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은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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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일상이소중해 58.♡.116.95
작성일 2025.01.05 22:27
1,28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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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성우울증이라고들 한다. 내란성불면증에 내란성소화불량까지 있는 것 같다. 내란성? 젠장. 어디가 불편해서 병원에 가면 술 끊으세요. 담배 끊으세요. 스트레스를 줄이세요 이런 소리만 십수년째 들어왔는데 이제는 내란도 끊으라고 할려나. 그저 가슴이 먹먹하고 잠도 안 오고 일도 손에 안 잡힌다. 뭔가 속시원히 글이라도 쓰고 나면 속이 좀 풀릴까 싶은데 글도 잘 안 써진다. 다들 이런 마음일까 싶다.


자꾸 눈물이 난다. 늙었나보다. 요즘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나같은 4~50대들이 이번 계엄 사태와 응원봉 집회의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더욱 그렇게 느꼈을것 같다. 내가 못나서 저 아이들을 저렇게나 고생을 시키는구나 싶은 미안한 마음에 또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그저 안타깝고 고맙고 미안하다.


저들은 작두를 타고 있다. 이번에 밀리면 죽는다는 심정인가보다. 저들의 심정은 역사속의 어느 사건보다도 이번에 더 절박하리라고 본다. 역사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겠지. 니들 그동안 멀쩡하게 끝난 정권이 없잖아. 게다가 이번에는 끝판왕 수준으로 미친 빌런이 등장했으니 그 마음도 오죽할까 싶다. 그렇다고 뭐 이번에도 조금만 봐주라 할 상황이 아니잖냐. 저놈들에게 상식과 이성을 바라는거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디까지 갈 생각인지 당췌 상상이 안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 이제는 그냥 우리의 역사에서 그리고 미래에서 사라져라.


이놈들 하다하다 이제 서울시내 한복판에 성을 쌓았다. 모든 길을 틀어막고 최후의 결전이라도 준비하는 마냥 저러고 있다. 니들이 무슨 삼별초냐 독립투사냐. 우린 아픈 과거가 너무나도 많고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슬픈 상상들이 역사적인 경험들을 바탕으로 쉼없이 떠오른다. 그 길을 다시 가지 말아야 한다는걸 알기에 우린 더더욱 참고 또 참고 또 참으면서 상식과 이성에 근거한 행동에 임하고 있다. 법과 원칙? 개나줘버려라. 저런 무도한 자들을 상대하는데 왜 우린 항상 법과 원칙을 다 지키라고 강요하는거냐. 그저 우린 우리가 옳다고 믿는걸 믿고 행동하겠다. 그게 항상 옳았다.


시민들이 진화하고 있다. 누가 가르쳐준것도 아니고 누가 이끌고 있는것도 아닌데. 역사와 역사가 결합하고 문화와 문화가 결합하여 시민들이 진화하고 있다. 코딱지만한 회사에서 노사협상할때면 그저 고마운 민주노총이지만 집회때 만나면 "니네는 너무 과격해" 하면서 모른척했던 그들이 우리 아이들과 응원봉동지 하면서 연대하고 있다. 아빠 엄마도 여전히 어색한데 우리 아이들이 "투쟁" 이러면서 놀이마냥 즐기고 있다. 오색의 응원봉과 K팝 음악들이 집회를 주도하고 정체모를 배후의 아이디어 넘치는 깃발들이 집회의 하늘에 펄럭인다. 고마움과 미안함의 물결이 선결제로 밀려들고 경찰의 차가운 차벽이 아닌 난방버스의 따스함이 집회를 둘러싸고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고 있다. 백만년동안 태극기와 성조기만 흔들어대고 있는 니들과는 차원이 다르고 레벨이 다르다. 느껴지지? 우린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지난 주말 한남동에 키세스단이 등장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또 눈물을 한바가지 쏟아냈다. 따뜻한 집에서 철없이 잠들어 있는 내 새끼들이 미워지려한다. 잔다르크의 십자군이 저들만큼 성스러웠으랴. 키세스단과 같은 시대에 같은 땅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이번 일이 나라를 구한 역사로 기록된다면 그 선봉에는 키세스단이 있었던거라고 꼭 얘기 해 주겠다.


다시 한번 긴 호흡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어본다. 독립운동이 그랬고 7~80년대 민주화운동이 그랬듯이. 어디가 끝일지 모르고 '과연 독립이 올까요?' '서울의 봄이 오겠습니까?' 의심하면서도 지금의 역사를 만들어주신 선배님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각자 맡은바 최선을 다 하고 있을 동지들을 생각해 본다. 힘든 하루가 가고 내일은 새로운 해가 뜨겠지만 우리의 역사는 계속 진행형이다. 마음을 추스리고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고 공감과 응원의 좋아요를 누르고 술도 끊고 담배도 끊으면서 아낀 작은 마음을 후원에 보탠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맞았고 우리가 옳았고 우리가 상식이고 진리라는 사실을 수없이 많이 경험했다. 그리고 역시 알고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두 주먹 불끈 쥐고 뜨거운 눈물과 소리없는 함성을 지를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역사의 한 조각 퍼즐을 맞추는데 최선을 다 하자.


시민의 생각이 역사가 된다.

댓글 3 / 1 페이지

희연주현아빠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희연주현아빠 (122.♡.174.136)
작성일 01.05 22:37
명문 감사합니다. 힘 받고 갑니다!

차카게살자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차카게살자 (203.♡.204.212)
작성일 01.05 23:01
글을 읽으며 뜨거운 무언가가 저 몸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와 눈물로 분출되네요.
너무나 공감가는 글 감사합니다.
민주시민의 승리의 역사, 그 새로운 한 페이지의
마침을 곧 목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매일한가한님의 댓글

작성자 매일한가한 (218.♡.214.151)
작성일 01.05 23:10
명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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