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한국의 학력 수준 보여주는 일화
알림
|
페이지 정보
작성일
2024.09.08 13:17
본문
제가 아는 썰로 해방 직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한국인 일가가 있었습니다.
20년도 넘게 일본에서 살아서 한국엔 아무런 기반도 없었고, 가져온 건 일본에서 일하며 벌었던 돈 몇 푼 뿐.
그런데 불과 3년만에 집도 사고 라디오와 전등 등도 갖추고 땅도 구하는 등 부유하게 자리 잡았는데 비결은 바로 그 집안이 영어를 잘 해섭니다.
당시 그 집안이 정착한 곳에서 영어를 할 수 있던 사람이 워낙 드물다보니 미군정 시기 미군이 그 가족을 통해 그 지역 상황 파악하고 그래서 미군과 미군에 청탁하려는 사람들이 모두 그 집안을 통하게 되었죠.
그래서 그 때 쌓아올린 인맥과 부로 자녀교육을 시켜 나중에 외교관과 장군까지 배출하더랍니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하겠지만, 지금은 누구나 하던 영어 할 줄 아는 것 하나로 집안을 살릴 정도로 당시 한국이 저학력이었죠.
일지강점기 때 교육을 안 시키니까…
댓글 6
/ 1 페이지
포돌이님의 댓글
육사의 모체도 미군정치하 군사영어학교가 모체죠. 여기는 일본군 경력자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걸 독립군 역사를 연결해서 까놓고 얘기해서 '만들어'줬는데 윤두창 정부가 까 뒤집어 엎었죠
그래서 이걸 독립군 역사를 연결해서 까놓고 얘기해서 '만들어'줬는데 윤두창 정부가 까 뒤집어 엎었죠
Gesserit님의 댓글
일제강점기 끝나는 시점에 초등학교 취학률이 60% 남짓이었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는 중퇴했었습니다. 그나마 초등학교가 그러했고.. 중고등학교 과정은 10% 정도였으니까 사실상 조선인 학력 평균은 초등 3~4학년 수준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대학교는 말할 것도 없었죠. 4년제 종합대학은 경성제대 1개였는데, 그나마 인문계 중심에 일본인 학생들이 많았으니까요.
일제가 없이 대한제국이 그대로 이어졌으면 그보다는 교육 수준이 높았을 겁니다. 각 지역별 학교설립 운동이 1900년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어서 각 지역에서 오래된 학교 개학일지가 상당수 대한제국 시절이죠. 교원 양성에 최소한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단기간에 완성은 안 되었겠지만, 30여 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지역별로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개설되었을 겁니다. 총독부처럼 억제하지 않았을테니까요.
일제가 없이 대한제국이 그대로 이어졌으면 그보다는 교육 수준이 높았을 겁니다. 각 지역별 학교설립 운동이 1900년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어서 각 지역에서 오래된 학교 개학일지가 상당수 대한제국 시절이죠. 교원 양성에 최소한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단기간에 완성은 안 되었겠지만, 30여 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지역별로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개설되었을 겁니다. 총독부처럼 억제하지 않았을테니까요.
pianostory님의 댓글
조선시대 범람?하던 서원들은 대학교, 또는 중고등학교가 되었을테니 교육 수준은 급히 올라갔을거라 생각합니다. 서원철폐 후에 남은 서원이 47개였는데, 조선시대 기준 대학교, 대학워뉴교육을 하던 곳이죠.
sooo님의 댓글
국민이 문맹하면 다스리기 쉽죠.
우리나라 독재자들이 하는 게 역사 안가르치기
교육예산 깎기 는 기본이죠.
윤석열 왈 인문학은 대학교에서 일부만 하면돼..라고 했죠
이말을 듣고도 찍은 사람은 ..무슨 정신일까요?( 아 정신이 없겠네요)
우리나라 독재자들이 하는 게 역사 안가르치기
교육예산 깎기 는 기본이죠.
윤석열 왈 인문학은 대학교에서 일부만 하면돼..라고 했죠
이말을 듣고도 찍은 사람은 ..무슨 정신일까요?( 아 정신이 없겠네요)
벽오동심은뜻은님의 댓글
이제 미국이 득세하니 자식에게 영어를 배우라고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