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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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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파자마JOE 1.♡.59.92
작성일 2024.12.09 16:59
2,22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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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12월 4일 비상계엄 선포가 해제되었습니다. 


전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딸 아이에게 들었습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사회 과목을 가르쳐 달라고 하기에

평소와는 달리 집에 있지 않고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시간에 아이들과 있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가 말합니다. 

"비상계엄 선포라는데 이게 뭐야?"

네 친구가 뭐 그런걸 장난이라고 문자를 보내냐며 나중에 설명해주겠노라 했습니다. 그리고, 공부 중인데 왜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냐고 살짝 타이르면서요.


나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맞더군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창 밖 한강다리와 올림픽대로에 차들이 멈춘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자

뛰어 갔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음 졸이며 밤을 새워 계엄선포가 해제되는 시간까지 온갖 미디어들을 동시에 틀어놓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간이 더디 흘러감을 원망하며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재운 뒤 혼자 불꺼진 어둠 속에 노트북과 전화기의 불빛들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방에 쪼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딸애에게 가르치던 부분은 민주주의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정치제도, 지방자치제, 삼권분립, 법과 제도 등 이었습니다.

너무나 아이러니 했습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들이 사실은 그냥 말 뿐이야라고 변명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럼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에 대한 지식으로써의 믿음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난 이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것인지... 아니 차라리 비겁하게나마 살아가는 방법을 혀를 깨물면서라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끝도 없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고민만의 시간이 지나고 그 다음날이 또 다음날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탄핵소추안 표결일이 다가와 시위 현장의 이모저모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영상 속에 이미지 속에 보이는 20-30대 청년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최루탄 좀 90년대에 맡아봤고 등투하면서 손 좀 치켜들어봤다는 그간의 선민의식과 자부심이 

부끄러움의 바닥을 찾기 힘들만큼 바보스런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전두환의 군사반란을 겪고 알았으며 내 동기는 광주민주화항쟁의 아픔에 술자리에서 조차 그 누구도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하며 가슴 속에 어떤 재건술로도 흐려지지 않는 흉터를 가지고 살아왔으며 이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받은 거라 착각했습니다. 


어제 다시금 아이의 사회교과서를 다시 꺼내어 천천히 읽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나이들고 굳어 버린 머리 속에 

그냥 텍스트일 뿐이라고 치부되었던 글자 하나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절절이 느꼈습니다.


미래는 청년들의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들은 우리가 뭐라하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백골단의 청청패션을 본 적 없어도, 닭장차가 뭔지 몰라도, 사수대가 뭔지 몰라도, 동아리방에서 끝없는 공부가 없어도,

최루탄의 매콤함을 몰라도 청년들은 "민주주의"라는 이념에 누구보다 투철하게 무장되어 있으며 자유에 대해 무엇보다

높은 값어치를 매겨놓았으며 그 이념과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훈련까지도 저보다도 훨씬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아이돌 콘서트에서 4시간 씩 하나를 위해서 모여 함께 외치고 노래하고 함께 행동하며 자라온 세대. 그들은 이미

하나의 목표를 위해 스스로 행동하고 표현하는 것에 과거 우리보다 훨씬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미래를 신세질 생각에 고맙습니다. 

청년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도 결국 라떼나 찾고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에게 비루하기 짝이 없는 우월감만 가지고 미래 세대인 여러분들을 신뢰하지 못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저조차도 여러분은 미래에 품어 주실테지요. 사회에서 안아주고 보듬어주실테지요. 그리하고 싶지 않으시더라도

하실 수 밖에 없으시겠지요. 


그래서, 여러분께 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것까지 모아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12월 3일 그 순간 사회 선생님이 아니었음에 안도하는 어느 아버지 올림. 

댓글 4 / 1 페이지

일리어스님의 댓글

작성자 일리어스 (211.♡.22.79)
작성일 12.09 17:03
저는 12월 3일 계엄선고후

초4 아들에게  계엄이 무엇인지.
3권분립이 무엇인지.
지금 정부는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습니다.

일단 윤석렬나쁜넘 이라는건 이미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것 같은데
왜 인지는 모르고 밈 같아서
설명해주니 잘 알아듣고
그러면 안되지 라고 반응하는걸 보고 안도했습니다.

ㅡIUㅡ님의 댓글

작성자 ㅡIUㅡ (223.♡.86.198)
작성일 12.09 17:08
뭘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세요.
배운게 틀린게 아니고
저들이 틀린것 입니다.
바로잡아야할 때를 놓쳐
지금이라도 해야할 일인거죠.
해냅시다. 더 안부끄럽게

미스란디르님의 댓글

작성자 미스란디르 (210.♡.129.172)
작성일 12.09 17:36
아이들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나는 것이지요.
38 랜덤 럭키포인트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OompaLoompa님의 댓글

작성자 OompaLoompa (116.♡.148.251)
작성일 12.09 18:01
홍사훈 기자님의 응원봉 집회 소회와도 결을 같이 하는 느낌입니다. 글 감사합니다.
53 랜덤 럭키포인트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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