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KTX 탑승객은 이승만이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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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제1호 피난민 이승만, 그의 충격적 행보
이 대통령은 즉시 피난 갈 것을 거듭 고집했다. 결국 6월 26일 오후 3시에 피난을 공식 결정했다. 그 시각 국회에서는 서울 사수와 철수 문제를 놓고 밤샘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찬반투표로 서울 사수가 결정되었다. 그 결과를 알리기 위해 국회 대표가 경무대를 방문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런치고* 없었다.
(*당연히 제가 임의로 넣은 표현)
한국전쟁기 대한민국의 제1호 피난민이 대통령임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이 대통령은 서울역을 새벽 4시에 출발해 낮 12시 30분에 대구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멀리 왔다는 조언 때문에 열차를 되돌려 대전으로 갔다. 오후 4시 30분이었다.
경부고속선(KTX)도 없던 시절에 도대체 뭘로 그리 빨리 튀었던건지 찾아보니 거의 타임워프급 고속열차를 타고 도주하셨군요.
1950년 6월 26일에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를 새벽 네 시 첫차로 타신 대단하신 분이었던줄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니 2들이 이승만을 그리 추종하는군요.
저도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비꼬는건 여기까지 하고 팩트를 찾아보면,
“1954년 8월14일 동아일보와 8월15일 마산일보 등에 게재된 ‘8월15일부터 서울과 부산에서 10:30분 출발하여 부산과 서울에 20:00시에 도착하는 특급열차 통일호가 운행을 개시한다.’는 기사에 따라,
특급열차 ‘통일호’의 운행은 1955년이 아닌 1954년 8월15일부터 시작되었음이 확인된다.”고 하니,
당시 밟을 수 있을만큼 최대한 빨리 밟아 튀었다고 보기에 별 무리는 없을듯합니다. ㅋ
Java님의 댓글
그야말로 걸음아 나살려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튀었네요.
하긴 독립운동에 쓰라고 후원한 자금으로 파티나 다니면서 호의호식하던 놈이니
지 목숨만 중했겠지요.
부관참시를 해도 모자를 반역자입니다.
2찍도 그럴겁니다.
전쟁 부추기며 반사이익을 얻을줄만 알았지,
막상 전쟁나면 런승만 못지않게 도망가기 바쁘겠죠.
블링블링종현님의 댓글
이런 새끼가 국부요?
userj님의 댓글
Pororo40님의 댓글의 댓글
fixerw님의 댓글
(참고기사 http://m.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13)
그 바람에 우리는 이후 문제에서 우리 스스로 이야기 하기 어려운(UN거쳐야함)처지가 되었고요.
다 떠나서 민주주의 억압도 있어서 평가는 해서는 안되는게 이 자 재 평가하는 순간 세계적 자국민 학살의 대표자인 '폴포트'에 대하여 부정적 이야기할 자격도 없어집니다. 그만큼 자국민 학살로는 비등비등하죠.
얼크니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