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다닌 직장을 나오며
모노마토

Lv.1 모노마토 (211.♡.12.162)

2026년 7월 9일 PM 03:54

조회 5,155 공감 0

2009년 아이폰 3Gs가 한국에 출시된 날 입사하여 이번달 말로 퇴사를 합니다.

서른하나,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던 뜨거운 나이에 한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밤새워 모니터를 지켰고, 제 손끝에서 탄생한 디자인들이 세상에 나올 때마다
내 자식처럼 뿌듯했습니다. 그렇게 청춘을 다 바치다 보니 어느새 제 나이가 마흔여덟이 되었네요.

제 잘못이 아니라,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져서 이제 그만 정리해야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를 내보내야 하는 임원분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미안해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제 마음도 참 미어지더군요. 원망이라도 시원하게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가슴속에 남은 미련과 씁쓸함이 더 질기게 달라붙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권고사직 이야기를 듣고 터덜터덜 퇴근하던 날이었습니다.
멍하니 운전대를 잡고 가는데, 차 안 오디오에서 씨야의 'I Believe'가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나를 놓지 않아 끝까지 날 안아 흔들린 모든 순간도 나를 더 빛나게 해

갑자기 가사 한 글자, 한 글자가 전부 제 이야기처럼 가슴에 쿡쿡 박히기 시작하더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어서 차를 길가 한쪽에 급하게 세워두고,
운전대에 고개를 묻은 채 한참을 꺼이꺼이 오열했습니다.

17년이라는 세월이 한순간에 부정당한 것 같은 서러움,
그리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니,
노랫말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저를 다독여주는 위로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다시 이력서를 넣어보려 해도, 냉정한 시장은 저 같은 나이 많은 관리자급 디자이너를 반기지 않네요.
실무를 뛰기엔 나이가 걸리고, 관리자로 가기엔 자리가 없습니다.

요즘은 크몽 같은 프리랜서 플랫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볼까,
독립을 해야 할까, 대형면허라도 따서 버스기사가 되어볼까 매일 밤샘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생 절반 가까이 보낸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 한순간에 지워진 것만 같아 두렵고,
앞으로의 생계도 막막하기만 합니다.

제 인생의 전부였던 디자인을 계속 붙잡고 가도 되는 걸까요?

그날 차 안에서 눈물 흘리며 들었던 노래 가사처럼,
저도 이 어둠을 걷어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너무나 많은 분들의 댓글에 엄청난 위로와 힘이 되고 있습니다. 한분 한분 대댓글을 달아야 함에 마땅하나.

글 수정을 통해 글 말미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힘내볼게요! 사랑합니다.

댓글 (114)

  • nik0nek0

    nik0nek0 Lv.1

    07.09 · 106.♡.197.132

    파이팅입니다!

  • 페퍼로니피자

    페퍼로니피자 Lv.1

    07.09 · 211.♡.152.45

    토닥토닥

  • 셀라비

    셀라비 Lv.1

    07.09 · 61.♡.40.20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다보니 직업적인 고민도 끊임없이 계속되는것 같아요. 늘 건승하시길 응원합니다~~~

  • 금도리

    금도리 Lv.1

    07.09 · 116.♡.110.44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절대 놓치지 않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현실과 타협을 하시되, 좌절하는 상황은 아니길 바라겠습니다.

  • 그리즈만

    그리즈만 Lv.1

    07.09 · 211.♡.14.193

    좋은 기회가 곧 올 것이라 믿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화이팅입니다.

  • 애앨리

    애앨리 Lv.1

    07.09 · 27.♡.140.163

    이 또한 지나 갑니다. 그리고 앞으로 맞이 하시게 될겁니다.

  • 수현

    수현 Lv.1

    07.09 · 211.♡.201.124

    그동안 고생하셨어요.ㅜ 마음 추스리시고 다시 좋은 기회가 오길 바랍니다!

  • 2방in

    2방in Lv.1

    07.09 · 117.♡.9.180

    같이 힘냅시다.

    한 곳에 17년을 다닌다는게 제겐 대단하게 여겨지네요.

    잘 될 겁니다. 아자자!!!

  • 오마르왕자

    오마르왕자 Lv.1

    07.09 · 106.♡.70.173

    쉽지 않겠지만 이미 어려운 길을 걸어보셨기 때문에 더욱 미래가 불투명하게 다가오는것에 대한 두려움..저도 공감이 됩니다.

    노력하시다 보면 또 다른 길을 찾으실수 있을거라 바라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브릿매력남

    브릿매력남 Lv.1

    07.09 · 220.♡.97.159

    저도 비슷한 나이이기도 하고, 회사가 오늘내일 하는 마당에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군요.

    참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긴 한데요. 어떻게든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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