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30년 전 이맘때 중국 출장 갔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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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무비자 정책을 편다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1994년 딱 이맘 때 10일 간 중국 우한과 상해로 출장을 갔었습니다.
일하고 저녁에는 거리를 돌아다니고 휴일에는 여행을 다니다 급기야는 우한대학교 다니던 연변 출신 조선족 여학생을 만나 데이트를 하기도 했었죠.
요즈음 텔레비전에 나오는 우한과 달리 당시에는 아직 발전이 안돼 우한은 정말 시골스러웠어요. 양쯔강 주변 황학루와 동호(아주 아주 오래 전에 만든 엄청난 규모의 인공호수)가 대표적인 관광지였는데, 후베이성 외교부 관리들이 인공호수를 증명하는 제방을 보여줬던 기억이 납니다. 중국공산당의 2인자였던 저우언라이(주은래)가 활동하던 곳이라 그와 관련한 유적도 있어 구경하기도 했었습니다.
우한의 가장 자랑거리는 우한대학교였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베이징대만 명문대로 기억하지만 중국 내륙 깊숙하게 자리잡은 우한대학교가 중국 5대 명문대학 중 하나라고 하더라구요. 그레서 입학하기도 무척 어렵다는데 거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온 연변 출신 여학생과 데이트 하느라 기숙사도 가보고 대학 안에 있던 영화관도 가서 같이 영화도 보고 그랬습니다. 그 친구는 베이징대도 갈 수 있었지만 집과 가장 먼 대학교를 찾아 우한으로 왔대요. 연변까지 기차로 3박4일 걸린다고 하더군요.^^ 우한대학교 캠퍼스 규모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웬만한 도시 하나가 대학교 캠퍼스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구체적인 장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래된 성문이 있는 광장에서 저녁 마다 젊은이들이 나와 사교춤을 추며 서로의 파트너를 찾던 아주 풋풋한 장면입니다. 당시 상해만 하더라도 자본주의 물이 잔뜩 들어 매춘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으나 우한은 그러기엔 아주 시골이어서 젊은이들이 서로 만날 장소가 이런 공간뿐이라고 하더군요. 시원한 가을 날씨에 얼굴에 홍조를 띤 젊은 남녀가 사교춤을 추던 모습은 한 편의 영화같아 제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제는 나이도 먹고 여권도 없어 해외여행 갈 생각 자체를 안합니다.
여권이 없다는 핑계로 아내와 애들만 해외여행 보내고 저는 집에서 유튜브 보면서 솔로를 만끽했었죠.
만약 다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우한에 다시 한 번 가봤으면 좋겠어요.
비록 출장이지만 해외 첫 여행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 듯 합니다.
홍성아재님의 댓글의 댓글
중국 기숙사를 통해 연락을 해야 하는데, 수 백 명이 있는 기숙사에 전화가 딱 1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적어준 대로 누구 바꿔달라고 아무리 중국어로 해도 못 알아들었어요. 편지를 보내면 두 달이 걸려 그 친구가 제가 한국 가서 잊었다고 오해해 엄청 화가 나 편지를 보냈던 기억도 납니다.
블루지님의 댓글의 댓글
통화하려면 미리 시간을 약속하고 정해진 시간에 전화하고 받았어야 했을 시절이네요.
일분의기억님의 댓글
그나저나 그 여학생 물론 예뻤지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