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리의 기억, 그 사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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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헌법재판소 부근 옛 현대그룹 계동 본관 앞에서 행진을 마치면서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동네하면 여기 대부분의 앙님들은 창덕궁이나 노무현재단을 떠올릴 겁니다.
그곳들 말고, 현대 본관 뒤로 헌재 부근에 낡은 이층 양옥집이 하나 있는데, 여기가 오랫동안 “역사문제연구소”의 사옥이었습니다.
역사문제연구소는 진보적인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들의 모임입니다. 다들 사무실 월세를 내기도 벅차던 그때 서울 시내 한복판에 돈도 못 버는 진보 인문학술단체가 이층 양옥집을 사옥으로 자가 보유하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노릇이었죠.
이 믿기지 않는 일은 역사문제연구소의 초대 이사장의 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서울대에 입학하자마자 제적된 그이는 다시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해서 졸업하고 인권변호사로 오래 활동했습니다. 담당한 사건을 승소하고 의뢰인에게 수임료 대신 받은 계동의 양옥집을 자신이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했던 역사문제연구소에 기증한 겁니다.
그이의 이름은 박원순입니다. 민선 서울시장으로 활약했고, 한때 대권 후보로도 꼽혔고, 끝내는 성추행 사건에 가해자로 지목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입니다.
그가 정말 성추행 사건을 저질렀는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그가 인권변호사이면서 동시에 한국근현대사 연구에도 크게 기여했으며,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저으며 나가떨어질 정도의 워커홀릭이라는 건 압니다. 어쩌면 스스로 워커홀릭이면서 주변 사람들까지 그 기준에 맞출 것을 종용하면서 많은 적을 만들지는 않았나 추측합니다. 그런 사람 실제 만나보기도 했고요.
죽으면서 정작 가족들에게 남겨준 건 어마어마한 장서와 텅 빈 계좌, (너무나 익숙한) 자식들에 대한 집요한 정치적인 공격, 추문 뿐이었습니다.
오늘 행진을 마치고 구호를 외치며 노래를 부르다 문득 그 양옥집과 그가 떠올라 구호를 외치던 목소리가 흔들리고 주먹을 쥐고 흔들던 팔에 힘이 빠졌습니다.
제겐 그가 결백하다고 믿기도 섣부르고, 그가 정말 그런 행동을 했다고 믿는 것도 섣부릅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왈가불가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왈가불가 하는 댓글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댓글이 달려도 일절 대댓글 달지도 않을 거고요.
그저 그런 사람이 있었고 우연히 오늘 그 자리에서 그가 떠올랐습니다. 박근혜 탄핵 때는 그가 서울시장이어서 참 좋았고, 메르스 사태 때도 그가 서울시장이어서 최악의 사태를 피했다는 안도의 기억이, 많은 진보적인 역사 연구자들이 그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오늘 섰던 자리에서 맥락 없이 떠올라 이 글을 올립니다.
나이 먹은 중년 남성은 호르몬 변화로 감상적이 될 가능성이 크고, 아마 이 글은 그래서 쓴 걸 겁니다.
글을 쓰다 역사문제연구소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회원 이름에 낯익은 이름들이 아직도 많이 보이네요.
아기고양이님의 댓글

제가 결정적으로 원순씨가 그렇게 가시고나서 여초로 여겨지는 커뮤에서 클리앙으로 이민을 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다모앙까지 오게 되었죠.
정말 귀한 분을 허망하게 잃었고 아직도 명예회복을 못 하고 계시다는 점에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박시장님의 서울시민이어서 행복했습니다. 뭐라 더 적기도 힘드네요 ㅠㅠ
plaintext님의 댓글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그는 왜 그렇게 서둘러 떠나야했는지
나는 왜 그를 그라고 할까
'그 분'이라 해야할것 같은데
그를 잃어야 할지, 잃지 않고 싶은지
그 선택권이 없다는 것, 없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그러지 말기를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 한 것일까 싶고..
그렇지만 가끔 당신을 떠올리면 한 없이 부족한
나로부터 많은 혼란 속에 머뭇거리게 됩니다.
나는 강하고 더 강한 척 해야할지 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어리숙함으로
당신의 빈 자리를 아쉬워만 하는
영원한 시민으로 남아 있네요
감정노동자님의 댓글

박원순재단 준비위원회 안내
- 박원순재단 준비위원회는 박원순 시장의 사회혁신가로서의 삶과 철학, 사회혁신운동의 뜻을 이어가기 위한 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본 다큐멘터리제작위원회는 한정적으로 박시장님의 사건의 진실을 찾는 다큐멘터리과 관련 소송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사회연대와 공동체적 가치가 더욱 필요한 시대입니다. 박원순재단 준비위원회에 참여 부탁드립니다.
박원순재단 준비위원회 사이트 : www.wonsoon.net
metalkid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