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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1일 AM 02:10 · 수정됨(13:51)
해방 후 3년 뒤인 1948년,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일제치하 민족반역자를 처벌하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반민특위'를 출범시킵니다.
그러나 이듬해 49년, 무장경찰이 반민특위 특경대를 습격합니다.
반민특위 활동은 사실상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일명 '국회 프락치 사건'.
반민특위 위원이거나 특위 활동을 적극 지원했던 국회의원 13명이 북한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습니다.
[이준식/전 독립기념관장]
"반민법이 제정되고 나니까 이 친일파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였냐면 '친일 청산하자고 하는 놈들은 빨갱이다'…"
그렇게 반민특위 활동은 무산됐고 친일파 청산은 그 골든타임을 넘기며 결국, 좌절됐습니다.
그리고 2023년 광복절.
[윤석열/당시 대통령(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 2023년 8월 15일)]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습니다."
견제세력을 '빨갱이'로 몰았던 전직 대통령은 광복 80년 문턱에서 12.3 내란 사태를 일으켰습니다.
해방 직후 가장 시급했던 역사적 과제 친일청산은, 반민특위의 해체와 함께 무산됐고,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의 가장 큰 오점으로 남아있습니다.
당시 친일세력은 반민특위를 집요하게 공격했고 그 핵심 논리는 지금도 우리에게 익숙한 이른바 '빨갱이 몰이'였습니다.
반민특위의 친일 단죄 시도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성원을 받았지만 친일세력의 지지를 받았던 이승만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반발했습니다.
특히 친일경찰 노덕술이 구속된 직후 이승만은 '반민특위의 행동이 지나쳐 국가 치안에 방해가 된다' 며 특경대를 없애야 한다는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친일파들은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했고 노덕술의 주도하에, 반민특위 요인들을 암살하려 했던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49년 5월,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는 발단이 된 사건이 터집니다.
이른바 '국회프락치' 사건.
이승만 정권은 북한의 간첩 노릇을 했다는 혐의로 제헌 국회의원 15명을 체포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반민특위 위원으로 활동 중이거나 반민특위법을 적극 지지했던 소장파 의원들이었습니다.
당연히 반민특위 활동은 크게 위축됐고, 정상적인 수사도 불가능해졌습니다.
한 달여 뒤인 1949년 6월 6일.
당시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출동한 무장 경찰이 반민특위 특경대원들의 사무실을 습격했습니다.
특경대원들을 무장해제하고 강제 해산시킨 겁니다.
이틀 뒤 이승만 대통령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특경대 해산을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반민특위 특경대가 '친일 경찰' 척결을 명목으로 경찰을 무리하게 수사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준식/전 독립기념관장]
"친일 경찰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알려진 노덕술을 체포한 게 계기가 돼가지고 노덕술 밑에 있던 경찰이 반민특위 특경대를 습격해가지고 무장해제를 시키거든요."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 근거해 출범한 반민특위를, 대한민국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경찰이 무력을 사용해 강제해산시킨 사건.
제헌 헌법을 짓밟은 겁니다.
[고 이원용/당시 반민특위 총무과장(2001년 인터뷰)]
"아니 어떤 기관이 헌법 기관을 갖다 백주에 말이지, 말 한마디에 없앱니까? 말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체포된 친일파들은 이후 줄줄이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경찰의 습격을 받은 지 4개월 뒤, 그렇게 반민특위는 친일반민족행위 처벌이라는 사명을 다하지 못한 채 해체됐습니다.
반민특위가 재판에 넘긴 사건만 221명.
그중 사형과 무기징역은 각각 1명 18명에 대해 공민권 정지형이 내려졌지만 1950년 3월까지 형집행정지 등으로 전원 풀려났습니다.
해방된 대한민국은, 민족을 배반했던 친일파 단죄를 이렇게 좌절시켰습니다.
[이준식/전 독립기념관장]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 또는 점령지가 됐던 나라 가운데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 민족을 배반한 사람을 처벌하지 않고 넘어간 나라는 없습니다. 예외가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한국입니다."
[김민철/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반공을 위해서 친일 청산은 잠시 중지를 해야 된다' 그게 그 사람들의 주장이었고 또 그래야만 자신들의 행위를 사실은 이제 반공이라는 논리로 합리화시킬 수 있으니까 그걸 이제 보호받을 수가 있죠."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체포됐거나 반민특위를 지지했던 의원들의 후손에겐 '빨갱이'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다녔습니다.
반민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독립운동가 고 김상덕 선생의 장남 김정륙 씨.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던 중국에서 지내야 했고, 일제의 탄압을 피해 다녔던 아버지는 집안 형편을 돌볼 수 없었기에 가족들 모두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 3살 난 막내 여동생이 중국에서 세상을 떠났던 날, 어린 딸의 시신을 안고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합니다.
[김정륙/고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막내가 갑자기 죽어요. 진단 결과 굶어서 죽은 거예요. 세 살짜리 보고 복숭아, 무슨 당근 이런 거 먹어가지고 견딜 수가 없잖아요."
김상덕 선생이 6.25 전쟁 중 북한군에 의해 납북된 뒤에는 독립운동가의 후예라는 명예 대신 '빨갱이 가족'이라는 비난을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김정륙/고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그 당시에 취직하려고 그러면 신원보증서예요. 신원 증명서 발급을 신청했어요. 했더니 담당 직원이 '아예 발행 불가로 나온다'… '납북자 아들', '빨갱이다' 이렇게 빨갱이로 규정해 버려."
당연히 수입이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올해 90살인 김정륙 씨는 5년 전, 독립유공자 혜택을 받아 지금의 공공임대아파트로 이주해 오기 전까지 일생 대부분을 막노동과 신문 배달 등을 하며 월세방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항일 무장투쟁에 동참했던 독립운동가 김동삼 선생의 손녀 김복생 씨.
김 씨의 할아버지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느라 가정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난 김 씨 역시 어려운 형편 탓에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평생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지금도 20제곱미터, 8평짜리 반지하 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김 씨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을 자신의 삶에서 체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복생/고 김동삼 선생 손녀]
"독립유공자들이 3대가 망한다는 원인이 있어요. 할아버지가 독립(운동)하니까 아버지가 공부를 많이 못 하고 매일 그 일경에 쫓겨 다니느라고 생활도 어렵고, 우리 후대들이 다 공부를 많이 못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출세라는 게 뭐라도 알아야 하는데 배우지 못하니까 어떻게 출세를 하겠어."
독립유공자들의 평균 연소득은 일반 국민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또 43%가 중졸 이하의 학력이었습니다.
반면 일제치하에서 부와 권력을 누리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던 친일세력과 그 후손들의 삶은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일제하 친일반민족행위를 대대적으로 조사했고,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발표해 역사에 기록했습니다.
이 명단을 기록한 정부 보고서는 지금도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이 1,006명의 명단엔 조선, 동아일보의 창업주를 비롯해 연세대와 고려대 이화여대 등 명문 사립대학의 총장 해방 뒤에도 정, 관계 고위직을 지낸 인사의 조상들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포함돼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기록이 이뤄졌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뉴라이트와 극우세력의 역사 왜곡은 거세졌고, 윤석열 정부에 와서 극에 달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앞을 대형 일장기를 들고 점거한 뒤 '위안부'는 자발적 성매매라고 모욕했습니다.
[김병헌/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유튜브 '국계본tv', 7월 23일)]
"이 위안부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거짓말입니다. 이 성매매 여성 동상을 전국 지천에 155개, 155개나 깔아놨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검정을 통과한 역사교과서는 한반도 전체를 병참 기지화한 사실보다 일제의 공업정책이 해방 후 한국 경제의 바탕이 되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인식을 교묘하게 보여줬습니다.
극우 유튜버들은 독립운동가들을 노골적으로 폄하하고 색깔론을 씌워 공격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 승률 1% 안 되는 그 무장투쟁을 했던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우리가 있다?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전혀 1도 동의할 수 없어."
극우적 역사관을 가진 인물들이 정부 요직에 진출했고, 대표적 무장독립투쟁 영웅인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려는 시도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김민철/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과거에 친일을 했고, 그다음에 독재에 협력을 해서 자기의 기득권을 누렸던 세력들이 역사에 드러난 거 아닙니까? 그걸 끊임없이 만회하기 위해서 역사적 사실을 갖다가 왜곡하거나 아니면 해석을 굉장히 이제 고약한 방식으로 하는 것들인데 그거는 아마 끊임없이 되풀이될 겁니다."
극우세력의 공격 탓인지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은 살면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독립운동에 대한 폄하와 역사 왜곡을 꼽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홍구/성공회대 석좌교수]
"친일 청산에 실패한 게 아니라 '친일파 민족 반역자를 청산하자'고 주장하던 민족적 양심을 가진 세력이 친일파한테 거꾸로 청산당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세력이 쭉 이어져 온 거죠."
그리고 광복 80년이 되는 해를 불과 며칠 앞둔 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무력을 동원해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파괴하려 했습니다.
내세웠던 명분 역시 반민특위를 해산시켰던 이승만과 비슷했습니다.
[윤석열/당시 대통령(2024년 12월 3일)]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대한민국은 12·3 내란사태의 법률적 단죄 국면을 맞이한 상태입니다.
단죄의 '골든타임'을 놓쳤을 때 역사적 정의가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되는지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해방 직후 좌절된 반민특위의 교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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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최우선 과제였던 친일파 청산을 못하고
되려 친일파에 의해 척결돼 왔던 독립운동과 진보진영의 인물들을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정의연 활동을 해 온 윤미향 전 의원에 대한 집요한 공격은 진행중이고요.
또 물어뜯기는 윤미향…마용주 판사는 무슨 짓을 했나
추미애“윤미향을 위하여”
친일파 명단을 조사해서 기록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론몰이 사법살인을 당한 것과 다름없고,
홍범도 장군 유해를 모셔오고 후쿠시마 수산물 국제 소송도 이긴 문재인 전 대통령도 끊임없이 공격 받고 계시죠.
이재명 대통령도 기적적으로 생존해 오셨고요.
윤석열과 극우들은 자신의 척결 대상을 종북 좌파 빨갱이라고 하고,
중국이 부정선거에 개입했다며 혐중, 혐조선족 정서를 부추겼습니다.
서부지법 앞 극렬 시위대, 기자 폭행하고 경찰엔 "중국 공안" 막말 | 오마이뉴스
"미국 네이션지의 추적보도, 한반도 극우의 후원자 애니챈"

스트레이트 보도에서도 알 수 있듯
독립운동가들 상당수가 중국에서 활동했고
말 그대로 3대째 극심한 가난에 시달려왔습니다.
반면 독립운동가를 탄압한 자들이 경제, 정치, 언론 등을 장악해서 빨갱이, 혐중, 혐조선족 몰이를 해왔고요.
이승만때부터 저들이 반민특위를 공격해온 똑같은 방법을
현재에도 진보진영의 정치인들과 유시민 같은 지식인들, 동료시민이 아닌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못한 단죄의 후과로 12.3 내란이 일어났고
계엄해제 후에도 여전히 이재명 대선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하려 했으며 내란수괴를 부활시키려 했고,
리박스쿨로 공교육에 침투했으며, 이재명 정부로 정권이 교체됐음에도 문체부를 통해 문화영역도 장악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에서는 친일에 뿌리를 둔 내란세력(검언정경판 그리고 종교와 학계)을 단죄하고 공교육에서 역사를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
친일파에 대한 최소한의 기록이 아닌 최대한의 기록으로 지속적으로 보강해야 합니다.
친일파의 재산도 압류해야 하고요.
그리고 혐중, 혐조선족 논리를 펴는 분들 중에 근거가 빈약한 분들은 제가 클리앙과 다모앙에서 박제를 해왔는데요,
본문처럼 중국은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역사의 현장이고, 그 후손들이 '조선족(중국동포)'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혐중, 혐조선족 정서를 국짐과 적폐언론들이 조장하는건
부일매국세력들이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철거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윤미향 전 의원처럼 전범국 일본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가들을 탄압하는 이유고요.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친일역사를 지우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미일의 이해가 앞선 이념전쟁에 한국이 나서 전초기지와 항공모함 역할을 하게 만드는 거고요.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견제와 균형외교의 대상입니다. 우리 국익을 최우선으로.
댓글 (4)
- 버
버미파더
25.08.11 · 176.♡.55.112
개인적으로 부일매국 내란당의 헌법에 따른 해체는 이제야 드디어 진정한 독립의 시작을 가늠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닐까 하며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비비글은스누피
→ 버미파더
25.08.11 · 221.♡.190.159
과연 헌재가 제대로 보기는 할지...그게 의문이군요 - 버
버미파더
→ 비글은스누피
25.08.11 · 217.♡.255.211
통진당 전례가 있으니 달리 판단하기 어려울 거라고 기대해봅니다.
부부/가족에 대한 동시 구속, 기소 등도 이전에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었는데
조국님 가족의 전례를 기점으로 진행되는 면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
Oodyssey9
25.08.11 · 119.♡.230.178
쌀국이 조장한 이 친일파, 아니 종일파의 역사에서 이제 제발 좀 벗어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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