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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지키는 문형배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USArmy
작성일 2025.04.06 08:34
7,989 조회
244 추천

본문


이런 사연이..

(여기서 나오는 선생은 한약사,시민활동가 김장하 선생이라네요.)

정말 멋진분 입니다 ㅠ.ㅠ

 이런분이 사회에 많으면 좋겠습니다.

244추천인 목록보기
댓글 18 / 1 페이지

miir님의 댓글

작성자 miir
작성일 04.06 08:42
후보자 청문회 영상도 다시 보는데, 정말 문형배 재판관의 자식들은 아버지를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할 것 같네요.

괜찮은결말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괜찮은결말
작성일 04.06 08:45

많은분들 아시겠지만
안 보신분들은 넷플릭스 다큐 (어른 김장하) 찾아 보시면 좋을거 같아요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 숙연해집니다

USArmy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USArmy
작성일 04.06 08:50
@괜찮은결말님에게 답글 한번 보겠습니다

운영자z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운영자z
작성일 04.06 10:15
@괜찮은결말님에게 답글 최근 본 넷플중 가장 잼 났어요. 진짜 어른은 누구인지 알게되죠.

노마드5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노마드5
작성일 04.06 13:35
@괜찮은결말님에게 답글 어른 김징하 보고 펑펑 울었어요

쎄라토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쎄라토
작성일 04.06 08:48
어른 김장하 보시면
문형배 재판관님 나옵니다^^

호흡지간님의 댓글

작성자 호흡지간
작성일 04.06 08:50
훌륭한 스승님 덕분에 나라가 살아났습니다!

대로대로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대로대로
작성일 04.06 08:56
이 분도 대단하고 정계선 재판관도 대단하더군요.
서울의대 입학했다가 전태일 평전 읽고 법대로 다시 입학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지금껏 소신을 지키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두 분 다 지금 시대에 큰 일을 하셨습니다.

diynbetterlif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diynbetterlife
작성일 04.06 09:14
@대로대로님에게 답글 다스는 이명박 것 이라는 판결도 정계선 재판관이 하셨죠
 


남들은 가지 못해 안달이던 서울대 의대를, 그는 과감히 그만뒀다.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 1988년 서울대 법대에 재입학했다. ‘정의’와 ‘학생운동’이 이음동의어였던 시절, 그는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5749

농약벌컥벌컥님의 댓글

작성일 04.06 09:11
이번탄핵집회에 김장하선생님도 참여하셨죠 ㅎㅎ
3

레인보우식스님의 댓글

작성일 04.06 09:27
형배찡 ㅜㅜ

놀고픈v망곰님의 댓글

작성일 04.06 09:28
감사한 분들입니다. ㅠㅠ

그린파파야123님의 댓글

작성일 04.06 11:54
저도 어른 김장하 다큐 영화와 동일한 제목의 책을 통해서 문대법관을 알게된 사람입니다.

그의 개인사 고백을 통해 김장하 어르신께서 키운 장학생이며 그분의 가르침을 늘 새기고 살아왔고 살아갈거라고 들었어요.

선고일이 늦어지면서 염려와 헌재에 대한 실망으로 문형배 대행님을 오해했어요

몇가지 사유로 김장하 어르신께서 키운 인재 오해하고 잘못 키웠다고 망발한거 사죄드립니다.

led형광등님의 댓글

작성자 led형광등
작성일 04.06 12:10
문씨 가문에 인재들이 많군요.

고무호스님의 댓글

작성자 고무호스
작성일 04.06 13:32
민주당이 임명한 헌법 재판관들은. 정말. 너무 훌륭합니다.

힘센페달님의 댓글

작성자 힘센페달
작성일 04.06 14:33


롯데 야구를 보시면서 이정도 반응인걸 보면 자제력도 대단하시죠
2

논알콜님의 댓글

작성자 논알콜
작성일 04.06 18:20
어제 부모님께 좀 여쭈어 봤는데, 김장하 선생님 일하실 때는 그 한약방 문 열기 전부터 사람들이 줄줄이 줄 서 있었다고 하더군요. 곳곳에서 온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많이 와서 많이 돈을 버셨냐 하니까, 재료도 좋은 걸 쓰는 걸로 소문 났는데 가격이 쌌다고 합니다. 다른 데서는 6만원이면 거기는 4만원이었다고. 아버지와 같이 일하신 분 처가댁이라고 들었는데, 그 분이 얘기하시기로 김장하 선생님이 조카들인 그 집 자식들도 다 학비 대셨다고 합니다.
명신고도 사립일 때는 그렇게 잘 나갔다고 합니다. 김장하 선생님이 기냥 막 선생들을 사적으로 먹이고 지원하시고 학생들 잘 가르쳐 달라고 엄청 쏟아 부으셨다고 하더군요. 부모님 말씀으로는 그러다가 공립으로 전환되고 그런 거 없으니까 진학률 떨어진 거 같다고..ㅎㅎ 얘기 들어보니 진주시는 저 분 덕을 어마어마하게 봤습니다.

그린파파야123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그린파파야123
작성일 04.06 18:30
@논알콜님에게 답글 남성당 한창 잘나갈 시절엔 직원이 28명이나 됐었다네요. 나무 같은 어르신 아래서 비 피하고 더위 피한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네요.
진주가 낳은 진정한 진주의 지도자 입니다.
지금도 저분의 스토리로 인해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지요? 다큐와 책으로 전해져 널리널리 퍼진 까닭으로. 그렇게 보면 진주는 지금도 저분의 덕을 보고있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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