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마음 (106.♡.128.43)
2024년 12월 31일 PM 05:31
이세벨 이야기
윤석열 정권은 김건희 무속정권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비슷한 내용이 있어 생각나는 걸 적어봅니다.
구약성경 열왕기상에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세벨은 시돈 왕국의 공주로 북이스라엘 아합 왕과 정략결혼합니다. 정치적 동맹을 위한 결혼이었지만, 이세벨은 종교적 동맹으로까지 확장해서 북이스라엘을 바알·아세라 신앙으로 변화시키려는 정책을 펼칩니다. 아합 왕도 이 정책에 협조해서 전통적인 여호와 신앙을 박해합니다.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이 시대에 활동했는데, 지금으로 비교하면 야당 대표에 해당합니다. 대립하던 두 세력은 갈멜산에서, 아합·이세벨을 지지하는 바알·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여호와 선지자 엘리야 1명이 종교적인 승부를 벌이기로 합니다. 총선 같은 걸 치르기로 한 거죠.
이때, 아합·이세벨 지지자들이 극우 단체들처럼 괴성을 지르고 자해를 하는 등 온갖 난리를 치며 신의 응답을 끌어내려했지만, 묵묵히 기도한 엘리야에게 패배하고 맙니다. 비록 엘리야가 승리했지만, 아합·이세벨은 승복하기는 커녕 엘리야를 살해하려고 합니다. 가까스로 도망친 엘리야는 은둔하면서 후계자를 양성합니다.
아합·이세벨 동맹의 몰락
한편, 아합·이세벨 동맹은 뜻밖의 사건으로 몰락합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나봇 살해'입니다. 이게 흥미로운 부분인데, 이유는 그전에 그들이 여호와 선지자들을 대량 학살했어도 멀쩡했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목사 수 천 명을 죽였어도 멀쩡했는데, 평신도 한 명 죽인 것 때문에 몰락하게 되었다는 얘깁니다.
나봇이란 사람이 살해당한 이유는 가업으로 받은 포도원을 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게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불의에 굴복하지 않은 정의로운 행동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별도로 해석이 필요하지만 간단하게 줄이면, 수많은 여호와 종교 지도자들보다 나봇이라는 한 시민의 신앙 혹은 신념이 더 좋았던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아합·이세벨 입장에서는 황당한 게, 종교 지도자들을 학살해도 가만히 있던 하나님이었거든요. 평신도 한 명 죽였다고 분노하고 심판을 선언할 줄 예상치 못했죠. 하나님 관점에서 수 많은 종교 지도자보다 나봇 한 사람 믿음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아합·이세벨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속은(?) 겁니다. 개인적으로 나봇을 보면 조국 대표의 모습이 겹칩니다.
나봇은 평범한 외형 뒤에 강한 내면의 힘을 가진 시민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적용하면, 교회가 많고 목사들이 넘쳐나지만, 진정한 신앙은 오히려 무명의 평신도에게서 발견될 수도 있다는 거죠. 요새 말로는 '힘숨진' 같은 겁니다. 아합·이세벨 동맹은 힘을 숨긴 진짜 신앙인을 건드렸기 때문에 몰락하게 됩니다. 열왕기상 21장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이세벨의 영
성경에선 이세벨 왕비가 아합 왕보다 인상적입니다. 이세벨은 단순히 악행을 저지른 왕비로 그치지 않고, 여호와 신앙 박해의 중심 인물이자, 음모와 모략의 대가로 묘사됩니다. 아합 왕보다 더 주도적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반대자를 철저히 제거하며, 자신이 믿는 바알·아세라 신앙을 퍼뜨리기 위해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죠.
요한계시록 2장에서도 '이세벨'이라는 이름은 자칭 선지자로 등장해 성도를 우상 숭배와 음행으로 유혹하는 자로 묘사됩니다. 이는 이세벨이라는 이름이 역사적 인물로 그치지 않고, 특정한 악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줍니다. 마치 테슬라라는 이름이 전기 자동차를 상징하듯, 이세벨은 권력과 음모, 미신을 대변하는 이름이 된 거죠.
이세벨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세벨의 영은 이기적, 미신적, 망상적인 신념 체계를 형성하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오염된 정신입니다. 이 정신은 극렬 지지자를 양성하고, 반대자를 철저히 제거하며, 전쟁과 음모를 통해 국가를 피폐하게 만듭니다.
어느 시대든 어떤 종교든 자기 이익 만을 추구하는 탐욕을 가질 때 이 정신에 오염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공동체의 이익을 저버리고 자기 이익을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 할 수 있는 모습처럼요.
교훈
이세벨 이야기는 한 사회나 종교가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북이스라엘은 여호와 신앙을 국교로 삼았지만, 그 신앙은 실질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또한, 종교적 권위를 내세운 지도자들 가운데 가짜 신앙이 만연했음을 보여줍니다. 마치 우리 사회 극우 개신교 단체들이 겉으로는 우상숭배를 반대한다고 외치면서도 실제 그들의 행동이 우상숭배 집단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또, 소수의 정의로운 개인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남깁니다. 나봇의 예처럼 한 개인의 신념이 거대한 권력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거죠. 현대 사회에서도 소수의 용기 있는 행동이 사회 부조리를 타파하고, 건강한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세벨의 이야기는 강력한 권력도 뜻밖의 사건으로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나름 신념을 지키며 사는 게 왜 중요한지에 대한 알려줍니다.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대령, 계엄군을 막아선 안귀령 대변인, 계엄령을 반대한 소수의 관료들 등. 그런 작은 신념들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어느 모퉁이에서 작은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어쩌면, 이게 의인 열 명이 있다면 한 사회가 멸망하는 않을 것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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