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즈와 자이언츠, 아스날과 토트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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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윤작가 221.♡.125.57
작성일 2025.01.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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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프로야구 원년의 우승은 OB 베어스가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1983년에는 해태 타이거즈, 1984년에는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을 차지했죠. 1985년에는 삼성의 코리안 시리즈 없는 통합 우승, 1986년 - 1989년까지는 해태 타이거즈가 4연패를 차지했습니다.


원년부터 해태 타이거즈의 야구를 봐 왔던 저의 1980년 프로야구는... 삼성 - 롯데라는 영남 야구의 2강을 해태 혼자서 상대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현시점에서 삼성 라이온즈는 해태 - 기아로 이어지는 타이거즈 다음의 '명문팀'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성과를 쌓았습니다. 반면 롯데는 1992년 우승 이후 기아 - 삼성의 라이벌이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죠. 그러나 1980년대 초중반의 프로야구에서 롯데는 분명히 해태의 라이벌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지금도 회자되는 최동원 - 선동열의 라이벌 구도만 봐도 자이언츠와 타이거즈는 팽팽한 라이벌 구도를 이루던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기아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는 라이벌이라 불리기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13년, 런던 남동부에 있던 울리치 아스날 구단은 북런던으로 이사를 하면서 아스날 FC로 구단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부터 북런던에 자리를 잡고 있던 토트넘과 라이벌(아니 원수) 사이가 되었습니다.


북런던 더비는 지금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구단이 이뤄낸 성과만으로 놓고 보자면, 특히 1992년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의 성과를 따지자면 과연 토트넘이 아스날의 라이벌로 불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스날은 1992년 이후 프리미어 우승 3회, FA컵은 9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반면 토트넘의 리그 우승은 1960 - 1961 시즌이 마지막이고, 그나마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도 2007 - 2008 시즌 컵 대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토트넘 팬들은 여전히 아스날이 110여년 전 자신들의 땅에 끼어 든 불청객이라고 인식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라이벌리를 지키는 팬들의 자존심은 결국 구단이 리그와 대회를 치르면서 이뤄내는 성과에 달려 있죠.


전세계에서 8번째로 돈을 많이 버는, 아스날보다 돈을 많이 번다는 그 사실이 토트넘의 팬들에게 어떠한 자존심을 부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스날에게 깨지면서 '그래도 우리가 니네보다 돈은 더 많이 벌어'라고 노래라도 부를 건가요.


2018 - 2019 시즌 토트넘이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올랐을 때, 그 때 달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더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팀은 급격하게 무너졌습니다. 그 때 그 때 감독을 교체하면서 위기를 넘어갔지만 '항상 리그 우승과 챔스 진출 경쟁을 하는 팀'이어야 했던 토트넘은 밑천이 드러나고 말았죠.


반면 아스날은 챔스와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 FA컵과 같은 대회에서는 간간히 우승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팀이 장기적인 비전과 야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있죠. 올시즌에는 슬롯의 리버풀이 워낙 좋아서 쉽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아르테타의 아스날이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가 되었을 때 토트넘 팬들이 무엇으로 자위를 하면서 아스날 팬들을 바라볼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어제 에버튼과의 경기는... '아스날의 북런던 라이벌'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또 감독을 경질할텐데, 그게 해답이 될 것 같지도 않구요. 그리고 손흥민은 전성기를 우승컵 하나 없이 보내게 될 거구요.


사실 이영표 - 손흥민 때문에 토트넘에 관심을 가지게 된 라이트 팬이지만, 2018 - 2019 시즌 맨시티와 아약스를 드라마처럼 넘어서면서 결승에 올랐던 그 멋진 경기력에 반했고 애정도 많이 생겼는데 그 멋진 팀이 무너져 내리는 게 참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댓글 5 / 1 페이지

사막여우님의 댓글

작성자 사막여우 (223.♡.217.58)
작성일 17:52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전혀 안되는 모습이죠.

윤작가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윤작가 (221.♡.125.57)
작성일 18:55
@사막여우님에게 답글 한 때는 선수들이 우승이라는 야망을 가지고 뛰었을텐데... 지금은 그냥 리그에서 잔류만 하면 되는 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에스까르고님의 댓글

작성자 에스까르고 (183.♡.123.226)
작성일 18:38
광주 외가 부산 친가를 둔 제게 90년대 초중반까지 프로야구 해태-롯데전은 꽤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버지가 배를 타다 내리시는 시절에는 티내어 타이거즈 응원할 수가 없었지요.
서부 경남(낙동강 서쪽) 출신에 뱃사람이었던 아버지 성향은 말 그대로 "평생 2찍"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에 표를 주었느냐 하는 겁니다.  어머니가 'DJ를 찍으면 정장을 사주겠다' 하여 정장 한 벌을 얻으셨다고는 하는데 그 표의 행방은 지금까지 한 사람 빼고는 누구도 모릅니다)

다시 야구 얘기로 돌아가면, 롯데의 스타가 빛을 바래면서 라이벌 구도가 깨지기 시작한 것 같지요.
선동열에 대항할 최동원- 윤학길, 그리고 그 후가 없었죠.
이종범...은 전준호로 대체할 수 없는 선수였고요.

그냥 그 시절 야구 얘기를 하시니까 옛 생각이 나서 댓글 달았습니다.
광주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한명재 캐스터의 언급처럼 "우리시대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이겨낸 도시"가 딱 맞았습니다.

윤작가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윤작가 (221.♡.125.57)
작성일 18:58
@에스까르고님에게 답글 지금도 광주 전남 지역의 야구 선수 풀은 그 지역의 인구나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참 미스테리합니다(김도영 - 문동주만 보더라도). 리그를 지배하는 슈퍼스타급 선수들의 꾸준한 등장, 좋은 감독, 한결같은 열성적인 팬... 타이거즈가 12번 우승한 원동력이죠.

그 때 야구를 보는 게 참 좋았는데 결혼하고 와이프 때문에 한화 이글스 팬으로 강제 개종(?)을 하면서 12년째 고통의 나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에휴...

에스까르고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에스까르고 (183.♡.123.226)
작성일 19:47
@윤작가님에게 답글 라이벌 관련하여 추가할 것은
1) 1997 대선 DJ 승리로 광주/전남 지역의 "한"이 일부 해소된 것
2) 2000년대 이후 양대 리그전이 도입되고 올스타 전도 동-서부 대결에서 중-남부 대결로 바뀐 것
이 더 컸을 것 같습니다.

인구 말씀하셨지만 결국 전라도 인재풀을 쌍방울로 분산시켜서까지 해태를 막으려고 했으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한화...는 언제나 짠한 감정이 들어요.
롯데보다는 한화가 먼저 우승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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