았던 시점이다.
https://www.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0909281752145
아마 태어나기도 전의 일 이신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무려 전두환 때 임에도 북한은 홍수 피해를 입은 남한을 위해 쌀, 옷, 심지어 시멘트와 의약품을 지원 했었고 무려 전두환은 이를 받아서 수재민에게 배포를 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도 같은반 친구의 친척이 북한의 구호물자를 받아서 요긴하게 잘썼다고 근데 품질은 안좋았다는 사족을 달아 자랑하던 기억이 있구요.
이후 우린 북한이 이름바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을때 북한 사람들이 어마하게 굶어 죽어가고 있을때. 북한 정권이 붕괴되기를 바라며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더랬죠.
이 시기는 한민족의 역사상 전쟁 이후 가장 뼈아프게 기록되지 싶습니다.
북한에 비가 많이 내려 피해가 어마한가 봅니다.
윤석열 정권이 북한을 지원할리 만무 하지만 이참에 민간 차원에서라도 대대적인 지원을 통해 다시 평화 네트워크가 구축되었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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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코지1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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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갈나무님의 댓글의 댓글
예전부터 같이 활동 많이 했어요.
hailote님의 댓글의 댓글
메카니컬데미지님의 댓글
그리고 풍납동은 그 후로도 물난리가...ㄷㄷㄷ
코지1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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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페이님의 댓글
북한이 지원한다고 했을때 한국이 단칼에 거절할 줄 알았는데..
오케이 콜~ 외치는 바람에..많이 당황했었다고 하네요.
heltant79님의 댓글
쌀에서는 냄새 났고 옷은 무슨 헝겊 같은 걸 가져오셔서 기억에 남았네요.
코지1님의 댓글의 댓글
프랑지파니님의 댓글
GreenDay님의 댓글
정부에서 북한쌀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미보다 못한 상태로 냄새가 꽤 심하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국민학교 1학년때라 숙모가 엄마랑 이야기 하는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Chemchem93님의 댓글
월남에서돌아온예비역님의 댓글
아버지가 옷은 몸빼바지를 벗어날 시기인데
품질도 안좋고 누가 요새 이런옷 입냐고
안받아오셨고 시멘트는 외벽발랏는데
그냥 석회수준이였습니다.
바다야님의 댓글
humanitas님의 댓글의 댓글
백장미님의 댓글
흐르는강물처럼흘러서님의 댓글
받은 수해용품들을 보고서 확실하게 남과 북의 격차를 느끼게 되었죠.
나름대로 북에서는 좋은 품질이었겠지만 쌀은 그냥은 못먹고 뻥튀기나 떡으로 만들어야 먹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나머지도 거의 사용하기 어려운 정도라 다시 보내서 북한 돕기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xman님의 댓글
밥해먹을 수준이 아니라서 떡해먹고
천도 옷해입을 정도가 아니라서 이불 싸는 천으로 썼어요.
보따람님의 댓글
경제력이 너무 차이가 나서 체감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우리가 지원을 하려고 할 때는 대한민국이라는 표시를 거부했고 그 이후로 북한은 지원을 거의 하지 않았지요.
1984년이니 1986년에 아시안게임, 1988년에 올림픽 그리고 1990년에 소련 붕괴 등을 보면 북한의 경제는 나락으로 가고 있었지요.
hailote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