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신 둘째 할아버지를 기리며...
페이지 정보
본문
어릴 적 제사를 지낼 때면 마지막에 제를 올리는 한 분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분은 고조할아버지, 이분은 증조할아버지라며 알려 주셨는데,
제일 마지막에 제를 올리는 분이 누구인지는 잘 알려주시지 않더군요.
이분은 누구시냐고 물으면 그냥 그런 분이 있다고만 하셨습니다.
그 후 수십년이 지나고 지난 주말에야 그분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겐 두 분의 동생이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 동생이 한 분 더 계셨다고 하더군요.
할아버지의 둘째 동생은 1924년에 태어나셨는데,
6.25 전쟁이 발발하자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아내를 남겨둔 채
하사관으로 참전하셨고, 1951년에 어딘가의 전장에서 전사하셨다고 합니다.
참혹했던 전쟁통에 유해조차 찾지 못했다더군요.
이후 할아버지는 장례도 치르지 못한 동생의 제사를
수십년간 지내 오시다가 벌써 오래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둘째 할아버지의 유해가 지난 9월에 철원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무려 73년 만인데 다른 전사자 유해와 달리 매우 온전한 상태셨고
인식표까지 걸고 계셔서 금세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정말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하더군요.
또한 어떻게든 동생의 유해를 찾고 싶으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전자 정보를 미리 등록해 두어서
신속하게 정확한 신원 확인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2000년부터 6.25 전사자 유해 발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올해 발굴된 유해는 221구이고, 그 중에서 신원이 확인된 분은
둘째 할아버지 한 분 뿐이라고 합니다.
유해발굴사업 25년 동안 13,332명의 유해를 발굴했는데,
그 중에서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고작 242명 뿐이라고 하네요.
둘째 할아버지를 포함해서 올해 신원이 확인된 분들의 합동안장식이
지난 월요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치러졌고, 유족으로 참석했습니다.
가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군에서는 꽤나 중요한 행사로
매년 총리나 육군참모총장이 참석해서 추모사를 올려왔는데
올해는 계엄 내란으로 군이 초토화된 상태라서 한 사단장이 참석했습니다.
별 달고 기고만장했을 군 수뇌부들이 친위 쿠데타 내란에 부역해서
모두 줄줄이 체포되는 꼴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옵니다.
7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쓸쓸히 계셨을 둘째 할아버지를
이제라도 제대로 모실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아직 찾지 못한 전사자 유해가 십만 구가 넘는다고 하니
그 어마어마한 상실의 숫자 앞에서 마음이 아득해 집니다.
전쟁이란 이토록 국민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기는 참혹한 것인데,
자신과 처족의 죄과를 덮고 알량한 권력을 연장하고자
북한을 자극해서 교전을 유도하고 내란을 획책한 내란범들,
자신의 이해에 눈이 멀어 내란범을 감싸고 있는 여당 의원들은
모두 천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내란을 일으켜 자국민을 학살한 범죄자가 천수를 누리다 자연사하고,
법이라는 무기를 제멋대로 휘두르던 무뢰한이 대통령이 되고,
취업청탁 공천청탁을 일삼던 것들이 계속 국회의원이 되는
그런 나라는 정상이 아닙니다.
무도한 것들이 지은 죄를 피로 갚는 역사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욕심에 눈이 먼 짐승이고 괴물이기 때문에
이번 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않고 처절한 단죄가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봅니다.
Andyne님의 댓글의 댓글
평안한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건강한전립선님의 댓글
국가유공자시고 호국원에 계십니다
살아계실적에 친구들과 참전하셨고 대부분의 친구분들은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라고 하기엔 돌아가셨을 당시 나이가 서른도 안된나이라 뭔가 이상하기도하고 기분이 먹먹합니다
Andyne님의 댓글의 댓글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거라서 그저 생각만으로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별명읍슴님의 댓글
과거 6.25때 전사 여부가 불확실한 경우, 아니 애초에 군에 간게 맞는지 조차도 확실치않은 남자 성인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었고, 다수가 실종에 가깝게 처리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불확실성(행방불명)이 비통한 가족에게,
그 불확실성으로 그 가족을 두번 죽이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승만은 이들 가족을 북한과 내통하는게 아니냔 의심을..하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연좌제를 이유로 그 자녀와 손자들에게 불이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실종자가 있는 가족들은
아픈 마음을 동여매고,
그들 스스로 그 실종자의 존재를
스스로 숨기고 은폐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과거 집안 제사 등등에 3대들에겐 이야기하지않은,
1대와 2대간의 비밀스런 존재들이 있는 집이 꽤나 많았습니다.
특히 형제 중에 실종자가 있고,
그 실종자 형제에게 자녀가 있다면,
그 가족 중에서 그 형제의 자녀들을 버리고 관계를 잘라내야만 했던 아픔을 가진 집도 있었습니다.
그냥 어린시절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그 연좌제에 몸서리를 치던 2대들을 우연히 보았던 3대로의 기억을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전쟁도 안되지만, 전쟁 후에도 그것을 구실로 공포로 거짓으로 자기들의 정권을 늘리려는 자들을 경계해야 하고 징치해야 합니다.
Andyne님의 댓글의 댓글
말씀하신 것처럼 행방을 모르는 분들은 혹시나 월북을 한 건 아닌지 의심을 받기도 한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쉬쉬하면서 마음에 묻은 채 살아오신 분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이토록 참혹한 전쟁을 권력의 수단으로 주저없이 내란을 획책한 것들을 절대 용서하면 안됩니다.
더이상 이런 세상을 젊은 세대에 물려줘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Andyne님의 댓글의 댓글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돌아오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앞선 이들을 기리는 마음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힘든 연말이 되고 있는데, 새해에는 다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각자가 뭐라도 해야겠지요. 다들 힘내시자구요. ^^
귀찮아서님의 댓글
그런데 글이 마치 논술선생님 글같아요~~^^ 술술 잘 읽히는데다 글을 매우 잘 쓰셔서요~^^
Andyne님의 댓글의 댓글
6.25 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김대중 정부에서 기간 한정으로 처음 시작했는데,
국민적 공감대가 커서 국방부 지속사업으로 전환되어 계속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안보니 보훈이니 말만 앞세우는 수구 보수세력과 달리 제대로 된 일들은 모두 진보 정부에서 해오고 있지요.
둘째 할아버님의 영면을 기리고픈 마음에 없는 글재주이지만 열심히 써봤습니다.
따뜻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aconite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