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전교생이 8천명이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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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잔망루피 211.♡.113.108
작성일 2024.09.2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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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애가 없어서 줄폐교 하는 나라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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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5 / 1 페이지

건강한전립선님의 댓글

작성자 건강한전립선 (118.♡.236.75)
작성일 09.28 12:10
오전반 오후반이 정확히 언제까지 시행됐었죠?
전 당시에 대구에 살았는데 92년에 오전반 오후반했었습니다 ㅋㅋ

someshin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someshine (61.♡.87.225)
작성일 09.28 17:29
@건강한전립선님에게 답글 그렇게 늦게까지 있었나요? 저는 서울에서 84년 정도까지 오전 오후반이 있다가 근처에 학교 새로 생기면서 강제 배정 받아 간 기억이 있습니다 ㅎㅎ 한 반에 56~57명 정도였어요. 요즘 초등학교는 한 반에 20명이 잘 안되고 중 고등학교는 30명도 안되는 것 보면 정말 변화가 가파릅니다.

우주난민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우주난민 (89.♡.101.49)
작성일 09.28 12:16
생각해보면 저런 시기에 하나 낳아 잘 기르자 식으로 전국민 세뇌한 결과가 지금의 저출산으로 나타는 것 같네요... 중국도 그렇고...

팟타이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팟타이 (210.♡.3.154)
작성일 09.28 12:19
전 저때의 악몽같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ㄷㄷㄷ..
아마 그 기억과 트라우마가 한 스푼 거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쿨메모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쿨메모 (125.♡.230.9)
작성일 09.28 12:24
6학년 저희반 학생수가 81명이었어요. 물론 오전오후반 있었구요...
세상이 이렇게 변하다니...

luqu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luqu (218.♡.215.30)
작성일 09.28 12:28
저때가 지금보다 잘 살아서 아이들 많이 낳았던 건 아닐텐데 말이죠.

고스트스테이션님의 댓글

작성자 고스트스테이션 (115.♡.205.115)
작성일 09.28 12:29
82년에 국민학교 입학했습니다. 주택, 상가 비율이 반반인 동네라 2부제까지는 안했는데 10반까지 있었고, 한 반에 5~60명 정도였습니다. 교실에 애들이 바글바글 했어도 다 친구고 누굴 괴롭히거나 하는 일은 없었죠.

까망꼬망1님의 댓글

작성자 까망꼬망1 (211.♡.160.162)
작성일 09.28 12:30
국딩때 한반 75명...오전/오후반 있었죠..반도 13개인가 14개반...
고3때만 해도 수험생 백만대군 이야기 했었는데....

콘헤드님의 댓글

작성자 콘헤드 (124.♡.160.56)
작성일 09.28 12:30
저 학생들이 지금은 5~60대가 되었겠네요.

라움큐빅님의 댓글

작성자 라움큐빅 (218.♡.164.150)
작성일 09.28 12:38
시골 살다가, 6학년 때 종조부님이 사시는 서울 구경을 갔는데, 댁이 동대문구 보문동이었습니다.
종조부님 따님인 종고모가, 자기네 학교 놀러 가자고 따라 갔는데, 그 학교가 동신국민학교였습니다.

학교에 가 보니, 운동장 한 켠에 사각으로 깊이 파진 무지하게 큰  시설물이 있었는데, 그게 뭐냐고 물어 보니까 수영장
이란 소리를 듣고... 어린 마음에, 그게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와~~!서울은, 정말 다르구나!"하는 생각만 났습니다.
그리고 그 수영장이,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사용된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충격을 또 받았습니다.
서울은 정말, 상상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도시였습니다.

그 당시 그 학교 전교생이 1만 명이 넘어서, 얼마 후 신문에도 났었는데,
작년이던가 궁금해서 다시 검색해보니,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이제는 1 천 명이 안 된다고 하던 기억이 있네요.

공중곡예사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공중곡예사 (118.♡.13.92)
작성일 09.28 17:40
@라움큐빅님에게 답글 그게 몇년도인가요?
격세지감입니다 정말 ㄷㄷㄷ

위례소년코난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위례소년코난 (221.♡.255.28)
작성일 09.28 12:38
서울 용산구 87년에 오전/오후반 있었습니다.
88년엔 없었구요.

DAVICHI님의 댓글

작성자 DAVICHI (1.♡.82.118)
작성일 09.28 12:54
82년도 서울로 전학오니 그때 오전 오후반 있더군요.
다음해부터 없어졌어요...

855th님의 댓글

작성자 855th (58.♡.202.12)
작성일 09.28 12:59
서울 목동에도 80년후반까진 오전오후반을 한듯한 기억이…물론 저학년이요.

87년인가 신시가지 아파트 들어서면서
좀 분산된듯도 하고요.
애들도 줄어드는데 아파트 동네마다
초등학교 하니씩 꼭 생기니
더욱 인원이 주는것도 같네요.

2024년4월10일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2024년4월10일 (118.♡.73.79)
작성일 09.28 13:11
80년대
강남에서도
중학교는
18반까지 있었고
한반의 학생도 70번까지 있었죠
중고교 전교생이 보통 3000명 이상

민주주의는 머릿수 싸움인데

현재 인구수가 제일 높은
40~50대에서
진보 비율이 높은건
대한민국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꼰대생각님의 댓글

작성자 꼰대생각 (220.♡.206.218)
작성일 09.28 13:18
1학년 15반 37번,  여자끝번호가 75번인가 였었고. 오전 오후반 있었는데

하루는 오후반인 줄 알고 갔더니 교문앞에서
오전 수업 다 끝나고 나오는 우리반 첫사랑그녀를 마주쳤을때 그 허탈함이란..
..
학교정문 바로앞이 우리집이었는데 다시 대문열고 집에 들어갈수도 없고..

RanomA님의 댓글

작성자 RanomA (125.♡.92.52)
작성일 09.28 13:19
읍 단위인데, 저희 학교는 거의 면 단위급이라 한 학년에 60명, 그런데 그걸 교장선생님이 힘이 좋으신지 두 반으로 나누셔서 30명... 복받았던 거 같습니다. 읍내 학교는 6반에 60명씩 있었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아, 5살 밑의 제 동생은 오전반 오후반 있었군요.

HowRU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HowRU (116.♡.172.24)
작성일 09.28 14:00
6학년 21반이 있었습니다.

제리아스님의 댓글

작성자 제리아스 (121.♡.33.51)
작성일 09.28 14:44
길거리에 아이들이 가득하던 그시절 정말 그립습니다.

잎과줄기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잎과줄기 (222.♡.21.252)
작성일 09.28 15:23
아는분한테 들었는데,
본인이 다닌 신림동 어느 초등학교가 당시 세계 학생수 1위 초등학교였다고 하더군요.  (믿거나 말거나,,,)
2부제가 아니라 3부제 학교였다고 합니다.

원두콩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원두콩 (211.♡.14.7)
작성일 09.28 15:39
아시다시피
70년생, 71년생이 출산정점이었습니다. 대략 100만명선이었는데
당국이 이를 예측해 미리 선제대응하지 못하여
이들이 국민학교 입학할 즈음에 부족한 교실문제로
오전 오후반 나누는 등 위와 같이 큰 혼란이 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대책을 마련하여 이후로 이들이 고등학교졸업하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세상여행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세상여행 (211.♡.194.24)
작성일 09.28 17:48
@원두콩님에게 답글 그때 70, 71년생들 면제, 보충역이 많았죠.
 
문제는 출산 기조를 유지했어야 하는데 시스템과 기반 시설이 따라오지 못했죠. 출산률 하락이 국가 존폐를 좌우할지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고요.

그동안 인구가 늘어난 건 사망률이 낮아져서였던 거죠.

소르베님의 댓글

작성자 소르베 (116.♡.120.63)
작성일 09.28 16:26
저희학교는 운동회도 2부제로 했습니다 ㅋ

Peregrine님의 댓글

작성자 Peregrine (121.♡.96.38)
작성일 09.28 16:42
98, 99년이 출생아수가 갑자기 폭증한 에코 부머들 초등학교 들어갈 때라 학교가 일시적으로 모자랐죠.
지금 그 세대가 아이를 낳으니 출생아수도 일시적으로 반등을 보일 기미가 있긴 한가 봅니다.

someshine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someshine (61.♡.87.225)
작성일 09.28 17:37
저 때는 국민학교였고 2학년때인지 3학년때인지 제 짝이 여학생이었습니다. 몸이나 키는 꽤 컸는데 지체가 약간 있었는데 어느날 제 짝 오빠가 수업 중에 와서 동생을 공장보내야 한다면서(오빠 본인은 이미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음) 선생님과 상담하고 데리고 나갔습니다. 서울이었어도 다 가난했을 시절인데 더 큰 가난이 문제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그 날 제 짝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공업화 근대화와 그땐 인권이라는 개념도 희박했어서 어린아이들도 사정에 따라 일을 하게 됬던것 같은데 마음이 매우 힘들고 복잡하고 그랬었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아직 생생히 기억이 나요.
교육열도 높았지만 그런만큼 또 그늘에 가려진 아이들도 많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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