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연구에서 일본측 사료 안 보는 이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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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11.2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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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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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페이님의 댓글
PearlCadillac님의 댓글의 댓글
@츄하이하이볼님에게 답글
세계최초 대함미슬 쏘아대던 조상님들 ㄷㄷㄷ
고치리전파사님의 댓글
활이 7m면 조선수군의 키가 얼마나 되야 쏠 수 있는건지...
파묘에 나오는 그 몹쓸놈보다 훨 커야 겠는데요.
파묘에 나오는 그 몹쓸놈보다 훨 커야 겠는데요.
힙업님의 댓글
동아시아 전근대 기록이 과장이 심하긴 하죠.
조선의 기록도 "~와 같았다, ~하니 수만의 ~이 나와" 이런 식의 건조하지 않은? 서술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일본도 못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엄청나게 겁에 질리고 패배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기를 쓰는 구나...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조선의 기록도 "~와 같았다, ~하니 수만의 ~이 나와" 이런 식의 건조하지 않은? 서술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일본도 못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엄청나게 겁에 질리고 패배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기를 쓰는 구나...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고슷케이님의 댓글
실제보다 커 보이는 그 기세와 위압감!!! 북두신권 보니까 자주 나오더라구요. 일본 전통(?)관념인 듯~ ㅎㅎㅎㅎㅎ
PLA671님의 댓글
전투를 겪어도 적의 전력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게 어렵긴 하죠. 특히 상이한 무기를 쓴다면요. 화포뿐 아니라, 활조차 자신들에겐 없던 복합궁이니, 이 정도 사거리가 나오네?를 자기들 활에 환산하면 몇 m급으로 환산될지도 모릅니다. (먼 산)
봉건제 사회라 국가 차원에서 (흔히 정사라고 부르는)공간사를 편찬하지 않고 각 지역별로 기록을 남기니, 왜곡과 날조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면도 있죠.
봉건제 사회라 국가 차원에서 (흔히 정사라고 부르는)공간사를 편찬하지 않고 각 지역별로 기록을 남기니, 왜곡과 날조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면도 있죠.
잎과줄기님의 댓글
조선측 기록: 국가 공식 기록인 실록 + 전시 내각 수상겸 국방부 장관의 처절한 자기 반성적 회고록(징비록) + 해군 참모총장의 세세한 것까지 다 기록한 전시 일기(난중일기) + 기타 공문서와 개인 기록 등 여러 기록들 많음. >>>>>>>>>>> + 제일 신빙성이 떨어지는 사료는 만장 등 해당 인물 죽고 나서 장례식 때 추켜세워주던 기념사
일본측 기록: 공식 기록 없다시피 함 + 사료적 가치가 높은 개인 기록도 거의 없음 >>>>>>> 그나마 좀 있는 것은 참전한 장수의 가문 기록이나 개인 기록(우리나라 만장과 거의 비슷한 정도의 신빙성)
일본측 기록: 공식 기록 없다시피 함 + 사료적 가치가 높은 개인 기록도 거의 없음 >>>>>>> 그나마 좀 있는 것은 참전한 장수의 가문 기록이나 개인 기록(우리나라 만장과 거의 비슷한 정도의 신빙성)
포졸작곡가님의 댓글의 댓글
@Typhoon7님에게 답글
아마도 2번 같네요....
임진왜란은 다 이긴건데
이순신 치트키 때문에 졌다고 하려면 과장이 필요해 보여요...
임진왜란은 다 이긴건데
이순신 치트키 때문에 졌다고 하려면 과장이 필요해 보여요...
로얄가드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