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고등학교 동창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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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ymaxion 116.♡.132.197
작성일 2025.01.1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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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들 이야기라고는 해도

당시에 매우 친했던 친구도 있고, 얼굴만 알고 잘 모르던 친구도 있습니다.

대구 경북고등학교 1993년 졸업생인데요.

잘 아시다시피 이 학교는 소위 TK 라고 해서 신군부 군사정권의 핵심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간단히 말해 파쇼들을 대거 배출한 일종의 하이브 같은 곳이죠.

제 모교이기는 해도 이런 부분에서 항상 불편한 감정을 느낍니다.

나이먹고서는 뭐 동창들을 거의 못 보고 살기는 하고 근황을 대부분 알 수는 없습니다.

암튼 이 동창들 중에서 몇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1. 손준성 검사

지금 정권에서 한동훈 졸개 역할을 하며 무혐의로 빠져나간 바로 그 친구입니다.

고등학교 당시에는 꽤 부잣집 아들이었고, 문과에서 항상 전교 1등을 하고 꽤 살찐 친구였는데

최근에 언론에 나오는거 보니깐 팍(?) 삭은 대신 살은 엄청 빠져 있더군요.

아무튼 매우 부끄러운 동창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대충 알 것 같더군요.


2. 도XX

1995~96년 즈음에 한총련이었던 친구입니다.

전대협 시대가 끝나고 한총련 출범한 이후, 운동권은 기세를 잃고 점점 맛이가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6공 이후, 일반 대중을 설득할 명분도 점점 사라져가고, 일본 적군파 처럼 괴물이 되느냐 아니면 점점 연성화 되다가 소멸하느냐 하는 갈림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친구는 강경파였다고 기억됩니다.

북한으로 무단 방북했다가, 독일까지 도피를 오랫동안 하다가, 국정원의 회유를 받은 가족들이 독일까지 가서 겨우 설득해서, 자진 귀국후 구속되고 재판받고 실형을 살았더랬죠.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3. 이XX

1996~1997년 즈음에 연세대 공대 학생회장하던 친구입니다.

그 유명한 연세대 사태 한가운데 있던 친구죠.

그 사태 끝나고 한참 지난후, 이 친구한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 본 적이 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함구를 하더군요.

세상 다 산 것 같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면서요.

끔찍했다는 한 마디로 갈음하더군요.

때문에 이 친구가 당시 어떤 역할을 구체적으로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바로 그 당시 바로 그 현장인 연세대 공대 학생회장이었으므로 아무것도 안 했을리는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후에는 운동권 노릇에 염증을 느꼈는지, 180도 바뀌어서 점점 속물화 되는 모습을 보다가 점점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김대중 정권 당시에는 닷컴버블에 편승해서 투자금 쫙 빨아댕기고 큰 돈 만지는 일을 하던 것 같더군요.


이외에도 기억나는 친구들이 몇 명 더 있는데,

특징은 아주 극과 극이었다는 거죠.

아주 극렬한 운동권이었던 친구들도 있었고

아주 철저하게 속물적인 삶의 목표를 가지고 출세를 위해 살아가는 야심찬 친구들도 있었고요.


서울대 법대 아니면 안간다고 하면서 삼수 사수 계속 반복하는 친구도 있었고...

고시 낭인이 되어 고려대 근방이나 신림동 같은데서 발견되는 친구도 있었고....

주식에 빠져서 월급쟁이의 삶을 살 수 없게 된 친구도 있었고....

닷컴버블로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했는데 함께하던 선배가 모두 횡령해서 미국으로 튀어버려, 남은 그 친구는 평생 수십억의 빚을 갚으면서 인생이 망가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중 삼중으로 바람피다가 폭망한 친구도 있었고요.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에 저렇게 좌충우돌 하는게 큰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꾸준하게 진실된 삶을 살아간 친구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 소시민적 삶이 출세라는 측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받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자신이 젊은 시절 세웠던 삶의 목표를 실제로 구현하고 있는가, 또는 말로가 비참한가, 얼마나 모범적인 삶을 살아냈는가 등등 기준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이 듭니다.


한 가지 의문은 남습니다.

고등학교때가 노태우 정권 당시였는데, 당시 노태우 처남인 박철언이 TK 선배랍시고 학교 찾아와서 일장연설을 하면서 과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광분하면서 환영했었지요.  (저는 시큰둥했음,  당시 소설 태백산맥에 심취해 있어서 약간 의식화 된 건가 싶습니다)


박철언을 보면서 광분했던 고등학생들이 커서,

어떤 친구는 탐관오리가 되었고,

어떤 친구는 극렬 운동권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친구는 운동권과 속물의 극단을 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 세대는 장년기를 넘어 노년기로 천천히 넘어갈텐데, 그럼 힘을 잃고 퇴장해 가겠죠.

아무도 우릴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댓글 5 / 1 페이지

mmakorea님의 댓글

작성자 mmakorea (116.♡.203.82)
작성일 어제 22:52
귀한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핑크연합님의 댓글

작성자 핑크연합 (180.♡.105.88)
작성일 어제 23:20
글 잘 읽었습니다

가랑비님의 댓글

작성자 가랑비 (58.♡.137.93)
작성일 어제 23:25
개개인의 서사를 기억하는 이들은 하나씩 사라져가겠으나,
그들과 글쓴이님이 만들어낸 역사는, 어느 방향으로의 힘이었던 간에, 미래 우리의 모습과 생활 어딘가에서 숨쉬고 있을 겁니다.
잘못된 노력들은, 광장에 모인 우리들이 바꾸어 가고 있으니 다행이고요.ㅎ.

호그와트머글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호그와트머글 (211.♡.142.171)
작성일 어제 23:28
어쩌면 평범하게 산다는게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놈참님의 댓글

작성자 그놈참 (61.♡.86.57)
작성일 어제 23:50
본문이나 댓글이나 정말.. 보석같은 글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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