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연구에서 일본측 사료 안 보는 이유.png

알림
|
X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코미 104.♡.68.24
작성일 2024.11.25 16:12
2,304 조회
16 추천
쓰기

본문

100m 목선에 7m 활..

조선군은 키가 15~20m인 모양입니다.

댓글 18 / 1 페이지

로얄가드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로얄가드 (220.♡.71.208)
작성일 11.25 16:13
일본인 사료 대로 라면 이순신 장군님 입에서 번개숨결 쓰신다고 하죠

박스엔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박스엔 (210.♡.46.70)
작성일 11.25 16:15
@로얄가드님에게 답글 이순신 장군님이 토르 같았나 보군요..

다시머리에꽃을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다시머리에꽃을 (106.♡.192.37)
작성일 11.25 16:13
자기들 패한게 쪽팔려서 과장했나 보네요

이루얀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이루얀 (118.♡.13.155)
작성일 11.25 16:13
그만큼 위압감을 느꼈다는 심리적 반증일까요ㄷㄷ

HTTR님의 댓글

작성자 HTTR (121.♡.146.165)
작성일 11.25 16:15
'조선 수군이 저래서 우리가 졌다니까요' 라고 토요토미 히데요시한테 보고해야 해서요 ㅋㅋㅋ

heltant79님의 댓글

작성자 heltant79 (61.♡.152.209)
작성일 11.25 16:15
쫄았네요 ㅋㅋㅋㅋ

밤페이님의 댓글

작성자 밤페이 (210.♡.70.162)
작성일 11.25 16:16


아니.. 뭔 배에서 이런게 막 날라 오는데..어떻게 이겨요....
라고 하기 위해 저걸 들고 갔던건..사실.. ㅋㅋ

츄하이하이볼님의 댓글

작성자 츄하이하이볼 (172.♡.95.41)
작성일 11.25 16:20


트라우마가 그만큼 컸다는 거겠죠.
오죽하면 그 날으는 대들보를 일본에 증거로 가져갔을..

PearlCadillac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earlCadillac (118.♡.7.30)
작성일 11.25 16:55
@츄하이하이볼님에게 답글 세계최초 대함미슬 쏘아대던 조상님들 ㄷㄷㄷ

고치리전파사님의 댓글

작성자 고치리전파사 (112.♡.166.136)
작성일 11.25 16:26
활이 7m면 조선수군의 키가 얼마나 되야 쏠 수 있는건지...
파묘에 나오는 그 몹쓸놈보다 훨 커야 겠는데요.

힙업님의 댓글

작성자 힙업 (59.♡.33.129)
작성일 11.25 16:29
동아시아 전근대 기록이 과장이 심하긴 하죠.
조선의 기록도 "~와 같았다, ~하니 수만의 ~이 나와" 이런 식의 건조하지 않은? 서술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일본도 못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엄청나게 겁에 질리고 패배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기를 쓰는 구나...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고슷케이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고슷케이 (218.♡.235.74)
작성일 11.25 16:31
실제보다 커 보이는 그 기세와 위압감!!! 북두신권 보니까 자주 나오더라구요. 일본 전통(?)관념인 듯~ ㅎㅎㅎㅎㅎ

토토츠님의 댓글

작성자 토토츠 (223.♡.99.205)
작성일 11.25 16:34
일본 특성 상 이기지 못하는 존재는 신격화 하거나 과장하게 부풀리는 경향이 많죠.

PLA671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PLA671 (175.♡.110.137)
작성일 11.25 16:36
전투를 겪어도 적의 전력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게 어렵긴 하죠. 특히 상이한 무기를 쓴다면요. 화포뿐 아니라, 활조차 자신들에겐 없던 복합궁이니, 이 정도 사거리가 나오네?를 자기들 활에 환산하면 몇 m급으로 환산될지도 모릅니다. (먼 산)
봉건제 사회라 국가 차원에서 (흔히 정사라고 부르는)공간사를 편찬하지 않고 각 지역별로 기록을 남기니, 왜곡과 날조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면도 있죠.

잎과줄기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잎과줄기 (121.♡.30.134)
작성일 11.25 16:40
조선측 기록: 국가 공식 기록인 실록 + 전시 내각 수상겸 국방부 장관의 처절한 자기 반성적 회고록(징비록) + 해군 참모총장의 세세한 것까지 다 기록한 전시 일기(난중일기) + 기타 공문서와 개인 기록 등 여러 기록들 많음. >>>>>>>>>>> + 제일 신빙성이 떨어지는 사료는 만장 등 해당 인물 죽고 나서 장례식 때 추켜세워주던 기념사


일본측 기록: 공식 기록 없다시피 함 + 사료적 가치가 높은 개인 기록도 거의 없음 >>>>>>> 그나마 좀 있는 것은 참전한 장수의 가문 기록이나 개인 기록(우리나라 만장과 거의 비슷한 정도의 신빙성)

Typhoon7님의 댓글

작성자 Typhoon7 (118.♡.6.185)
작성일 11.25 16:52
가설1) 도량형이 같은 명칭이지만 당시 일본과 현대 한국에서 다른 값을 갖는다.
가설2) 졌다는게 '쪽팔려서' 과장을 했다.
가설3) 겁에 질려 착란속에서 조선수군이 거대해 보였다.
어떤걸까요.

"에잇... 조선의 수군은 괴물인가!"

포졸작곡가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졸작곡가 (165.♡.136.95)
작성일 11.25 16:53
@Typhoon7님에게 답글 아마도 2번 같네요....

임진왜란은 다 이긴건데
이순신 치트키 때문에 졌다고 하려면 과장이 필요해 보여요...

요오옹님의 댓글

작성자 요오옹 (121.♡.136.19)
작성일 11.25 19:54
비밀병기 우주전함 윤영하함을 보면 뭐... 저게 사실기록였을수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쓰기
홈으로 전체메뉴 마이메뉴 새글/새댓글
전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