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이유
알림
|
페이지 정보
작성일
2024.10.14 11:39
본문
이 말을 한 사람은 개신교 선교사도 아니고 이슬람교 이맘도 아닙니다. 바로 중국 당나라 말기 고승인 임제 의현 선사의 <임제록>에 나옵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사물에 구애되지 않고 투철히 벗어나 자유자재로워진다.”
언듯 보면 저 스님 살인광인가 싶겠지만, 의외로 이 구절은 날카로운 칼과 같은 논리와 사상이 숨어 있습니다. 당시 불교는 불상을 모시고 교리를 암기하고 공부하는 걸 최고로 여겼습니다. 그걸 비판한 겁니다.
이는 승려들이 깨달음을 위해 수행을 하면서 불상과 경전에만 집착하면서 한 말이죠. 불상과 경전은 부처와 그 가르침을 담은 포장지고 그 포장지 안의 내용물을 꺼내먹어야 하는데, 승려들은 정작 그 포장지를 집착한다고 본 거죠.
즉 깨달음을 위해서는 본질을 보나야 하고, 그걸 보지 못하면 그 방해하는 걸 없애란 겁니다. 이 메세지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불교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댓글 15
/ 1 페이지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뜨쉬뜨쉬님에게 답글
한국 조계종도 임제종의 한 갈래입니다.
통일신라 시대 구산선문에서 시작했죠.
통일신라 시대 구산선문에서 시작했죠.
Badman님의 댓글
두우비님의 댓글
어제 만난 지인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는데,
오늘 여기서 같은 논제를 보게 되니 신기합니다.
오늘 여기서 같은 논제를 보게 되니 신기합니다.
whocares님의 댓글
눈 앞의 부처를 죽이라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 속에 모셔 둔 부처를 죽이라는 얘기가 아닐까요?
자비님의 댓글의 댓글
@개복치는몰라몰라님에게 답글
동자승이 온돌에 군불을 목재 부처를 도끼로 패서, 잘 마른 나무라서 잘 탄다.... 그러면서 좋아하더랍니다.
사유 재산 혹은 문화재 파괴라는 문제에서 자유로울순 없지만, 종교적 관점에선 아무런 문제 없죠.
사유 재산 혹은 문화재 파괴라는 문제에서 자유로울순 없지만, 종교적 관점에선 아무런 문제 없죠.
빅머니님의 댓글
대부분의 종교는 그 내부에 심종과 교종 두 분파로 갈라집니다.
교종은 교리를 중시하는 분파이고, 심종은 내적수양을 중시하는 분파로 보시면 됩니다. 유교의 경우 안자가 요절하면서 사실상 교종 위주로 이어졌지만, 불교는 그래도 대승불교를 필두로 한 교종과 선종을 필두로 한 심종이 모두 살아남았습니다.
심종 입장에서는 개인이 깊은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불성을 깨우치는 것이 목적인데 교종은 불성보다는 부처를 신격화하며 구원자로 받들기 때문에 부처를 죽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교종은 교리를 중시하는 분파이고, 심종은 내적수양을 중시하는 분파로 보시면 됩니다. 유교의 경우 안자가 요절하면서 사실상 교종 위주로 이어졌지만, 불교는 그래도 대승불교를 필두로 한 교종과 선종을 필두로 한 심종이 모두 살아남았습니다.
심종 입장에서는 개인이 깊은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불성을 깨우치는 것이 목적인데 교종은 불성보다는 부처를 신격화하며 구원자로 받들기 때문에 부처를 죽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PLA671님의 댓글
그런데 저렇게 시작한 선불교도 종파/문중간 헤게모니 싸움으로 서로 비방질과 족보뜯어고치기가 끊이질 않았으니, 어떠한 사상이나 조직으로도 인간은 변함이 없습니다. (먼 산)
WinterIsComing님의 댓글의 댓글
@PLA671님에게 답글
원래 둘 이상 모이면 정치라고 하죠. 심지어 부부사이도 정치가.지배 한다는....
단식자님의 댓글
제가 알기로는 깨달음은 이 우주 전체가 분리될 수 없는 통합된 하나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를 만났다는 것은 나외에 부처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깨달음을 위해서는 부처와 나는 통합되어야만 하지요. 그래서 부처를 죽이란 말이 나온겁니다.
세이투미님의 댓글
지금의 종교에도 유효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하느님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