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coffee (176.♡.99.34)
2024년 5월 25일 PM 08:18 · 수정됨(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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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는 이렇습니다.
왜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하면 제가 신실한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뚜렸한 목적이 있는것도 아닌, 그냥 걷고 싶어 했다가 우연한 기회로 걸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코스 자체는 여느 분들과 똑같고 일정은 6일 걸렸습니다.
첫날은 Sarria에서 Portomarin까지 걸었습니다. 아침 10시 쯤 시작해서 오후 5시쯤 까지 걸었던 것 같습니다.
일정의 대부분을 보통 시작하는 것 보다 늦게 시작해서 일반적으로 걸으시는 것보다 느리게 걸었습니다. 한번도 신체적으로 나이드는 것에 대해 인식을 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을 계기로 절실히 깨닫게 되었네요.
택시 기사분이 내려 주신 시작 점에 등산용품 등을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들어가서 순례자 여권을 구입합니다. 뭔가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고, 되도록이면 완주하자는 마음때문이랄까요… 그리고 이때 스틱을 사는걸 깜빡했죠.
처음에 완만한 오르막으로 시작합니다. 양 옆으로는 식당과 알베르게가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 어딘가에서 1박을 하고 진작에 출발했어야 하는데…하며 뚜렸한 계획없이 마음이 약간 급해집니다.
오기전에 읽었던 블로그 등에선 아침6시나 7시에 출발하고 오후2시쯤에 도착하라고 되어 있었거든요.
올라가다가 Sarria글자가 놓인 포인트를 지나면 조그만 다리를 건너 산길 시작입니다. 전날 비가온 관계로 진창이네요. 평지를 잠깐 걷다 오르막입니다.
평소의 운동 부족을 심장이 터지도록 느낍니다. 저처럼 느지막히 출발한 사람들이 저를 앞서 갑니다. 스마트워치로 심박수를 보니 170회 정도네요. 잠시 서서 쉽니다. 첫날엔 심박수 150회 정도 넘가가니 많이 힘들더군요. 되도록이면 페이스를 심박수 기분으로 150회 미만으로 맞추려고 하고 170회가 넘어가면 무조건 서서 쉬었습니다. 산길, 흙길들이 다 진창이 되어 발이 빠지거나 찐득한 느낌…
간혹 제가 앞서가게 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블로그에서 읽었던 것처럼 서로가 인사를 나누는 일이 많지가 않습니다. ‘부엔 까미노’는 커녕 ‘헬로’도 가끔만 하게 됩니다.
우연히 만난 플로리다에서 온 할머니와 잠시 보조를 맞추며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할머니는 뒤로 남으시고 계속 걸어갑니다. 오르막을 오르면 평지가 나오고 조그만 마을이 나옵니다. 비는 계속 내렸다 멈췄다 하는데 점퍼를 입으면 덥고 벗으면 체온을 빼았겨 추위를 느끼는 게 반복되어 그냥 더워도 계속 입고 가기로 결정합니다. 한 한시간쯤 걸었나 카페가 하나 나오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말하는지 몰라서 간신히 오렌지 주스 하나 주문해서 단숨에 마시고 계속 걸어갑니다. 한시간쯤 더 걸으니 카페가 나와 비로소 앉아서 쉬게 됩니다. 카페 안은 주로 연세 많으신 분들인데 특이하게 중국인 커플이 한 커플이 있습니다. 첫날은 이 중국인 커플을 계속 마주쳤는데 둘째날 부터는 보지 못한 것 같네요.
다시 비를 맞으며 걸어가기를 두시간 정도-저는 천천히 걸어서 블로그나 유튜브에 나오는 예상시간보다 좀 더 걸립니다-식당 겸 알베르게에 도착해 순례자 메뉴를 주문합니다. 이때 먹은 스푸가 일정을 통틀어 제일 맛있었는데 메뉴에는 전통 스푸라고 되어 있었지만 치킨누들수프 같은 맛이었습니다.
걷다 보면 찻길이 아닌 자전거용 포장도로를 종종 지나칩니다. 순례길은 자전거로도 갈 수 있는데 자전거로 순례자 인증서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는 200km라고 하더군요. 육칠십대 되어 보이는 어르신들이 자전거를 타고 댄싱도 하지 않으면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걸 보고 감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기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더군요.
중간중간 갈림길이 꽤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을 따라 가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 해 보기도 하면서 계속 걷습니다. 포르토마린을 거의 다와서 사람들 안가보는 갈림길로 가보자고 한 길을 선택했는데 이 길이 집들과 공장 사이의 좁은 진창길이라 스스로에게 욕을 하며 빠져나왔습니다.
포르토마린에 가기 위해선 마지막에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다리에서 보이는 경치는 꽤 아름답고 첫 날의 일정이 끝났다는 뿌듯함으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다리를 건너갑니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자 마자 계단이나 오르막을 올라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날 걸었던 오르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마음이 풀려서 그런지 더 힘들더군요. 계단을 올라와 처음보이는 알베르게에 들어갑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침대를 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예약을 하려고 하니 빈 침대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와서 부킹닷컴을 켜고 아무데나 검색해서 들어갑니다. 너무 피곤해서 일단 짐을 풀고 싶었는데 잠은 알베르게에서 자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 날이 알베르게에서 잔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저도 코를 심하게 골고, 제가 깨어 있을 때 주변에서 움직이고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자기가 쉽지 않고 화장실과 샤워장을 차례를 기다리고 하는게 왜 그래야 하나 싶더라구요. 그래서 나머지 날들은 가능하면 저렴한 호텔들을 잡아서 숙박을 했습니다. 제일 비싼 호텔이 80유로 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일단 짐을 풀고 동전을 교환한 뒤 입었던 옷을 세탁하고 마트에 가서 다음날 걸을 때 마실 음료와 간식거리를 사는데 어떤 어르신이 말을 거시더군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같이 장을 보고 왔는데 갑자기 제가 있는 알베르게에서 저녁을 해 드시고 싶다고 하더군요. 뭐 좀 쎄 했지만 시간도 일곱시 정도인지라 뭐 그러자고 했죠. 본인이 사 온 것들로 저녁을 만드는데 제 취향이 아니기도 하고 뭐 저보고 같이 먹자고도 하지 않아서 본인만 드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프랑스 출신이고 은퇴후 본인의 프랑스 집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벌써 한 1400km을 걸었다고 했습니다. 그 외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 어르신이 저를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결국 저녁9시쯤 이제 자러 가야겠다고 이야기 하고 겨우 헤어진 후 알베르게 식당에서 순례자메뉴로 저녁식사를 하고 침대로 갔습니다.
제 침대 주변은 다 여성분들이었는데 겉옷은 뭐 그냥 갈아입으시더군요. 계속 움직이는 소리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서 이어폰을 끼고 잠을 잤습니다. 몸이 그렇게 피곤했는데, 자꾸 자다 깨다 하게 되더군요.








댓글 (3)
- D
Drcoffee
작성자
24.05.25 · 176.♡.99.34
크리안 님 덕분에 임시저장 파일을 찾았네요. -
Bblueship
24.05.25 · 180.♡.248.31
글 잘 보았습니다. 덕분에 순례길 걷는 느낌을 잠시나마 상상할 수 있었네요. ^^ -
라라움큐빅
24.05.25 · 218.♡.164.150
글을 읽는 동안, 그 길을 생각하며 저도 함께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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