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에게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젤라스틴

Lv.1 젤라스틴 (62.♡.72.90)

2025년 5월 9일 PM 06:12 · 수정됨(21:59)

조회 1,639 공감 0

어렸을때부터 친하게 지낸 사촌들이 있습니다.


둘째 큰 아버지 댁과 저희 집은 서울 <--> 양평으로 멀었는데도 방학이면 늘 양평으로 놀러가서 사촌형제들과 재밌게 놀았습니다. 그때는 여주를 가려면 상봉 터미널에서 완행 버스 타고 2시간은 꼬박 가야 도착할 수 있었거든요.


사촌형네는 저보다 나이가 많은 형님 두분, 저보다 어린 동생 한명 이렇게 세명이었어요. 게다가 첫째 큰 아버지 댁 아들도 저보다 한살 어린 동생이었는데, 여름 방학에 한번 세 집안의 아들들이 양평에서 뭉치면 동네에서 저희를 건드릴 애들은 거의 없을 정도로 위세가 좋았습니다. (그냥 서로 우와아 하고 몰려 다니는 정도였지만요)


그렇게 친했는데도 나이들고 다들 결혼하고 전국에 흩어져 지내다보니 연락도 경조사 있을때나 하게 되었죠. 어떨때는 사소한 일로 오해가 생겨 말다툼도 했지만, 금방 또 풀어지곤 했습니다.


얼마전, 양평 살던 사촌 중 저보다 어렸던, 아직 미혼인 40대 초반의 사촌 동생이 (편의상 호돌이라고 하겠습니다) 진짜 한 10년만에 카톡으로 연락해서 '급해서 그런데 50만원만 빌려달라. 월말에 갚겠다'라고 하더군요.


사실 작년에 제 친동생과 만났을 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 호돌이랑 연락한 적 있어?"

"아니, 없는데? 왜?"

"호돌이가 오랫만에 연락해서 돈 좀 빌려달라고 하더라구. 한 100만원만 해달라고 해서 나도 어려워서 못해주겠다고 했어."


그 이야기를 듣고, 호돌이가 요새 사정이 안좋나 싶었는데... 1년여가 지난 몇달전 저에게도 연락이 왔습니다. 용건은 똑같이 '돈'.


그 카톡을 보고 답장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오갔어요. 요즘에 50만원은 대학생 한달 알바비도 안 되는 금액인데... 그 돈이 없어서 나에게까지 연락했구나 싶은 아쉬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돈 50만원이 없어서 연락하고 있다니... 서운함과 아쉬움이 뒤섞였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돈 빌려줬다가 돈도 사람도 잃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고민했지만, '오죽하면 10년간 연락 안하던 사촌에게 돈 얘기를 꺼냈을까...'라는 생각에 빌려주기로 했습니다. 돈을 빌려주되, 도로 받을 마음은 가지지 않기로 했어요. 40대 초반의 사촌동생이 50만원 때문에 아쉬운 소리 하는게 속상했고, 대학생 한달 편의점 알바비도 안되는 금액으로 사촌동생 녀석에게 부담주고 싶지 않기도 했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호돌이에게는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나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결국 제가 보낸 첫 답장은 단 두글자였습니다.


"계좌"


고맙다며 계좌를 보내와서 혹시 보이스피싱이 아닌가 싶어 가족관계 질문을 했고, 다 맞추길래 보내줬습니다. (할아버지 함자는 기억하는데 할머니 함자는 기억 못한다는 게 좀 괘씸했지만요.)


그렇게 50만원은 그 녀석에게 넘어갔고... 석달이 지난 지금... 당연하게도 호돌이로부터 연락은... 없습니다.


어쩌면 '돈 갚을 여력이 없어서...' 싶은 마음일수도 있고, '헤헤 꽁돈 오케이!'라고 생각했을수도 있지만 딱히 후회하진 않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을 함께한 사촌동생에게 50만원 빌려주고 못 받았다고 원통해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그 돈으로 잠시나마 어려운 상황이 해소되었다면, 적은 금액으로 사촌 형으로서의 역할도 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카톡을 보다가 호돌이의 프로필이 업데이트된 것을 보고 '어려운 시대에 나쁜 생각 안하고 의연히 살아가는 모습이면... 그래 됐다 인석아!' 싶어 대견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다모앙에 글 한 줄 남겨 봅니다.



ps. 아내 몰래 해주느라 제 비자금을 사용한 덕에... 스팀덱 OLED 버전을 구매하는 건 내년쯤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ㅠ.ㅠ )

댓글 (13)

  • D10S

    D10S Lv.1

    25.05.09 · 183.♡.92.89

    {emo:moon-emo-023.gif:100}
    따뜻한 사연이네요
  • 젤라스틴

    젤라스틴 Lv.1 → D10S 작성자

    25.05.09 · 62.♡.72.90

    감사합니다. 사촌동생 녀석이 나쁜 생각 안하고 용기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돈도 찬찬히 벌구요...
  • 딸기오뎅

    딸기오뎅 Lv.1

    25.05.09 · 116.♡.188.207

    전문가들 말에 의하면....금전 거래는 가족하고도 하지 말라고는 하는데...
    차갑게 내칠 수 없어서 소액은 빌려 준다고 하는데 굳이 받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또 빌려달라고 하면 그때는 나도
    어렵다고 거절하구요. 애초부터 금전 거래는 안 하는 게 좋더라구요. 금전거래로 인해서 앙금도 생기고 좀 그렇습니다.
  • 젤라스틴

    젤라스틴 Lv.1 → 딸기오뎅 작성자

    25.05.09 · 62.♡.72.90

    금전거래는 안하는게 최고 좋긴 합니다. 저도 그걸 금과 옥조로 생각하는데...
    이게 참... 어린 시절 같이 뛰놀고 하던 사촌 동생의 소액을 빌려달라는 요구까진 거절하기 힘들더라구요.
    다만 그 녀석이 갚았으면... 다음에 또 돈을 융통할 수 있었을텐데요... 아쉽긴 합니다.
  • mab0104

    mab0104 Lv.1

    25.05.09 · 121.♡.67.68

    선배 돈빌려주고... 담달에 준다하더만 6개월이 넘어가네요...
  • 젤라스틴

    젤라스틴 Lv.1 → mab0104 작성자

    25.05.09 · 62.♡.72.90

    사실 친척이 아닌 다른 분들에게 돈 빌려주고 받기가 너무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저도 아마 사촌동생이 아니었고, 또 거액 이었다면 돈을 빌려주지 못했을 것 같긴해요.
  • booknbeer

    booknbeer Lv.1

    25.05.09 · 61.♡.162.10

    친인척이 앞뒤사정없이 돈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주고 기한 지나도 안갚고 연락없으면 안좋은쪽으로 탕진했더라구요
    진짜 급한일 생겨도 이미 신용이 없어서 또 연락해봤자 돈도 못빌리고요. 급한일도 나쁜쪽으로 탕진하지 않았다면 급한일도 아닌일이었습니다
    사촌형으로서 잘하셨습니다 그동생은 좋은형을 잃어버린게 안타깝습니다
  • 젤라스틴

    젤라스틴 Lv.1 → booknbeer 작성자

    25.05.09 · 62.♡.72.90

    따뜻한 말씀 감사 드립니다.
    사실 그 녀석이 50만원을 제때 갚았다면 다음엔 100만원이라도 더 빌려줄 생각을 했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니, 안타깝지만 다음부터는 저도 돈을 더 빌려주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음이 좀 시리긴 하네요...
  • StarMix

    StarMix Lv.1

    25.05.09 · 222.♡.41.121

    뜬금없이 “계좌 ”
    답장 받길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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