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르게 사는 게 지랄 맞게 힘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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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르게 사는 게
정직하고, 나의 신념대로 사는 게 맞다면.
저는 올바르게 사는 게 지랄 맞게 힘들 다는 걸 23살 군대에서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당시 상병인 저는 대대 행정계원이었고. 유격훈련 복귀날인 어느날
5분대기조 암호표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부대는 난리가 났고.
유격 복귀 한 인원들과 아닌 인원들을 나뉘어서 전 부대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둘째날 상위 부대로 보고가 들어가고.
기무대, 군경찰이 들어오면서 상황이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사라진 암호표 수색보다 범인 잡기에 초점이 맞혀졌고
어느새 그 암호표를 전달 하고 관리 한다는 이유 만으로 저는 1순위 용의자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천천히 이어지는 고문 같은 나날들은
살면서 제가 받은 가장 치욕의 나날일 것 입니다.
15일 정도 하루 1시간도 자지 못하고 밤마다 돌아가면서 매번 다른 사람들에게 진술을 받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말과 행동들이 소문으로 퍼져 제가 암호표를 간부들 엿 먹으라고 태운 놈이 되어 있었습니다.
샤워실에서 누군가 저를 발로 차고 도망가기도 합니다.
부대원 전체 얼차려를 받으면서 소대장이 큰소리로 "너희가 누구 한명 때문에 이러는지 알지?" 라며 집단 린치를 종용합니다.
진술 중 갖은 회유와 협박을 받았습니다.
어느날은 제 사물함을 뒤지고는 일기장에 심심해서 그린 그림을 보고북한으로 탈북 하고 싶은 빨갱이라고 합니다.
매일 매일 부대원들의 눈초리와 가끔 새벽에 진술을 마치고 오면 저를 불러서 '야... 진짜 너 아냐?' 라고 수십명이 물어 봅니다.
"야! 이거 니가 없앴다고 해도. 너 영창만 가면 끝나? 뭔 똥고집이냐?"
기무대 수사반장이란 사람이 한 말 입니다.
저도 나름 육규, 군법령 다 봤던 사람인지라 거짓말인 거 알았습니다.
나름의 오기였을까요?
객기였을까요?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지 않겠어!'
저 나름의 신념이었고, 그것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보름 넘게 그 지옥을 버티다가.
아주 별거 아닌 계기로
사람이 무너지더군요.
그 사단이 났는데 저희 중대 누군가가 포상휴가를 받아서 나갔습니다.
그 인간이 나가면서 제 어깨를 툭 치며
"니 덕에 포상간다."
하더군요.
툭 하며 머리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날씨도 너무 좋고.
하늘은 파랗고
아… 그냥 죽어도 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기전에 우리 엄마 목소리나 듣고 죽어야겠다.
하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어머니는 제가 무슨일이 있냐며 계속 되물으셨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별일 없다고 했고.
어머니는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은 지 말을 이었습니다.
"행여라도. 옳지 않은 일은 하지마! 무슨일이 있어도 바르게 가면 힘들어도 반드시 인정받아"
그 말에 다시 정신이 돌아와서.
저는 다시 며칠을 더 버티고 버텨서
저의 누명(?)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저희 중대는 큰 파장을 입었고
저는 저의 누명을 벗으려는 과정에서 열 받아서 부대 모든 비리를 낱낱이 까발려서 이후 상급 부대에서
감찰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남은 군생활 저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군 간부들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저에게 못할 짓을 했으니까요.
물론 개중에는 양심도 없이 자기는 옳은일을 했다고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후에.
그 기무대 수사반장이라고 칭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수사반장이라는 직은 없었고
어쨋든 이런걸 처리하는 조직 (군경찰 또는 다른 소속)에서 파견 온 거고
저 하나를 타겟으로 잡아서 여론 조작을 하고, 소대장들에게 시켜서 부대원들이 저를 범인으로 생각하게 해서
저에 대한 나쁜 소문을 모이게 하고
모든 사건을 여러명들이 나이 40~50먹은 인간들이 똘똘 뭉쳐서 20대 애 하나 범인 만들겠다고 공들여 만든 작품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휴가를 간 사람은 저를 범인으로 만든 결정적 증언을 했고 (이것도 사실 의미가 없었던)
저를 괴롭히면서 특별 외박을 받은 사람 3명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별의 별 일들 다 당해 봤지만.
좀 더 타협하고, 그냥 조금 손해 본다 생각하고, 남들 이용하면서, 남 피해 생각 말고 살면.
진짜 인생이 훠어어얼씬 편합니다.
헌데 저는 23살에 저 일을 당하면서.
올바르지 않음이 얼마나 추잡하고, 모자라고, 지랄 맞은 지 봐서 그런지.
굳이 어려운 길을 갈 때가 많습니다.
올바르게 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랄 맞게 힘든 건
내가 흰색이라고 나를 지들 색으로 물들이려는 인간들과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옳은 소리 하면 너는 왜 잘난체 하냐.
정직하게 살면 그렇게 살면 성공 못한다.
조금 손해 봐도 괜찮다면 그래서 니가 호구인거다.
그러다가 큰 소리라도 내면 니가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저러는거다 난리입니다.
당시에 제가 누명(?)을 벗기 하루 전날
저는 원래 헌병대로 끌려가기 직전 이었습니다.
그 마지막날
수사반장이란 사람은 제게 말했습니다.
"세상은 말야. 똑똑한 놈들이 살아 남는거야. 니가 했던 안 했던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이 상황에서 머리가 있는 놈이면 넌 다른 놈을 범인으로 몰았어야지. 너는 그래서 멍청한거야."
그리고 그 마지막 날 밤 저희 중대장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심이상병. 난 네가 절대 그럴일을 할 사람이 아닌 걸 알아.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 포기하지 말고, 겁먹지 말어. 내가 도와줄게. 넌 지금부터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올바르게 말하면 돼"
살면서 저도 많은 욕심의 기로에 서있을 때가 있었습니다만.
그럴때 그때 중대장님이 해주셨던 말을 떠올립니다.
포기하지말고, 겁먹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그리고 어머니의 말씀대로 올바르게.
여기까지 쓰면 먼가 굉장히 훈훈하게 끝날 것 같지만.
지금도 언제나 저는 저 기로에서 흔들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고작 소시민인 저도 이렇게 올바르게 사는 게 힘이 드는데.
저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분들은 어떤 심정으로 사는 지 가늠도 할 수 없습니다.
참.. 지랄 맞게 힘들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날 까지 올바르게 소신껏 살아보겠습니다. (빈댓글 안 받으면서)
심이님의 댓글의 댓글
파이프스코티님의 댓글의 댓글
내면의 힘이 아직도 님을 지탱해주고, 그 양분이 아이들에게 갈겁니다.
부서지는파도처럼님의 댓글
mtrz님의 댓글
바르게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 길을 가는 사람은 마음껏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실상 유일한 보상이고 최고의 보상이 아닐런지요.
유니멀리즘님의 댓글
은비령님의 댓글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그걸 해 내셨군요.
두부1님의 댓글
우리가 그걸 해야하는 나이기도 하구요 ㅎㅎ....
라이투미님의 댓글
Superstar님의 댓글
가입어렵나님의 댓글
일이지요. 멋지게 잘 살아 내시기
바랍니다.
래비티님의 댓글
아, 언젠가 아버님 해병대 일화 쓰셨던 거 기억합니다. 멋진 부자시네요 ^^
저도 올바르게 살아가려 나름 애쓰지만,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화이팅! 좋은 일 많으시길 응원하겠습니다~
재봉틀쟁이님의 댓글
나만 바르게 행동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행동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사회가 점점 바른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 참 답답하지만,
그래도 나부터 행동해야 언젠가는 바뀌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어렵지만 묵묵히 실천하면 살아야죠~!!
plaintext님의 댓글
쓰신 글을 보니 저도 떠오르는 기억이 있네요
ㅎㅎ 올바르게 산다는 것.. 의리라는 것..
참 어렵지만 보람은 있습니다 ㅎ
메카니컬데미지님의 댓글
사람 인상과 심성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맞기 싫다고 남을 때리거나 한 두 달 먼저 온 게 벼슬이라 정말 재미로 사람 때리는 인간의 밑바닥을 20대 초반 군 시절 배웠고요.
그렇다고 나쁜 것만 배운 것도 아니었네요. 막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서 할 줄 아는 게 없던 애가 그래도 알아서 하는 어른으로 막 태어나기도 했고요.
웃기게도 나라 지키러? 갔다가 인간의 사회를 배우고 왔더라고요.
알로에비어님의 댓글
그래서 더 대단하게 보이네요. 그 용기에 박수와 존경을 보냅니다.
파이프스코티님의 댓글
잘 견디어 내셨습니다.
강한사람이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