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연세대 사태 영상 보는데 무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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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slowball 223.♡.90.148
작성일 2025.01.08 18:55
2,557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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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 저는 저 현장에 있었습니다. 

무려 전경으로요.


안다치고 제대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되네요.

시켜서 한 거지만 저희나 학생들이나 너무 과격했었습니다. 


근데 지금 맷돼지는 과격하게 진압하고 싶네요.

체력이 문제긴 하겠지만요.



댓글 22 / 1 페이지

miseryrunsfast님의 댓글

작성자 miseryrunsfast (221.♡.219.65)
작성일 어제 18:58
저는 안에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SukYounKang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SukYounKang (124.♡.27.237)
작성일 어제 19:46
@miseryrunsfast님에게 답글 저도 안에.. 밴드였.. 반갑습니다.

달짝지근님의 댓글

작성자 달짝지근 (125.♡.218.23)
작성일 어제 19:00
김영삼 정부인데 명분없는 투쟁
한총련 미쳤지 과연 무엇을 바랬는가? 싶습니다

백장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백장미 (223.♡.188.215)
작성일 어제 19:16
@달짝지근님에게 답글 이 때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긴 했지요. 보통은 과격하더라도 딱 행사 끝나는 기일이 되면 학생들도 해산하고 경찰측도 길 열어주는 식이었는데...이 때에는 아예 원천봉쇄로 퇴로까지 열어주지 않는 방식이긴 했습니다. (누가 잘못했다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고 단지 그 때 분위기가 그랬다는 말입니다)

안녕스누피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안녕스누피 (112.♡.18.232)
작성일 어제 20:52
@달짝지근님에게 답글 저 사건을 이렇게 기억하신다구요?

학생들은 행사 후 아무 일 없이 해산할 예정이었습니다
경찰들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었는지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바람에 발생한 사태입니다
일방적으로 몰아 붙여 토끼몰이 하듯이

김영삼정부가 무슨 민주화 정부인것 같이 인식하시나요?
군사정권의 연장이었을 뿐입니다

joydivison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joydivison (118.♡.4.17)
작성일 어제 19:02
종합관 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시위 때 참여했던 1인으로…이 때의 기억이 아직도 트리우미처럼 남아 있어요.

okbari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okbari (220.♡.140.246)
작성일 어제 19:02
운동권을 순장시켜버린 사건이었죠

니크쿠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니크쿠 (219.♡.68.38)
작성일 어제 19:03
저는 지방에서 대학 다녀 이야기만  진행하고 안갔는데 친구가 올라가서 엄청 걱정했던 적이 있었네요. 근데 관심 없는 사람들은 2살 동생도 저런일이 있었다고? 언제? 라고 하더군요.

아라키무라시게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아라키무라시게 (125.♡.149.206)
작성일 어제 19:06
배낭여행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더니 뉴스에 다니던 학교가 불타고 있더군요

종합관 영어 Lab실은 연대출신 전경들이 부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일이년간 교양영어 Lab시간이 없어졌다는....

aquapill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aquapill (223.♡.165.221)
작성일 어제 19:07
당시 아주 어쩌다 간혹 한번씩 엄청 과격할 때가 있었는데 그땐 주축이 연대생들이 아니었어요. 원체 다들 샌님들이라.

백장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백장미 (223.♡.188.215)
작성일 어제 19:11
@aquapill님에게 답글 저게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이슈라서 전국 단위가 모두 모이긴 했습니다.

이응시옷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이응시옷 (59.♡.21.242)
작성일 어제 19:08
정부가 일을 키웠던 것일 수도 있고 미디어가 드라마틱하게 포장했던 것일 수도 있고, 정말로 시위대가 폭주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학생운동=테러급 폭력 행위로 낙인 찍혀, 이후 학생운동은 사실상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죠.

반면, 이때의 폭력 시위의 종말이 20여년 후의 촛불 시위와 응원봉 시위로 승화한 게 아닐까도 싶습니다.

백장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백장미 (223.♡.188.215)
작성일 어제 19:12
@이응시옷님에게 답글 이 때보다는 다음해 한총련 출범식 때의 이석 씨 치사사건이 더 컸었지요.

WinterIsComing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WinterIsComing (124.♡.1.247)
작성일 어제 19:10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학교가 정부에서 받은 복구비용(?)이 아주 커서......짭짤하게 남는 장사 했다고
좋아하던 학교측 직원들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RanomA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RanomA (125.♡.92.52)
작성일 어제 20:40
@WinterIsComing님에게 답글 문과대 출신이라서 대충 그때 들었는데 말이죠.

인문관(문과대 전용)은 턱없이 좁고, 종합관은 교양수업까지 해야 해서 안되니, 타 단대(공대, 상경대)는 기부 받아서 건물 짓고 있을 때, 문과대는 '그거 짓고 나면 기존 건물들을 교양 수업용으로 하고 종합관만이라도 문과대 전용으로 해달라'고 하는데, 법대에서는 '구 상경대 건물을 우리 법대가 쓰고 싶다.' 이러는 와중이라서 요원했죠.

근데 사태 끝난 뒤에 종합관을 방문한 김영삼 앞에서 관계자들이 '대통령 보시기에 민망한 페인트칠은 지웠습니다.' 하면서 알랑 방구를 뀌니 '이 사태를 기억하기 위해서 그대로 놔두고, 새 건물을 나라에서 지어주겠다.' 이랬죠.

그래서 새로 건물 하나 새로 짓고, 그리고 종합관도 다시 재단장해서... 문과대는 결국 건물 하나를 얻었죠.

백장미님의 댓글

작성자 백장미 (223.♡.188.215)
작성일 어제 19:11
어...저도 일단 안에 있다가 다쳐서 폐쇄되기 전에 빠져나오긴 했습니다. 아직 그 때 다친 흉터가 있긴합니다...
이게 벌써 30여년 전 일인가요...반대쪽에 계셨다니 그래도 큰 사고 없이 제대하셨음에 감사인사와 이제와서야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RubyBlood님의 댓글

작성자 RubyBlood (220.♡.82.100)
작성일 어제 19:23
저도 어쩌다 보니 안에 있었습니다.
다모앙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dew91님의 댓글

작성자 dew91 (182.♡.120.178)
작성일 어제 19:27
저도 안에 있었는데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clien11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clien11 (103.♡.126.33)
작성일 어제 19:32
동지들이 많이 있네요.. 저는 밖에 있었지만..이 사건이후 ys를 저주합니다.

이루리라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이루리라 (58.♡.94.201)
작성일 어제 19:44
저도 저 안에는 없었지만 이 사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귀엽고깜찍한요정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귀엽고깜찍한요정 (118.♡.72.49)
작성일 어제 19:44
당시 서강대 쪽 친구(서강대사수대)들이 앞장서서 경찰형아들을 전면에서 맞섰었지요..
우리 삼촌은 95년도 상반기까지는 연대 정문에서 친구들이랑 같이 놀았더랬는데 말입니다.
영장나와서 끌려가 있는 상황에서. 96년도에 저 사건 나고....
휴가나와서 서울 올라 와 보니 지하철에 삼촌 친구들 얼굴이 짝~~~~~
수배영장이라고. 현상금도 다들 걸려서...읍읍읍.
그리고 IMF 터지고 학생운동은 끝났죠...명분도. 효익도. 참가할 인원도 다 사라져 버린....

RanomA님의 댓글

작성자 RanomA (125.♡.92.52)
작성일 어제 20:41
저는 당시 재학생인데 거기 참여는 안했고요, 제 하숙집 앞 골목에서 단체로 누워서 자는 전경들을 보기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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