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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5.17 쿠데타도 시민들의 힘으로 거의 막을 수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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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벽오동심은뜻은 128.♡.187.153
작성일 2024.12.1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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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신군부에 저항하는 시위의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고 5월 15일에 절정에 달했읍니다

신군부로서도 총칼로 저지해보고 싶어도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읍니다

더군다나 미국이 두눈 딱 뜨고 지켜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긍데 어떤 재처리도 못할 버러지가 회군하자고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급반전 되었고

군인들은 서울에서 뺨맞고 광주에서 피칠갑하는 최악의 비극이 벌어진겁니다

에라이 ㄷㄷㄷㄷㄷ


댓글 12 / 1 페이지

lioncats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lioncats (122.♡.172.80)
작성일 09:41
이런일들 이번년도의 일들이 다신 벌어져선 안됩니다
같은 민족이라는 놈들이 같은민족을 죽이려 하는 행위는요

gaiago님의 댓글

작성자 gaiago (118.♡.10.143)
작성일 09:42
그 유명한 서울역회군이군요

aeronova님의 댓글

작성자 aeronova (164.♡.222.58)
작성일 09:42
서울역 회군을 결정한 놈이 지금 국힘당에 있습니다..

벽오동심은뜻은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벽오동심은뜻은 (128.♡.187.153)
작성일 09:45
@aeronova님에게 답글 그것도 본인 지역구 옆동네에서 5선이나 해먹었읍니다 ㄷㄷㄷ

alchemy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alchemy (106.♡.139.87)
작성일 09:44
결과론적인 해석 아닐까요?
한치앞도 안보이는 엄혹한 상황에서의 결정입니다.
안타까울수는 있지만 비난할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ruler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ruler (221.♡.188.10)
작성일 09:51
@alchemy님에게 답글 결과론적으로 그 놈이 국힘 5선의원이네요?

만보자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만보자 (112.♡.235.37)
작성일 09:50
결과론적 해석이예요.

그리고 미국은  민주니 인권이니 떠들지만  미국이익에 부합되면 독재정권도 마다하지 않는 정권입니다.
민주정권을 붕괴시키고 독재정권을 세우는 나라가 미국.

그래서 5.16  12.12쿠테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고
5.17상황은 거의 다 장악되고 통제된  상황에서  발생된 것이라서 ....

나르는곰돌이2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나르는곰돌이2 (165.♡.230.201)
작성일 09:59
당시에는 유튜브가 없었고,
가장 돈이 많은 한국은행은 정권이 장악가능했으며,

만약의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는 외국 자본도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 한국군이나 극소수 미친 자들이 쉽게 정권찬탈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한국보다 더 덩치가 큰 한국계 해외 자본이, 만에 하나 정권을 바꾸겠다고 작전을 펴면
여기서 총칼을 휘둘러 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죠.
이런 것도 모르고, 친위쿠데타를 기획한 놈들도 바보지만
이런 통제 불가능한 요소가 베재되지 않은 채 정치를 바라봐야 하는 우리 국민 입장도
생각이 복잡해 집니다.

TeunTeun님의 댓글

작성자 TeunTeun (203.♡.146.125)
작성일 10:06
5.18이 결국 전두환 집권을 종식시킨 6월항쟁과 내란죄의 뿌리가 된 것을 보면
전두환 집권의 정당성을 박탈할 기회를 주권자 스스로 내려놓은 결정이
바로 재처리 못할 결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왜 이 악물고 안죽었냐고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국민 주권을 총칼 앞에 내주면 어떻게 되는지 좋은 본보기일 뿐이죠.

아침햇살님의 댓글

작성자 아침햇살 (123.♡.174.59)
작성일 10:41
위키피디아
5·15 서울역 시위는 1980년 5월 15일에 일어난 시위로, 서울역 회군이라는 명칭으로 자주 불린다. 1980년 5월 초 계엄령하에 억눌려있던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5월 13일부터 학내에 머무르던 대학생들은 가두로 진출하여 시위를 벌였다. 5월 15일에는 서울역 지상 광장 앞에서 10만여 명 이상의 대학생 및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시위대는 조속한 시일 내에 계엄을 해제하고 민주화를 추진할 것을 주장했다. 이날 밤 8시까지 시위는 계속됐다.

마이크로버스에서 있었던 학생 지도부 회의에는 심재철(서울대 학생회장), 신계륜(고려대 총학생회장), 형난옥(숙명여대 총학생회장), 이해찬(서울대 복학생 대표) 등과 서울대학교 학생처장 이수성이 참석하였다.

회의에서 신계륜 등의 철야 농성 주장과 심재철 등의 쿠데타의 빌미를 줄 수 있으므로 퇴각하자는 주장이 부딪쳤다. 이수성은 내무부장관과 총리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안전귀가 보장을 받으며, 해산을 설득하였다.

계속된 농성으로 의사 표명은 달성했고 계속될 경우 군이 개입할 명분을 준다하는 주장이 나오자, 심재철이 해산을 발표했다 5월 16일 전국총학생회 회장단은 정상 수업을 받으며 당분간 시국을 관망하기로 결정했다.

아침햇살님의 댓글

작성자 아침햇살 (123.♡.174.59)
작성일 10:41
"심재철 등의 쿠데타의 빌미를 줄 수 있으므로 퇴각하자~~"
힘과 힘이 대결할 때 민주주의는 다수 시민의 결집이 유일한 힘입니다.
5월 15일 우리가 스스로 힘을 없애자 마자
전두환은 5월 17일 24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광주 학살과 항쟁이 이어졌습다.

아침햇살님의 댓글

작성자 아침햇살 (123.♡.174.59)
작성일 10:42
민주화 세력이 빌미를 주어서 쿠데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 세력이 힘이 없을 때 쿠데타를 합니다.
다수 시민의 열기를 어떻게 계속 힘으로 유지하냐입니다.

87년 6월 항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수십만이 모였지만
청와대로 행진하다가 흩어졌습니다.(해산)
그 이후 정치권이 헌법특위를 만들면서
6월 시민의 열기를 사그러뜨렸습니다.

해산하지 말고 시청 앞에서 전두환 즉각 하야,
거국내각 구성을 요구하며 대중적 열기를 지속적으로 유지 확대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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