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냥이집사 (211.♡.200.208)
2026년 7월 24일 AM 06:49 · 수정 3회(07:08)
이재명 정부를 말할 때 ‘실용’이라는 말을 참 자주 꺼냅니다.
이념보다 민생, 명분보다 성과, 진영보다 쓸모를 보겠다는 거죠. 얼핏 들으면 맞는 말입니다. 정치가 국민 삶을 나아지게 해야 한다는 데 누가 반대하겠어요.
문제는 철학 없는 실용입니다.
누구 편에 설 건지, 권력을 어디에 쓸 건지,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넘지 않을 선은 어디인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현실에 맞는 길을 찾는 게 실용이죠.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속도만 내다보면 어느 순간 엉뚱한 곳에 와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같이 출발한 사람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져서, 심지어 모여서 욕하는 사람들도 생기구요, 지금처럼.
원칙이 빠진 실용은 실용도 아닙니다. 그때그때 부담이 덜하고 반응이 좋은 쪽을 고르는 임기응변, 편의주의에 가깝죠. 잘되면 세상 유연한 정치가 되고, 틀리면 쿨하게 유턴하면 그만인 세상 편리한 정치입니다.
제가 이재명을 철학 부재와 잔기술의 결정체라고 보는 이유도 이겁니다.
논점을 금세 파악하고, 숫자를 집어내고, 상대의 허점을 찌르고, 그 자리에서 그럴듯한 답을 만들어냅니다. 개별 장면만 보면 유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정은 잘 찍힌 스틸컷 몇 장이 아니잖아요. 시간이 지나도 한 방향으로 쌓여야 합니다. 어제의 판단과 오늘의 판단을 묶어주는 일관된 나름의 기준이 없으면, 하나하나는 그럴듯해도 전체를 놓고 보면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완성본 보면 망작이 되는거에요.
부동산 얘기가 나오면 세제와 대출과 공급을 다 펼쳐놓고 대통령이 직접 정답 찾기에 나섭니다. 검찰개혁에서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오랜 약속보다 당장의 반발과 이해관계를 먼저 계산하는 듯한 모습이 반복됐습니다. 인사에서는 민주정부가 지켜온 경계가 ‘통합’이라는 말 한마디로 흐려집니다.
물론 사안마다 설명은 다 붙죠.
부동산은 현실 탓, 검찰개혁은 부작용 탓, 인사는 외연 타령. 각각의 사정이야 왜 없겠어요.
뭘 하겠다는 말은 많은데, 뭘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은 없습니다. 성장과 통합과 개혁이 서로 부딪힐 때 무엇을 먼저 지킬지도 알 수 없고요.
그 빈자리를 ‘실용’이 채웁니다.
왼쪽으로 가도 실용이고 오른쪽으로 가도 실용입니다. 어제 한 약속을 지켜도 실용이고 오늘 뒤집어도 실용입니다. 잘되면 실용적인 판단이었고, 잘못되면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선택이었다고 하면 됩니다.
이쯤 되면 실용은 기준이라기보다, 무슨 선택을 하든 나중에 정당화해주는 면책 사유에 가깝습니다.
정치가 늘 원칙대로만 갈 수 없다는 건 압니다. 때로는 타협할 수 있고, 정책도 현실에 맞게 고칠 수 있죠.
그런데 바꿀 때도 무엇을 지키기 위해 바꾸는지는 분명해야 합니다. 방법은 달라질 수 있어도 목표와 넘지 않을 선까지 매번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재명의 정치는 바로 그 선을 확인해야 할 중요한 순간, 클라이막스 비슷한 장면에서 티미해지거나, 사라져요.
검찰개혁 같은 문제가 생기면 쌀로 밥 짓는 소리만 하고 주변 사람들을 앞세웁니다. 본인은 어디로 갔는지 잘 보이지도 않고요.
그러면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대신 영화 ‘호프’도 아니고, 해석투쟁에 나섭니다. 필요하면 희생양도 만들어 단두대에 세우고요. 이번 선택에는 어떤 깊은 뜻이 있는지, 지난번과 말이 달라졌는데도 왜 결국 큰 그림인지 대신 찾아내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해석본으로 공론장을 채우느라 정작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못 본척, 아닌 척 합니다.
원칙이 분명한 정치라면 애초에 해석본이 필요 없죠.
결국 실용은 방향을 대신해주지 못합니다. 운전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목적지가 없으면 빨리 갈수록 더 멀리 잘못 갈 뿐입니다.
개혁도 하고 싶고, 성장도 이루고 싶고, 눈에 보이는 성과도 만들고 싶겠죠. 그러고 싶지 않은 대통령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정부의 실용 타령이 꼴 보기 싫습니다.
가치와 철학을 걷어낸 먹사니즘. 우리가 그렇게 비아냥거리던 MB 시절 ‘부자 되세요’의 2026년판과 뭐가 다른가요?
댓글 (11)
- 굿
굿모닝빵빵
06:52 · 39.♡.28.113
- 똥
똥냥이집사
→ 굿모닝빵빵 작성자
06:54 · 211.♡.200.108
강훈식이 이재명 순방기간에 말한 극중주의도 결합되서, 지키려는 선이 없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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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마긔
→ 똥냥이집사
07:11 · 58.♡.103.74
극중주의는 예전에 안철수가 내세웠던 말이죠🙄
- 똥
똥냥이집사
→ 까마긔 작성자
07:14 · 211.♡.200.76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3의 길을 전 극중주의로 읽었어요 ㄷ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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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마긔
07:15 · 58.♡.103.74 · 수정됨 · 07:28
지도자는 본인이 일선에서 뛰거나 하나 하나 짚어주는 사람이 아닌,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원칙이라는 기둥이 없다보니까 더 갈피를 못 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본문을 읽고 나니까 그동안 느꼈던 생각이 더 분명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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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emosemo
07:16 · 121.♡.194.78
그냥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필요할 때 '실용'이라는 말을 가져다 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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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늘걷기
07:20 · 218.♡.142.31
말씀대로입니다.
그래서 이 정부는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정부가 예측 가능해야 안정성이 느껴질 텐데 그렇지 않으니 불안합니다.
요새 비판하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이전부터 느끼던 걸 이제야 말하기 시작한 겁니다.
예측이 안되니 대통령의 입만 보고 있게 된 겁니다.
우리만 그러는 게 아니라 부처의 공무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정부가 너무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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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hocares
07:20 · 58.♡.171.77
구구절절 동감합니다. (용어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보안수사권을 주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고집도, 일관된 철학 없이 너무 많은 것들을 고려하다가 생긴 게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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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르베
07:22 · 115.♡.151.169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제가 하고싶었지만 구체화 하지 못한걸
너무 잘 읽히게 써주셔서 술술 읽었어요.
마음이 가라앉고 서늘해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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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른아침에
07:24 · 118.♡.88.169
전 국힘쪽 인사 쓰는거 상관 없다고 보는데 데려온 인간들 면면이 일 보다는 욕 잘하는 인간들이라 문제죠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그 실용으로 뭔가를 한 게 있나요? 실용이 상대의 비판을 뭉게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