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채소가 산 채소를 구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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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에 사놓은 썬 채소 모듬이 있습니다.
집에서는 밥을 잘 안 해먹다보니 이 채소는 냉장고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냉장고도 거의 안 열어봤지만 가끔 열어보면 냉장실 중간층에 잘 보이게 엎어져 서서히 시들어가다못해 아랫 부분에 깔린 풀때기는 녹아내리는 변화가 보였습니다.
오늘은 일요일, 드디어 대처분의 결단을 내리고 이 채소상자를 꺼냈습니다.
최상단 채소들은 상한 곳 없이 싱싱했습니다.
탄핵시국과 계엄쓰레기들의 패악질에 너무 몰입해서 그런가...밑에 깔린 채소들이 안간 힘을 다해 상단의 푸른 채소가 죽지 않도록 떠받치고 있는 걸로 보였습니다.
드디어 나는 만물정령사상, 애니.미즘에 먹힌 건가!
(글을 다 쓰고 업로드하려니 애니.미즘에서 "니.미"가 금지어라네요. 님이...)
겸허한 마음으로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누었습니다.
차가운 물에 산 것들을 두어 번 씻어 담궈두었습니다.
식빵과 샌드위치용 닭가슴살 슬라이스를 뜯어 후라이팬에 넣어 데우고 그릇에 담아 감자와 달걀 샐러드를 뿌린 다음, 차거운 물 속에서 깨어나고 있는 산 자들을 건졌습니다.
건지고보니...
분류할 때는 싱싱한 채소처럼 보였던,
죽음의 우주같은 냉장실에서 미래의 푸릇푸릇한 산 자들이 죽지않도록 자신의 몸으로 사력을 다해 떠받치던 전투의 끄트머리에 섰던 "채소전사" 세 명이 ...
시들어버린 채로 발견됐습니다.
차가운 물 속에서 마지막 남은 기운을 다 몰아주고 시들어버린 것같아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웃으며 산 자들의 미래를 축복하며 스러져갔을까요.
냠냠 쩝쩝... 겸허하게 노벨상수상 소설가 한 강을 생각하며 먹었습니다.
기묘한 의식의 흐름, 요즘 제정신이 아닌가 봅니다.
"잡혀갔나?"
BKTheAntique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