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잔인한 칼국수의 위로

Lv.1 그레이스리 (210.♡.226.231)

2025년 1월 23일 PM 12:46 · 수정됨(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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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50입니다. 애 둘 엄마이면서 아내이고, 월200버는 대학 강사입니다. 그래도 주제에 해외 박사출신입니다. 인문학이라서 아직 자리도 못잡고 이렇게 있지만요. 

어제 오후 늦게, 지원한 전임교수 자리 불합격 소식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적응할 만도 한데, '불합격' 세 글자는 아직도 쉽고 빠르게 접수가 안됩니다. 지원을 위해 애쓴 시간과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12월과 1월 두 달을 온통 지원서 작성, 공개강의, 1차와 2차 면접에 쏟아부었거든요. 한단계씩 합격을 확인하고 그다음을 준비하면서 설레였고, 그렇게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는데...혹시나 이번에는?? 했던 기대는 먼지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문자로 불합격이란 단어를 보는 순간, 정말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쿵 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은 아마 다 느껴진 거 같아요. 아예 1차 서류에서 떨어졌다면 조금 덜 힘들었을까요?

그렇게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꼬박 날밤을 새웠는데 아침이 되어도 말똥말똥 졸리지 않더라구요. 남편 출근하고, 애들 아침 씨리얼로 대충 챙겨 먹이고, 저는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들고 일자리 구직란을 목적도 없이 스크롤을 했습니다. 정말 어디 구내식당에 가서 주방 보조라도 해야 하는건 아닌지...싶은 마음까지 들었어요. 그렇게 두 세 시간 훌쩍 멍때리면서 날려보내는 중에, 방학이라 집에 있는 두 아이가 저기압 상태인 엄마 눈치 보느라 아무 말 못하고 부엌을 몇 번 오가면서 냉장고 문을 여닫는 낌새를 느꼈습니다.

아...점심 밥시간이구나.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코스트코 세일가로 사온 비비고 바지락 칼국수를 끓여서 아이들 주고, 저도 같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입안에 퍼지는 칼칼한 국물, 냉동 음식 같지 않은 쫄깃한 바지락...왜 이렇게 맛있나요ㅠ 세상 다 잃은 듯한 패배감에 분명 몇 분전까지만해도 참 힘들었는데, 단숨에 그 힘듦을 저만치 쫒아내버렸습니다. 뭔가 혼란스럽고 잔인한 느낌마저 드는 맛이었어요. 

한 그릇의 칼국수로 따뜻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오전 내내 다시 도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따뜻한 칼국수로 마음이 달래지네요. 용기가 조금 생기는 것도 같구요. 인생이 만만치 않아, 늘 어려운 문제 해결의 연속인 듯 해보여도, 몰아세움 중간 중간에 또 이런 작은 기쁨을 주기도 하죠.  

혹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 맛있는 음식 드시고 털어버리세요. 화이팅입니다^^  


p.s., 법카로 빵집 전세 낸 듯 빵 사대고, 와인 쟁여놓는 그런 사람은 승승장구 잘만 하는데...저처럼 여러분처럼  정직하게 성실하게 바른 철학으로 살아가는 민주시민들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62)

  • 감정노동자

    감정노동자 Lv.1

    25.01.23 · 1.♡.170.113

    맛있는거 드시고 아이들 웃는 사진도 한번 보시고 또 계속해가시면 좋겠습니다. 응원합니다
  • 야옹이누나 Lv.1

    25.01.23 · 203.♡.205.83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 hellsarms2025

    hellsarms2025 Lv.1

    25.01.23 · 125.♡.3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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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zeltov

    Mazeltov Lv.1

    25.01.23 · 218.♡.195.132

    좋은 음악..맛있는 음식...이 위로가 될 때가 있지요...
    응원합니다!
  • 5호라

    5호라 Lv.1

    25.01.23 · 223.♡.85.181

    아휴 인문한 점점 티오 줄어들고 있는데 힘내세요
  • zzzan

    zzzan Lv.1

    25.01.23 · 1.♡.36.102

    저도 비슷한 상황이라 너무 이해됩니다.
    힘내세요~ 꼭 잘 될 겁니다!!!

    이만 칼국수 사러 갑니다.
  • 바이어스 Lv.1

    25.01.23 · 183.♡.141.245

    따뜻한 국물이 마음의 위로가 되기도 하죠. 화이팅입니다!
  • 그대의벗 Lv.1

    25.01.23 · 183.♡.230.107

    박사님 되시기 까지 얼마나 공부하고 연구하셨을지 눈에 선합니다. 힘내시기 바랍니다.
  • RubyBlood

    RubyBlood Lv.1

    25.01.23 · 220.♡.82.235

    뒤돌아서지 않고 계속 소망을 담아 앞으로 가다보면 원하시는거 이루는 날이 올게요.
    멋진 어머니이자~ 멋진 사람입니다!
  • 미스마플

    미스마플 Lv.1

    25.01.23 · 211.♡.74.51

    위로와 응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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