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KIssTyle (39.♡.46.114)
2026년 1월 12일 PM 11:25 · 수정됨(01. 13. 04:56)
플래쉬 생각하고 클릭하셨죠?
아닙니다 파이널컷 입니다

당시 애플 망해간다 생각하던 아도비에서 애플 진영에 미온적인 태도 보이자 잡스가 매크로미디어에서 버리려던 걸 주어 왔다고 합니다.
파이널 컷 프로(Final Cut Pro)의 탄생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합니다. **"경쟁사(어도비)가 버린 천재 개발자가, 다른 회사(매크로미디어)에서 만들었지만 버림받을 뻔한 소프트웨어를, 스티브 잡스가 줍다시피 가져와 대박을 터뜨린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흥미진진한 개발 비화를 단계별로 정리해 드립니다.
1. 출생의 비밀: "아버지가 프리미어와 같다"
파이널 컷 프로의 아버지는 **랜디 유빌로스(Randy Ubillos)**라는 천재 개발자입니다. 놀랍게도 그는 어도비 프리미어(Adobe Premiere)의 초기 버전(1.0~4.0)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 어도비와의 결별: 어도비가 프리미어의 코드를 완전히 새로 짜기로 결정하면서 랜디 유빌로스는 팀과 마찰을 빚었고, 결국 회사를 떠나 경쟁사인 **'매크로미디어(Macromedia)'**로 이직합니다.
2. 매크로미디어의 사생아, 프로젝트명 '키그립(KeyGrip)'
매크로미디어로 간 랜디 유빌로스는 퀵타임(QuickTime) 기술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개발합니다. 이 프로젝트의 코드명이 바로 **'키그립(KeyGrip)'**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했습니다.
• 매크로미디어의 변심: 당시 매크로미디어는 플래시(Flash) 등을 통해 '웹 기술 회사'로 거듭나려 했습니다. 무거운 데스크톱용 영상 편집기는 회사 방향과 맞지 않았습니다.
• 어도비의 눈치: 무엇보다 거대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나 어도비와 경쟁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습니다.
3. 마이크로소프트의 거절, 그리고 애플의 등장
매크로미디어는 이 '키그립' 프로젝트를 팔아치우려 했습니다.
• MS에 제안: 먼저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을 제안했으나, 당시 독점 금지법 소송 등으로 골머리를 앓던 MS는 어도비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이를 거절했습니다.
• 스티브 잡스의 결단: 이때, 1998년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이 소식을 듣습니다. 당시 애플은 '아이맥'을 내놓고 '디지털 허브' 전략을 구상 중이었는데, 핵심인 동영상 편집 도구가 없었습니다.
어도비에게 "맥용 프리미어를 좀 더 잘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한 상태였던 잡스는, 단돈 **700만 달러(추정)**라는 헐값에 '키그립' 팀과 소스코드를 통째로 사들입니다.
4. 신의 한 수: "FireWire(IEEE 1394)와의 결합"
애플로 넘어온 키그립은 **'파이널 컷 프로'**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애플은 여기에 결정적인 하드웨어 기술을 접목합니다. 바로 **'파이어와이어(FireWire)'**입니다.
• DV 혁명: 당시 방송국은 수천만 원짜리 장비로 편집을 했지만, 파이널 컷 프로는 파이어와이어 포트가 달린 맥(Mac)과 100만 원대의 DV 캠코더만 연결하면 방송급 화질을 캡처하고 편집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 시장 파괴: 수억 원이 들던 편집 시스템을 단돈 수백만 원(맥+소프트웨어)으로 대체해버린 것입니다.
5. 결과: 할리우드를 점령하다
1999년 출시된 파이널 컷 프로는 초기에는 불안정했지만, 애플의 전폭적인 하드웨어 최적화 지원을 받으며 급성장했습니다.
• 프리미어의 굴욕: 앞서 언급했듯, 애플이 파이널 컷 프로를 내놓자 아도비는 맥용 프리미어 개발을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맥 사용자들이 파이널 컷 프로로 대거 이동하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 영화계의 표준: <콜드 마운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파이널 컷 프로로 편집되면서, "애플은 장난감이 아니라 프로의 도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요약
파이널 컷 프로는 **"어도비가 놓친 인재가 만들고, 매크로미디어가 버리려던 것을, 애플이 주워와서 영상 편집의 역사를 바꾼 소프트웨어"**입니다. 이 소프트웨어 덕분에 애플은 크리에이터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브랜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외에도 마소의 오피스랑 익스플로러가 끊길거 같자사파리(웹킷)와 키노트가 탄생하기도 했습죠. (퀵타임 소송)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퀵타임(QuickTime) 소송은 1990년대 중반, 애플의 멀티미디어 기술인 퀵타임 소스 코드를 마이크로소프트가 불법적으로 도용했다는 혐의로 시작된 법적 분쟁입니다.
이 사건은 당시 파산 위기에 몰렸던 애플이 1997년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억 5천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내며 극적으로 부활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흔히 '빌 게이츠가 라이벌을 구원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이 소송의 합의금 성격이 짙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건의 발단: "샌프란시스코 캐년 컴퍼니"
1990년대 초, 애플은 자사의 독보적인 동영상 기술인 **퀵타임(QuickTime)**을 윈도우(Windows)로 이식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캐년 컴퍼니(San Francisco Canyon Company)'**라는 외주 개발사를 고용했습니다.
• 문제 발생: 얼마 후 인텔(Intel)과 마이크로소프트도 자사의 동영상 기술인 '비디오 포 윈도우(Video for Windows)'의 성능 개선을 위해 같은 회사를 고용했습니다.
• 코드 유출: 이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 캐년 컴퍼니가 애플을 위해 작성했던 퀵타임의 핵심 코드를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젝트에 무단으로 재사용했습니다.
2. 소송 제기 (1994~1995)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비디오 포 윈도우' 성능이 갑자기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을 수상하게 여겼고, 코드를 분석한 결과 수천 라인의 퀵타임 코드가 그대로 도용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 1994년: 애플은 먼저 샌프란시스코 캐년 컴퍼니를 고소했습니다.
• 1995년: 이후 조사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거나 주도했다는 혐의로 두 거대 기업을 피고로 추가했습니다.
• 증거: 애플은 법정에서 해당 코드를 제거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의 성능이 다시 형편없이 떨어지는 것을 시연하며 도용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해당 코드가 포함된 제품의 배포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3. 극적인 합의 (1997년)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했을 때, 회사는 파산 직전이었습니다. 잡스는 이 소송을 카드로 활용하여 빌 게이츠와 역사적인 협상을 타결했습니다.
• 표면적 발표: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에 1억 5천만 달러의 의결권 없는 주식을 투자하고, 향후 5년간 맥(Mac)용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대신 애플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본 브라우저로 탑재)
• 숨겨진 진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소송에서 패할 경우 수십억 달러의 배상금을 물어낼 위기였습니다. 따라서 1억 5천만 달러는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퀵타임 기술 도용에 대한 사실상의 합의금 성격이 매우 강했습니다.
요약
결국 이 소송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의 기술을 훔쳤다가 꼬리를 밟혔고, 스티브 잡스가 이를 이용해 파산 직전의 애플을 살려낼 자금을 확보한 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웹킷(WebKit)의 탄생 비화는 **"애플이 리눅스 동네의 작고 빠른 엔진을 몰래 가져와 다듬어서, 거대 공룡(넷스케이프/모질라)을 이기고 전 세계 모바일 웹의 표준이 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사파리(Safari)는 물론, 구글 크롬(Chrome)의 뿌리까지 된 이 위대한 엔진의 개발 비화를 정리해 드립니다.
1. 넷스케이프의 유령을 피하라
2000년대 초반, 스티브 잡스는 맥(Mac)만의 독자적인 웹 브라우저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맥의 기본 브라우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E)'였는데, MS가 개발에 손을 떼면서 성능이 뒤처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플 개발팀(리더: 돈 멜튼)은 처음에는 당시 오픈소스로 풀린 '모질라(Mozilla, 훗날 파이어폭스의 기반)' 엔진을 검토했습니다.
• 문제점: 모질라는 너무 거대하고 복잡했습니다. (이른바 '스파게티 코드'). 넷스케이프 시절의 낡은 코드가 엉켜 있어, 애플이 원하는 가볍고 빠른 브라우저를 만들기엔 무리였습니다.
2. 리눅스 동네에서 보석을 줍다: KHTML
그때 애플 엔지니어 켄 코시엔다(Ken Kocienda)가 리눅스 데스크톱 환경인 KDE에서 사용하는 **'캉커러(Konqueror)'**라는 브라우저를 발견합니다. 이 브라우저의 심장이 바로 'KHTML' 엔진이었습니다.
• 충격적인 가벼움: 모질라의 코드가 수백만 줄이었던 반면, KHTML은 고작 14만 줄에 불과했습니다.
• 성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페이지를 렌더링하는 속도는 훨씬 빨랐고 코드도 깔끔했습니다. 애플 팀은 "바로 이거다!"라고 외치며 이 엔진을 채택합니다.
3. "나쁜 이웃" 애플: 오픈소스 진영과의 갈등
애플은 KHTML을 가져와서 비밀리에 **'웹킷(WebKit)'**이라는 이름으로 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오픈소스 커뮤니티(KDE)와 큰 마찰이 빚어졌습니다.
• 코드 투척(Code Dump): 애플은 1년 넘게 비밀리에 개발하다가, 사파리를 발표하면서 변경된 코드를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이 코드가 너무 많이 뜯어고쳐져서, 원작자인 KDE 팀이 도저히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반영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 KDE의 분노: "오픈소스 정신을 위배했다", "단물만 빨아먹고 쓰레기를 던져줬다"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양측은 '포크(Fork, 프로젝트 분리)' 직전까지 가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4. 화해, 그리고 천하통일
다행히 애플은 실수를 인정하고 태도를 바꿨습니다. 개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채팅 채널(IRC)을 열어 KDE 개발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코드를 통합하기 시작했습니다.
•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웹킷은 날개를 답니다. 모바일 환경에서도 PC처럼 완벽한 웹 서핑이 가능한 유일한 엔진이었기 때문입니다.
• 구글의 합류: 당시 애플과 사이가 좋았던 구글도 안드로이드와 크롬(Chrome)을 만들면서 웹킷을 채택했습니다. (나중에 구글은 웹킷에서 갈라져 나와 '블링크'라는 엔진을 만들지만, 뿌리는 같습니다.)
5. 결과: 웹의 표준이 되다
결과적으로 이름도 없던 리눅스 프로젝트의 작은 엔진(KHTML)이 애플의 손을 거쳐 전 세계 웹 브라우저 시장을 평정했습니다.
• 승자: 현재 전 세계 브라우저 점유율의 절대다수(크롬, 사파리, 엣지 등)는 웹킷이나 그 파생형(블링크)을 사용합니다.
• 역사의 아이러니: 애플이 처음에 검토하다 버린 모질라(파이어폭스) 진영은 웹킷 진영에 밀려 점유율이 크게 낮아졌습니다. 애플의 '가벼운 엔진 선택'이 신의 한 수가 된 셈입니다.
사실 다들 애플 망했다고 생각한 때인데
잡스가 대단하긴 했습니다.
댓글 (11)
-
AAlexYoda
01.12 · 125.♡.79.28
우와.. 무슨 일 하시길래.. 이런 보석같은 이야기를 게시판에 올려놓으셨나요? 파컷 이야기는 어렴풋이 알던 이야기였는 이 글 보고 명확히 알게 되었네요. ^^ 존글 감사합니다. -
DDINKIssTyle
→ AlexYoda 작성자
01.12 · 14.♡.7.140
재미있는 이야기는 제미나이가 썼습니다. 대략 제가 아는 것과 맞는지만 확인했어요.
퀵타임 소송이나 이런건 뜨거웠던 당시 핫이슈였고...
IE 개발 멈춘것과, 프리미어 단종되었던건 당시 겪으면서 ㅅㅂㅅㅂ 했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죠 ㄷㄷ -
AAlexYoda
→ DINKIssTyle
01.12 · 125.♡.79.28
제미나이가 썼다해도.. 아시니까 감수도 하셨겄죠. ㅋㅋㅋ -
Aaicasse
01.13 · 97.♡.178.206
이때쯤 애플은, 간당간당 죽을락 말락 하다가 살아나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했지요.
잡스가 대단한 전략가이긴 했습니다. - R
ryukesh
01.13 · 112.♡.61.107
오랜만에 옛 기억을 호출 하게 해주셨네요. 매크로미디어 파이널 컷 아는 사람 정말 못 봤습니다. ㅎㅎㅎ
사파리도 OS X 10.2 제규어에서 0.8부터인가 쓰다가 10.3 펜서부터 정식버전으로 들어왔던 걸로 기억하네요.
퀵타임 소송전은 그래도 꽤 알려졌던 사건이었는데 저렇게 연결된 거 였군요. 이건 처음 알았습니다.
안그래도 검찰개혁 때문에 심난했었는데 덕분에 옛 추억이 떠올라 좀 나아졌네요 ㅎㅎ - 푸
푸른미르
01.13 · 14.♡.186.98
당시 맥에 비해 PC에서 동영상을 보는 건 정말 쉬운일이 아니었죠
그 덕에 많은 코덱들과 동영상 플레이어들이 난립 했죠
반가운 이야기들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달
달려라쑈바
01.13 · 222.♡.155.187
로직하고 가라지밴드 이야기도 해주세영 ???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ㅎㅎ -
아아재맛캔디
01.13 · 14.♡.102.189
하지만 Shake는 ㅠ ㅠ -
DDINKIssTyle
→ 아재맛캔디 작성자
01.13 · 14.♡.7.140
ㄷㄷ 잊고 있던 쉐이크 반갑네요.
로봇이 옥상에서 춤추던거였나..프로모션 영상이 기억 저 멀리 보입니다.
이게 영상편집 프로그램이 맞아? 싶던 첫인상...
수년뒤에 누크에서 보니깐 쉐이크가 떨올랐던 기억입니다. ㅋㅋㅋ
쉐이크가 엄청 비싼 프로그램이었다고 들었는데 그냥 번들로 뿌린 애플 ... - K
kabaneri
01.13 · 116.♡.221.135
매크로미디어하니 드림위버 생각나네요 ㅎㅎ
이런 대단한 프로그램이! 했었는데 말이죠 ㅎ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