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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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10.09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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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맞이하여 기사를 인용해 한글에 관한 글을 하나 써보았습니다. 페북에 올린걸 옮겨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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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유감]
오늘은 한글날이다. 공휴일로 다시 지정된 후에 맞는 578돌 한글날은 역시 감회가 다르다. 매년 한글날에 짧은 글을 하나 올려 기념하곤 했는데, 오늘도 관련된 신문기사를 읽은 참에 하나 써 보고자 한다.
기사는 이것이다. 오늘자 중앙일보에 올라온 것으로 “사라진 한글… 500년 전 훈민정음, 중국어 발음 더 정확하게 썼다" [출처:중앙일보] 라는 내용이다. 중어중문학과 교수님이신데, “과거 동아시아 언어를 음성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무료로 공유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신다. 중국어·일본어·몽골어·만주어·산스크리트어가 연구대상으로 이들을 음성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로마자 기반의 IPA 부호계를 옛한글 자모를 이용해 대신해서 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옛한글을 IPA 부호계로 쓸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기자에게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기자분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 내용에 감복하면서 가뜩이나 이상한 정책으로 욕을 잔뜩 얻어먹고 있는 국립국어원을 비판하여, 제대로 일을 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명 의식하에 (이것은 필자의 추측이다.) 취재를 해 한글을 꼭지로 하는 기념일 기사를 써 올렸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한글날마다 재탕 되어 온 전형적인 기사의 형식이다.
하지만 수십년간 한글기계화(공병우 선생께서 늘 사용하시던 표현이다)와 한글정보화를 해 온 장본인인 필자로서는 그냥 넘기기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에 대중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글을 쓰는 것이다. 우선, 교수님과 기자분께 묻고 싶다. 해당 기사의 내용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달라는 것인가? 국립국어원이 한글 정책을 바꾸어 사라진 옛한글 자모 4개를 살려내라는 것인지? 국제 표준 부호 계인 IPA의 한글판 대치품을 누구에게 만들어 달라는 것인지? 자신들이 부호계를 만들 테니 컴퓨터에서 그것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누구에게 요청하는 것인지? 목적하는 바를 도통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제일 알쏭달쏭한 점이다. 사실 한글자모를 IPA 부호계로 쓰고 싶어하는 분이 단지 심교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기존에게 한양대, 동국대를 비롯하여 국문학과, 동아시아학과, 컴퓨터 공학과에 계신 교수님들께 꾸준히 들어온 내용이다.
필자가 참여하여 90년대 초부터 만들었던 현재의 한글 코드체계(KS, ISO, Unicode)에는 그 분들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한글을 사용하여 표현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이미 오래전부터 열려 있었다. 게다가 코드체계 뿐만 아니라 그걸 실제로 구현하여 서체를 만들고, 입력기를 만들고, 운영체제에 그걸 표현하고 처리할 수 있게 내장한지도 벌써 20년이 넘어간다. 그런 노력에 힘입어 한글을 사용하는 현세대의 한국인은 예전에 컴퓨터에서 한글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 세대가 어떤 힘겨운 싸움을 하며 기술을 개발하고 국제 표준에 참여하여 그걸 관철해 왔는지 전혀 알 필요 없이, 세종대왕만을 마음껏 칭송하며 자연스럽게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한글을 IPA 부호계로 만들고 싶어하는 분들은 단순히 옛한글자모 몇 개를 살려서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한글에 없는 V, B의 구분, P, F의 구분 등을 할 수 있는 각종 자모들과 음성의 성조를 표현하는 부호를 만들어 글자를 쓰고 싶어하는 것이다. 개개인 교수님들은 “자신의 것은 꼭 그렇지는 않다”라고 할 지 몰라도, 그 각각의 모든 요청사항을 받아온 필자에게는 꽤나 많고 복합한 내용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대목에서 그렇게 만든 것이 우리의 한글정책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갸우뚱하게 된다. 당신들이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새로운 글자 시스템이지 그게 세종께서 만드신 한글인가 말이다.
국제표준문자코드(ISO, Unicode)를 만들 때 부호계에 넣는 문자의 요청은 분명히 “기존에 존재하며”,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출판되어 문헌으로 남아있는”것으로 한정한 이유가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몇몇 분들의 호기에 의하여 전세계인이 사용하는 체계에 그것을 섣불리 만들어 반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날을 맞이하여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우리 기존의 연구자들은 수십년간 컴퓨터에서 한글체계를 만들고, 국제협력환경에서 오랜 노력으로 그걸 표준화하고 실제로 구현해 왔다. 몰랐다면 지금이라도 있는 것부터 좀 찾아보고 이야기도 하시고, 기사도 쓰시라. 서체가, 입력기가 없어서 못하겠다면 요새 초등생도 배우는 프로그래밍을 직접 배우셔서 인공지능을 써서 하시던가, “본인의 돈”을 써서 개발하시라. 제발 타인에게 정확치도 않은 요청을 담아, 모든 탓이 국어정책이나 기존의 연구자들이 잘못해서 벌어진 것처럼 중요한 지면을 써서 어지럽게 하지 마시고, 직접 노력들 좀 하시라는 이야기다. 이 글에 대한 반론은 사양한다. 기사 보다 더 긴 글을 쓴 노력만으로도 내가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즐거운 한글날 저녁을 만끽하시길 바란다.
2024년 한글날에, 평생 한글체계 연구를 해온, 이젠 늙어서 힘이 빠진 연구자가 씀
[참고문헌]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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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lium님의 댓글의 댓글
@someshine님에게 답글
언어나 맞춤법 개혁은 어느 언어에나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Language_reform
https://en.wikipedia.org/wiki/Spelling_reform
https://en.wikipedia.org/wiki/Language_reform
https://en.wikipedia.org/wiki/Spelling_reform
someshine님의 댓글의 댓글
@nilium님에게 답글
아마 제가 ㅋㅋㅋ 국어 공부에 실증이 날 때 쯤 핑계로 찾았을수도 있습니다만 유독 너무 대량의 변화를 일시에 준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습니다.
someshine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