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품] 대한제국의 파리 엑스포 참가 삽화를 담은 124년 전 신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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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모앙으로 이사온지는 꽤 됐었는데 그동안 글을 하나도 안쓴 것 같아서 게시판 글 갯수를 하나 늘리고자 써봅니다.
사실 예전에 클X앙에도 썼던 글이고 개인 블로그에도 올렸던 글인데 중복인 점은 용서해주세요... 그럴리 없겠지만 혹시나 블로그에서 똑같은 글을 본 적 있다!하면 그게 바로 제 블로그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물품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수집품 중 하나를 소개해드릴 겸 자랑도 할겸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한 대한제국 전시관의 모습을 담은 신문, 르 프티 주르날입니다. 운 좋게도 두 개를 구하게 되어 소유 중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24년전인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새로운 20세기의 첫 시작을 여는 만국박람회(엑스포)가 개최됐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성공적인 박람회를 개최하기 위해 많은 국가의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가난한 국가에는 박람회 위원으로 위촉된 자국 내 귀족들의 후원을 제공하면서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1897년 고종이 황제국을 선포하며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그 이듬해 6월에는 오늘날 법무부 차관격인 학부협판 민영찬을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준비를 총괄하는 박물사무부원에 임명합니다.
만국박람회를 2년 전부터 공들여 준비한 이유는 바로 새로운 대한제국의 존재를 국제 무대에 소개하고 그 위상을 알리기 위함이었죠.
당시 박람회 참여를 위해서는 전시관 건축비 10만 프랑 및 박람회 기간의 전시관 대지 임대 비용 54,000프랑 등 거액의 자금이 필요했고, 대한제국은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에 파리 박람회의 운영위원이었던 알퐁스 들로 글레옹 남작이 대한제국의 전시관 후원을 맡게 되면서 박람회 참가가 본격적으로 이뤄집니다.
글레옹 남작은 단순히 대한제국의 주요 상품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물포의 거리를 생생하게 재현하면서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주고 우리나라의 고유한 풍습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한제국 전시관의 공사가 시작될 무렵, 글레옹 남작이 급작스럽게 사망하게 됩니다. 이에 박람회의 또 다른 운영위원이자, 귀족이었던 오귀스트 미므렐 백작이 대한제국관의 운영 및 후원을 맡게 되는데요.
미므렐 백작은 후원 비용을 줄이려고 당초 설계안을 축소하고 민속부문의 기획을 철회해버렸으며, 심지어 후원하는 댓가로 고종 황제에게 광산 채굴권을 얻어내는 등 영 마음에 들지않는 행보를 보입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대한제국의 참여가 확정됐고, 전시관의 설계는 베트남 호치민 오페라 하우스, 이탈리아 산레모 카지노 건물을 설계하기도 한 프랑스의 건축가 외젠 페레가 맡습니다. 페레는 대한제국관의 건축을 위해 경복궁 근정전을 축소한 버전으로 대한제국관을 설계합니다.
대한제국관이 완성되고 난 뒤, 내부 전시를 위한 물품 선정과 수송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대한제국 황실이 제공한 물품과 함께 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랑시를 비롯한 대한제국 주재 프랑스인들이 전시품을 제공했는데요.
이렇게 전시품을 채우기 위한 노력은 1899년 6월 3일 독립신문에 게재된 광고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년 법국(프랑스) 서울 파리 만국 박람회에 기이하고 희귀하고 좋은 각종 물품을 친히 가지고 가서 팔려 하는 장사 사람이나, 혹 물건 임자가 물건 값을 정하여 보내려 하는 대한 첨군자는 양력 유(六)월 팔(八)일 내로 매일 오전 일곱 시부터 여덟 시 안에 진고개 나동 파성관으로 왕림하여 상의하심을 바라옵나이다 - 법국(프랑스) 사람 트레물레'
참고로 이 광고를 게재한 사람은 대한제국관 최초 후원자였던 글레옹 남작의 수행원이었으면서, 그 자신도 파리 만국박람회 대한제국 보조위원이었던 알퐁스 트레물레였습니다.
그는 광산 기술자 출신으로 1899년 5월 서울에서 대한제국관 전시품을 구입하고, 파리 현지에서의 물품 판매와 작업 과정을 시연할 우리나라 사람을 선발하는 보조위원 업무를 맡았는데요. 이후 대한제국에서 광산 인력양성을 목표로 설립한 광무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전시관 이야기로 돌아와서, 당시 파리 만국박람회 대한제국관에서 공개된 전시품은 불경과 대장경, 도자기, 금은세공품, 나전칠기 등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물품들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투구와 갑옷, 활과 화살통, 칼 등 각종 무장품도 함께 진열됐다고 합니다.
우선 우측에는 가마인 남여(籃與)를 타고 종이 우산을 쓴채 외출하는 조선시대 양반의 모습을 재현한 인물상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인물상 바로 왼쪽으로 보이는 스탠드 형태로 진열되어 있는 사진들은 당시 대한제국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일하던 샤를 알레베크가 찍은 사진들입니다.
알레베크 역시 파리 만국박람회 대한제국 위원으로 활동한 인물인데요. 우리나라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총 48종의 사진엽서를 제작하고 박람회 공식 기념품으로 판매했습니다. 이 사진엽서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판매됐던 사진 기념품이라는 타이틀도 얻게되죠.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전시된 물품 가운데 단연 중요한 물품은 바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물인 직지였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옆길로 새자면, 직지는 대한제국 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하고 파리 박람회에도 출품하면서 전세계에 처음 소개됐습니다.
플랑시는 직지의 마지막 부분에 적힌 ‘선광7년 정사7월 일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인시(宣光七年丁巳七月日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 1377년 7월 청주목 교외에 있는 흥덕사에서 주조된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라는 의미)’의 내용을 요약하고는 표지에 필기체로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책, 연도 = 1377년’으로 표기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동양의 작고 힘없는 나라에서 온 오래된 책은 그다지 관심받지 못했고, 심지어 금속활자 최초 인쇄본이라는 업적도 서양의 구텐베르크의 명성을 무너뜨리는 것이기에 무시되고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직지는 이후 1911년 3월 파리의 경매장에서 골동품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에게 고작 180프랑이라는 헐값에 팔렸고, 1950년 베베르가 사망하면서 유언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하여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유로 보관되고 있습니다.
다시 파리 만국박람회 이야기로 돌아와서, 1900년 프랑스 주간지 르 프티 주르날은 각국의 전시관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를 회차별로 발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12월 16일, 각국의 전시관을 소개하는 마지막 기사에 대한제국 전시관의 삽화와 내용을 담고 발행합니다.
당시 기사를 통해 ‘가장 폐쇄적인 극동의 나라이자, 이웃나라들이 탐내하는 국가’로 대한제국을 소개하면서,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을 토대로 설계된 전시관의 모습을 아름다운 삽화로도 생생히 담아냈습니다.
1900년도 태극기의 모습을 우측 상단에 그려놓았습니다. 태극의 방향 대비 괘를 잘못 그려놓은 모습이 보이네요.
삽화 우측 하단에는 한복을 입고 정자관과 안경을 쓴 남성과 흑립을 쓰고 곰방대를 문 남성 옆으로는 아마도 청나라 복장을 입은 한 사람이 서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한제국관이 어떤지 구경이라도 온 것인지, 아니면 1897년 칭제건원을 하며 새로운 제국으로 선포한 대한제국에 대한 관심 또는 감시의 눈초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중앙에는 조선시대 때 부녀자들이 쓰던 방한모인 아얌 또는 액엄(額掩)이라고 불리는 모자를 쓴 여성이 눈에 띄네요. 두꺼운 옷을 입고는 한 손을 옷깃 안에 척 넣은 모습이 모델 뺨치는 포스를 자랑합니다.
그 뒤로는 푸른색 두루마기를 입고 긴 담뱃대를 물고 종이 우산을 쓰고 가는 남성도 보이네요. 전시관을 방문한 다양한 인물 군상이 그려져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을 토대로 외젠 페레가 설계한 대한제국관의 모습도 큼지막히 보입니다. 실제 모습을 찍은 사진과 비교해보면 아래쪽 석조단이 좀 더 과장되게 그려졌네요.
잉어 모양의 깃발은 원래 일본에서 남자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라는 의미로 다는 코이노보리(鯉のぼり)의 모습인데요. 당시 대한제국의 풍습으로도 전래된건지, 혹은 삽화가가 당시 유럽에 유행하던 우키요에 등 자포니즘에 대한 얕은 지식으로 우리나라 전시관 모습에도 그려넣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삽화 하단에는 1900년 박람회의 대한제국 전시관임을 알리는 문구가 써있는데요. 이후 10년 뒤 국권피탈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대한제국이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국제행사로 기록됩니다.
지금으로부터 123년전 머나먼 파리에서 열린 대한제국의 발자취를 잠깐 살펴봤습니다. 한번쯤 1900년도의 파리 만국박람회 그 시절, 대한제국 전시관의 풍경이 보고 싶어집니다. 이상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욘니멋쟁이님의 댓글
얼마 전에 읽은 '올드코리아'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이 글을 흥미롭게 보신 분들께 자신있게 추천드립니다^^b
torchwood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