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만에 반공법 위반 무죄 “尹 계엄에 극심한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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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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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만에 반공법 위반 무죄 “尹 계엄에 극심한 트라우마”
군부 고문에 거짓 자백해 실형…교사 출신 이태영 씨 재심 무죄- 판결 앞 비상계엄 불안에 떨어
- “부끄러운 역사 반복돼선 안 돼
- 거리로 나선 젊은이들 대견해”
군사정권 시절 반공법 위반으로 끌려가 고문으로 거짓 증언을 강요받아 실형을 살았던 부산의 한 교사가 44년 만에 무죄를 인정받았다. 평생을 ‘빨갱이’로 몰린 피해자는 최근 비상계엄 사태로 당시의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또다시 유죄가 될까 불안에 떨어야 했다.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장기석)는 11일 과거 반공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이태영(69) 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무죄를 구형한 점과 과거 피고인이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인정돼 당시 진술의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거나 일부 인정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당시 유죄 근거는 피고인 진술과 수사기관의 조서 등인데, 실제 이와 같은 말을 했더라도 술자리 등에서 개인적 의견 표명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봤다.
부산대 사범대학을 졸업한 이 씨는 경남 통영에서 독어 교사로 일하다 1980년 방위병으로 소집돼 부산 훈련소에 입대했다. 훈련을 받던 그는 갑자기 부산 보안대에 끌려가 며칠간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대학 시절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고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에서다.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이 씨는 거짓 공소사실을 강제로 인정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살았다. 당시 고등학교 동기가 자신을 불순 언동을 하는 사람으로 지목해 보안대 사찰을 받는 등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 씨는 출소 후 복직도 요원했다. ‘빨갱이’로 낙인찍혀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교단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는 학원 강사로 일하다 해고되는 등 수난을 겪다 1999년 복직해 2018년 퇴직했다.
이 씨는 오랜 시간 무죄를 입증하려 했으나, 국방부에 관련 서류를 신청해도 받지 못하는 등 어려움이 컸다. 그러다 올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국가폭력 피해자로 인정받아 재심 청구를 할 수 있었다. 유죄 선고 후 무려 44년 7개월 만이었다.
지난 44년은 이 씨를 비롯해 가족에게 고통의 세월이었다. 출소 후 혼인한 아내 역시 멸시를 견뎌야 했다. 이날 선고를 마치고 나온 이 씨는 종이에 “빨갱이 마누라로 사느라 욕 많이 봤다”며 아내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했다. 후두암 투병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가 아내에게 전한 진심이었다. 아내 목소리로 대신 취재진에게 심경을 밝힌 이 씨는 “머릿속 무거운 바위를 내려놓는 기분”이라며 “기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고 전했다.
최근 비상계엄 사태 때는 과거 트라우마가 도지기도 했다. 이 씨의 아내 박문옥 씨는 “판결을 앞두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비상계엄 사태로 무죄가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며 “선고까지 하루가 10년 같았는데 남편은 긴 세월을 이렇게 살았다고 생각하니 먹먹했다”고 토로했다.
이 씨 부부는 “유대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며 “최근 거리로 나서는 젊은이들이 대견스럽고 다시는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선 안 된다”고 심정을 전했다.
부산대 사범대학을 졸업한 이 씨는 경남 통영에서 독어 교사로 일하다 1980년 방위병으로 소집돼 부산 훈련소에 입대했다. 훈련을 받던 그는 갑자기 부산 보안대에 끌려가 며칠간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대학 시절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고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에서다.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이 씨는 거짓 공소사실을 강제로 인정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살았다. 당시 고등학교 동기가 자신을 불순 언동을 하는 사람으로 지목해 보안대 사찰을 받는 등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 씨는 출소 후 복직도 요원했다. ‘빨갱이’로 낙인찍혀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교단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는 학원 강사로 일하다 해고되는 등 수난을 겪다 1999년 복직해 2018년 퇴직했다.
이 씨는 오랜 시간 무죄를 입증하려 했으나, 국방부에 관련 서류를 신청해도 받지 못하는 등 어려움이 컸다. 그러다 올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국가폭력 피해자로 인정받아 재심 청구를 할 수 있었다. 유죄 선고 후 무려 44년 7개월 만이었다.
지난 44년은 이 씨를 비롯해 가족에게 고통의 세월이었다. 출소 후 혼인한 아내 역시 멸시를 견뎌야 했다. 이날 선고를 마치고 나온 이 씨는 종이에 “빨갱이 마누라로 사느라 욕 많이 봤다”며 아내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했다. 후두암 투병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가 아내에게 전한 진심이었다. 아내 목소리로 대신 취재진에게 심경을 밝힌 이 씨는 “머릿속 무거운 바위를 내려놓는 기분”이라며 “기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고 전했다.
최근 비상계엄 사태 때는 과거 트라우마가 도지기도 했다. 이 씨의 아내 박문옥 씨는 “판결을 앞두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비상계엄 사태로 무죄가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며 “선고까지 하루가 10년 같았는데 남편은 긴 세월을 이렇게 살았다고 생각하니 먹먹했다”고 토로했다.
이 씨 부부는 “유대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며 “최근 거리로 나서는 젊은이들이 대견스럽고 다시는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선 안 된다”고 심정을 전했다.
조성우 기자 holycow@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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