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올) 전두환 체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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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는 1995년 12월3일 새벽 6시께 고향인 경남 합천의 5촌 조카 집에 머물다 서울지검(서울중앙지검)에서 파견된 수사관들에게 연행됐다. 그는 전날 검찰이 12·12 군사반란 및 5·18 사건 피의자로 소환을 통보하자, 서울 연희동 자택 골목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수사와 이를 지시한 김영삼 대통령을 맹비난한 뒤 측근들과 함께 고향으로 향했다.
앞서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노태우에게 전씨의 범행에 대한 진술을 받아낸 검찰은 곧바로 법원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그날 오후 5시에 영장을 발부하자 검찰은 즉시 합천으로 수사관 9명을 급파했다. 고향 주민들의 반발 등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소동에 대비해 검찰은 경남경찰청에서 사복경찰 800여명을 지원받았다. 실제로 수사관들이 전씨 고향에 도착했을 때 술에 취한 일부 주민들이 한때 길을 막기도 했다. 수사관들이 전씨가 자는 방에 들이닥쳤을 때 전씨는 내복 바람이었다. 전씨의 서울 압송 과정을 취재하는 언론들의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전씨의 호송 차량을 알아본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전씨는 체포된 지 4시간여 만인 3일 오전 10시37분께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전씨의 전격적인 체포 소식에 정당들도 일제히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손학규 대변인은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고도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방자한 태도가 빚어낸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민자당의 후신인 국민의힘이 지금 윤 대통령을 감싸고도는 것과 전혀 딴판이었다. 전씨 지지자들은 검찰이 전씨를 꼭두새벽에 연행한 것을 두고 ‘전직 대통령에게 지나친 처사’라고 반발했다. 당시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는 한겨레신문에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로 며칠 동안 세상이 시끄러운 것보다는 빨리 마무리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29년 전 검찰의 판단은 정확했다. 지금 내란 사태를 수사하는 공조본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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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내란수괴 윤석열을 체포하라!!
RanomA님의 댓글의 댓글
'특히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손학규 대변인은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고도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방자한 태도가 빚어낸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저거 딱 두 달 전에 자기네 당 강삼재 사무총장이랑 김윤환 대표가 했던 발언 생각해보면 참...
강삼재 민자당 사무총장 - 1995년 9월 18일 기사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존중하고 특별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민자당의 당론에는 변함이 없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5091800209103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09-18&officeId=00020&pageNo=3&printNo=22971&publishType=00010
김윤환 민자당 대표 - 1995년 10월 18일 기사
여야 5.18 공방 -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은 여소야대 국회인 13대 국회에서 규명된 바 있으며, 명예회복과 보상도 이루어졌다. 헌법상 소급입법은 불가능하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5101800289101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10-18&officeId=00028&pageNo=1&printNo=2370&publishType=00010
김영삼과 민자당의 태도 변화에는 '김영삼의 92년 대선자금'과 노태우의 비자금이 엮여있어서 국면전환용일 뿐이었습니다.
읍읍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