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에서 관람한 음악회 후기 및 관람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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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연속으로 오스트리아의 빈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당분간 빈에는 안 가볼 것 같습니다. 이 도시에는 좋은 공연이 여름을 제외한 일년 내내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노래를 들으러 가면 기분은 좋겠으나 이미 왠만한 관광지에도 가보았고 그림도 보아서 새로울 것은 없어 보입니다. 여름에는 한 번 가보고 싶어요. 다뉴브 강가에서 수영하면서 놀면 그렇게 재미있다더군요. 그런데 여름에는 또 음악 공연이 별로 없습니다.
올해에는 임윤찬과 아르헤리치를 보러 스위스에 갔는데 임윤찬이 빈에서도 공연을 한다길래 어차피 부다페스트에서 여행을 마무리 할거면 빈에 또 가보자 싶어 갔습니다. 애석하게도 이번에 제가 방문하는 기간에는 빈 필하모닉의 공연이 없었습니다. 환상적인 분위기와 음향을 자랑하는 음악협회(Musikverein)에서 단돈 5유로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죠. 음악협회에 공연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못가본 새로운 공연장(Konzerthaus)에 가보게 되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아우구스틴 성당(Augustinerkirche)에서 또 가볼 수 있으니 빈에 안 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원래 예정에는 없던 오페라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1. 아우구스틴 성당
합스부르크 왕가의 예배당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왕족의 가족 행사가 많이 열렸다고 합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교회인데 여기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소형 오케스트라 수준의 음악 예배를 합니다. 2년전에 처음 갔을 때에는 하이든의 곡을 주로 교향악단 수준으로 연주해서 저를 완전히 매료시켰습니다. 파이프 오르간이 작은 교회에서 연주되면 바닥 전체가 울리고 그 소리를 온 몸으로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페라 악단에서 출연하는 가수들이 나와서 미사 중간에 노래를 불러주는데 제 귀가 제대로 호강을 했습니다. 이 예배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작년에 또 갔는데 그 떄에는 오르간 연주로만 곡이 편성되어서 좀 지루한 편이었습니다. 올해에는 또 하이든의 곡 위주로 연주된다고 하여 기쁜 마음으로 가보았습니다.
역시 하이든인지라 익숙한 분위기의 노래가 나와서 그나마 좀 편안한 분위기로 음악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독일어로 진행되는 강론을 다 듣고 천주교 격식에 맞게 행동해야했죠. 그리고 당연히 헌금도 했습니다.
(예배일정 및 선곡표. 하이든 이외에 모짜르트, 바흐의 곡도 연주했습니다. 헌금 시간에는 헨델의 노래가…)
오전 11시 15분에 예배가 시작되어 12시 30분 경에 끝납니다. 좀 유명한 음악가 내지는 인기 좋은 음악이 연주되는 날에는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으니 가보시려면 10시 30분까지 일찍 가서 자리를 맡아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예배에 나오는 노래는 미리 정해져서 공지되니 빈에 여행가시는 분들은 한 번 가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hochamt.augustiner.at/hochaemter/aktuelles-programm/
참고로 빈의 상징과도 같은 스테판 대성당(Domkirche St. Stephan)은 일요일 10시 15분에 본예배를 하는데 이 때에도 좋은 음악이 연주됩니다. 그리고 관광객 입장에서는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성당에 미사를 보러왔다고 하면 돈을 받지는 않습니다. 초대형 성당이 내뿜는 장엄한 분위기는 스테판 대성당을 따라올 수 없으나 관광객의 입장에서 음악은 아우구스틴 성당이 훨씬 더 낫습니다.
https://www.wiener-dommusik.at/
2. 오스트리아 국립 오페라
(매우 현대적인 투란도트)
빈 도심 입구에 국립 오페라단(Wiener Staatsoper) 건물이 있습니다. 여름을 제외한 시기에 거의 매일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열립니다. 그 유명한 빈 필하모닉 악단의 연주자가 되려면 먼저 국립 오페라단의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는 특이한 규정이 있습니다. 빈필이 세계적으로 연주 실력을 인정받는 곳임을 감안하면 빈 오페라에서 연주하는 악단의 실력도 매우 뛰어남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가장 값 싼 12유로짜리 좌석을 구해 발코니 박스석 맨 뒷줄에서 공연을 봤습니다. 여러분이 빈에서 오페라를 보러 가실거면 이런 좌석은 사지 마세요. 무대의 절반이 안 보입니다.
예전 경험이 별로였기에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오페라는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공연한다고 해서 공연 당일에 풀리는 입석표를 구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미 좌석은 모두 팔려서 구할 수도 없었지만 공연 당일 10시에 인터넷에 입석권이 풀립니다. 정말 빠른 속도로 표가 사라지던데 저는 운이 좋게 표를 구했습니다. 단돈 18유로. 공연장 맨 뒤에 가장 음향과 시야가 좋은 쪽에 입석표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이런 것은 많이 부럽습니다.
음악협회 공연장에서도 가장 소리가 좋은 자리가 입석구역입니다. 음악협회와 오페라 극장의 입석표는 장단점이 서로 다르더군요. 음악협회에서는 입석표를 예매는 하되 좌석 지정은 되지 않아 좋은 자리를 맡으려면 공연장에 일찍와서 줄을 서야 합니다. 가장 앞줄에 서게 되면 음악협회의 아름다운 극장을 그냥 다 볼 수 있지만 뒤에 서게되면 좋은 시야는 적당히 포기하고 음악 감상에만 집중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맨 앞줄을 제외한 뒤에는 몸을 기댈 수 있는 시설이 전혀 없습니다. 반면 오페라 극장은 예매 단계에서부터 아예 입석 자리가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계단식 입석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시야는 보장됩니다. 몸을 앞으로 기댈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오페라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막이 나오는 전광판도 심어져 있습니다. 원하는 언어를 설정할 수 있고 당연히 영어도 있습니다. 다만 매우 비인간적인(!!) 수준의 협소한 공간만 허락되는지라 저는 처음 한 시간 동안은 내가 이 공연을 다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온도가 올라가는 날에는 거의 매 공연마다 실신하는 사람도 나온다죠.
(매우 비인간적인 관람환경. 돈은 별로 없지만 의지만 있다면 자막과 몸을 기댈 곳에 의지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추천합니다.)
이 입석표를 구해 공연을 보시고 싶으신 분들께는 차라리 맨 뒷줄로 가라고 권유드립니다. 맨 뒷줄은 뒤에 사람이 없고 공간이 있어서 다리도 뻗고 벽에 기대서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극장도 한 눈에 다 들어오니 앞보다는 뒤가 오히려 더 좋습니다. 아니면 맨 앞줄 정가운데에 딱 두 명분의 자리가 있는데 그 뒤는 계단 통로여서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이 자리를 확보하는 것은 운에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맨 뒤에서 두번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 뒷줄 사람들이 다 벽에 기대서 공연을 본 덕분에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오페라 극장에 올 때에는 정장에 드레스 차림으로 와서최대한 이쁘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만 입석에서 보는 사람들은은 무조건 최대한 편한 신발과 옷을 착용해야 합니다. 공연전에 물과 음식을 많이 드시고 오시는게 낫습니다.
공연을 보러 갈 때에는 별 기대가 없었는데 끝나고 나서는 안 왔으면 정말 후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빈의 국립오페라가 그렇게 유명한지 알게되었죠.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무대에 적응하는데에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가수들과 악단의 실력이 워낙 막강해서 정말 내가 18유로만 주고 이런 공연을 봐도 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돈이 별로 없어도 최고의 공연을 볼 수 있는 도시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대에는 가수 이외에 발레단 소속 무용수도 등장해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해주었습니다.
투란도트라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초대형 공연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렇게 아담한(?) 규모로 재해석된 투란도트를 보게 된 것도 나름 즐거웠습니다. 무대 연출은 매우 단촐해보이나 무대 장치는 나름 정교했으며 음악 수준은 단연 최고였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고 자신만 옳다는 이기적인 투란도트 공주의 모습에서 윤석열이 연상되었습니다.)
https://www.wiener-staatsoper.at/en/calendar/detail/turandot/2025-01-20/
(투란도트 공연 개요)
3. 콘체르트 하우스(Konzerthaus)
(색깔이 영...)
매년 그 유명한 빈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음악협회건물은 뭔가 황금빛에 빛나는 아름다운 고전음악연주당의 상징과도 같은 곳인 반면 이 곳은 뭔가 엉성하고 심지어 허접해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도 일년 내내 공연이 열립니다. 건물이 이쁘지 않다고 해서 연주하는 사람들의 급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음악협회에서 공연할 수 있는 똑같은 수준의 명성있는 사람들이 자주 공연합니다. 음악협회에서는 주로 고전음악만 연주되는 반면 콘체르트 하우스에서는 재즈 같은 공연도 많이 열립니다. 음악협회에는 오페라 처럼 점잖은 정작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여기에는 훨씬 더 편하게 옷을 입고 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운동복을 입고 온 사람은 정말 단 한명도 없었구요. 음악협회와는 달리 여기에는 아예 입석이 없습니다. 임윤찬이 공연한 1월 23일 공연은 당연히(?) 일찌감치 매진되었습니다. 회원들이 먼저 선예매하고 남은 자리가 일반에게 공개되는데 저는 더 좋은 좌석을 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3층의 앞에서 3분의 1정도 되는 지점 가운데 열에 40유로를 주고 표를 구입했습니다.
https://damoang.net/free/2967960
(예전에 올린 공연에 관한 글)
뭔가 화려하지 않고 싼티마저 나던 그 공연장에 불에 제대로 켜지니 훨씬 나아 보이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자리 잡은 곳에서도 소리가 아주 아주 잘 들렸습니다. 루체른에서 저를 괴롭혔던 그 먹먹한 소리가 아니라 또렷하게 악기가 하나하나 다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이 정도라면 굳이 비싼 돈을 주고 1층에 가장 좋은 자리로 가는게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좌석 구역의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앞좌석에 키가 큰 사람이 앉으면 시야는 포기해야 합니다만 그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앞에는 무슨 돌로 된 산 절벽이 가로막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임윤찬은 루체른에서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는데 이번에는 악단 및 지휘자와 정말 호흡이 좋았습니다. 소리, 연주 모두 루체른을 압도했습니다. 관객의 수준도 더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피아노 협주곡보다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브랫 딘(Brett Dean)의 Fire Music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 악기를 공연장 세 군데에 나누어 배치해서 마치 돌비 서라운운드 소리를 직접 구현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원래는 악기가 아닐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도 악기로 사용되었고 전자 기타도 동원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좌우에서 0.5초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악기가 연주되어 스테레오 효과가 나는데 이런 곡을 어떻게 교향악단이 연습을 했는지, 지휘자는 어떻게 이걸 연습시켰는지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이 곡은 꼭 공연장에 가서 들어야만 하는 노래입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것을 들어보니 그냥 시끄러운 현대음악에 불과합니다.
https://konzerthaus.at/concert/eventid/61841
(공연 개요)
(Fire Music의 영국 초연 녹음)
(지휘자인 마린 알솝 Marin Alsop과 임윤찬. 알솝 누님, 최고였어요!)
요약:
일요일에 열리는 아우구스트너 음악미사를 강력 추천합니다.
오페라 표를 못 구하셨거나 돈이 별로 없으면 공연 당일 10시에 공식홈페이지에 풀리는 열리는 입석권을 노리세요. 음향과 시야가 아주 좋습니다. 다만 보다가 관절에 무리가 올 수도 있습니다.
( https://www.wiener-staatsoper.at/en/ticket-info/ )
콘체르트 하우스는 3층 중간까지도 소리가 잘 들리고 시야도 비교적 좋습니다. 다만 맨 꼭대기까지 가면 무대가 살짝 가려보입니다.
음악매거진편집좀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