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윤석열 불신임을 미국은 어떻게 볼까, 뇌피셜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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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산혁신당 121.♡.122.153
작성일 2024.12.05 18:23
682 조회
5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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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LA 폭동에 관한 글입니다.

As the riots began to spread, it was soon made clear to the residents of Ktown that the police had abandoned them to protect the more affluent neighborhoods. Roads between Ktown and wealthy Beverly Hills/West Hollywood were blocked off by LAPD. A Korean-American resident later recalled: "The police cut off traffic out of Koreatown, while we were trapped on the other side without help. Those roads are a gateway to a richer neighborhood. It can't be denied." The residents of Ktown also testified that emergency responders began to ignore their calls for help.

폭동이 커지고 있는데, 경찰들은 코리아타운은 포기하고 부유한 배버리힐즈, 서 헐리우드만 지키고 코리아타운을 내주려했고, 코리아타운과 부자동네를 오가는 길은 LA경찰이 막아버렸다. 나중에 주민은 이와 같이 말했다: 우린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그곳에 고립되어버렸다. 그리고 경찰은 우리의 전화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도우러 오지 않는다는걸 깨달으면서, 코리아타운 주민들은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그냥 동네 갱단 수준이 아니라 한국에서 군복무해본 경력을 되살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 것이다. 이들이 얼마나 규율이 잡혀있었냐면, 그들의 재산이 강탈당하더라도 침착하게 공권력의 도움을 요청했었고, 그것이 무산되자 최후의 방법으로 무장을 택한 것이었다. 그들의 조직된 움직임 하에 겁 많은 약탈자들은 근처도 얼씬하지 않았고, 총 따위 겁나지 않아! 하며 더 가까이 접근한 약탈자도 자기 주변으로 총알이 날아다니는걸 보자마자 줄행랑치기 바빴다. 결과적으로 약탈자들이 사살된 경우는 0건이었다.

Upon realization that "no one is coming to help," the residents of Ktown whom the looters had expected to be soft targets began to take action. What the looters failed to realize was that a large percentage of the adult male population of Ktown had years of military experience due to the Republic of Korea's mandatory military service. There was no 'social media' back in those days, so Radio Korea became the nexus of information for local security teams to coordinate, gather and protect what was left of their community. Videos and photos of these Korean Americans manning the rooftops and engaging in gunfights have become widely shared today. However, some of the nuanced facts become more clear if you see some of the interviews with these Rooftop Koreans. Most importantly, they were NOT gung-ho vigilantes but rather reluctant warriors who overcame their fears to fight back only when they realized that the government wouldn't protect them. This itself is a telling point in that these law-abiding citizens patiently waited for their newly adopted government to take action even while most of their livelihood was being torn apart. It was only when they realized that they were on their own did they take action.


스스로를 보호할 줄 아는 용감한 시민들을 영웅으로 대접하고, 필요할 땐 공권력의 도움을 받지 않거나 심지어 공권력에게 대항하여 무장할 권리도(미 수정헌법 제2조) 보장된 곳이 미국입니다. 그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이 어떻게 보일까요? 네이버 블로그 신뢰의 아이콘을 놓고 아무것도 안 써도, 여러분들은 다 아실거라 믿습니다.

댓글 2 / 1 페이지

바람처럼1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바람처럼1 (58.♡.160.122)
작성일 2024.12.05 18:27
1번사진이 la 때 사진 마ㅈ1요?
180 랜덤 럭키포인트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부산혁신당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부산혁신당 (121.♡.122.153)
작성일 2024.12.05 19:04
@바람처럼1님에게 답글 92년 la 폭동 옥상 한인으로 찾으니까 제일 먼저 뜨는 사진인데 맞지 않을까요..? 아닐수도 있다는 느낌으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다른 상황의 사진이라고 본 적이 있다거나 하신것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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