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인에게서 산 미국산 모신나강으로 승리한 봉오동, 청산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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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묘한 조합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이야기입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군에 편입되어 싸우던 대규모 체코인 병력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레닌이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연합국에서 탈퇴하고 독일과 강화조약을 맺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의 이탈이 괘씸하고 최초의 공산주의 정권이 생긴 것에 위기감을 느낀 연합국 국가들이 볼셰비키 반대파들을 지원합니다. 그래서 적백내전이 일어나죠. 이 상황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된 체코인들을 미국이 꼬드겨 반볼셰비키 파벌을 지원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발주받아 미국에서 생산한 대량의 모신나강과 탄약을 지원해줍니다.
<사진은 뉴잉글랜드 웨스팅하우스제 모신나강>
그런데, 이 소총은 총기 제조의 명가 미국제답지 않게, 고장이 잘 나고 문제가 많아 수출이 금지되고 악성재고로 회사에서 떠안은 거라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걸 미국에서 체코인들에게 생색내며 떠넘긴 거죠.
암튼, 적백내전은 초기와 다르게 점점 볼셰비키의 승리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체코도 독립국이 되었겠다 체코인들도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집에 가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협상 끝에 블라디보스톡에서 배타고 체코인들은 떠나게 되었는데, 체코인들에게는 돈은 적고 무기가 많았습니다.
<그림은 체코인들의 귀향 루트>
그래서, 체코인들은 가지고 있던 무기를 팔기 시작했고, 여운형 등 독립운동가들은 1918년 11월 상하이로 파견된 윌슨 대통령의 특사 찰스 크레인와 만나 한국의 독립을 위해 회담을 갖던 중 체코인들과 접촉해보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이에 여운형은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체코인 장군과 회담을, 이후 체코인들과 북로군정서는 서로 접촉하여, 소총 1,200정, 기관총 6정, 탄약 80만발, 박격포 2문, 권총과 다량의 수류탄 등을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 소총의 많은 수가 그 문제의 모신나강이긴 했지만... 그래도 독립군 입장에서는 알토란과 같이 귀한 가뭄의 단비였죠. 그리고 그걸로 이겼습니다.
이후 여담이지만, 체코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온 후 체코 시장에서는 은비녀, 금가락지, 비단보자기 등이 많이 나왔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그만큼 나라를 되찾겠다는 이름 모를 아빠, 엄마들의 노력과 희생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여기에는 당시 복잡한 역사적 관계도 담겨 있습니다. 암튼 힘겨웠던 시대의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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