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릿 키보드 만들기_01. - 이전글이 어디갔지? 아 구도심에... 그럼 다시 처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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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miseryrunsfast입니다.
키보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스플릿, 어고노믹, 콘케이브. 트랙볼 정도가 키워드겠습니다.
이전 구도심에서 글을 몇 개 쓰던 것이 있습니다만, 그 동안 본업이 바쁘기도 했고, 회사의 토이 프로젝트이자 개인 프로젝트라 늘 뒤로 밀려있던 작업입니다. 그래도, 취미이자 심심함 타파의 - 특히 탄핵국면에서 일상성을 유지하는 데 꽤 도움이 된 - 프로젝트라, 쉬지 않고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마지막으로 올린 지 거의 1년이 되어가네요.
어쨌든, 구도심에서는 더 이상 이어갈 생각이 없기도 하고, (한 때는 참...) 어짜피 그 동안 바뀌고 정리된 게 너무 많은지라, 새로 연재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최종적으로는 상품화까지 갈 물건인지라 앙 키보드가 되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있기도 하고요.
오늘 이야기는, 스플릿 키보드에 대한 형상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 한 번에 끝낼 것은 아니긴 하고, 아직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정리하는 것이 최종은 아닐 것입니다. (최종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이 버전 정착하기 전에 그린 키보드 수가 다 합하면 60개가 넘습니다)
현재 버전은 제 나름의 버전으로는 0.12.04입니다. 우선 이미지 보고 가시지요.
본체의 좌측입니다. 똑같이 생긴 우측이 있습니다. 우측은 좌측에서 수정을 좀 보고 뽑아볼 예정이라 아직 없습니다. 키캡은 키크론의 키캡으로, 체리 프로파일입니다. 설계 자체는 체리 프로파일을 가정하고 만든 것은 아닙니다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게 되겠지요. 스플릿 키보드들이 자체 키캡을 사용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겠네... 싶은데, 가능하면 어떤 키캡으로도 우선 사용이 가능하도록 개발하는 것을 원칙으로 두고 있기는 합니다.
아직 개발중인 - 3D 프린터도 튜닝이 진행중이라 인쇄 상태가 꺠끗하지 않은 점은 감안해주세요 - 버전입니다만, 사이즈를 확인하시기 용이하도록 A4 위에 올려놓고 찍었습니다.
엄지열에 키를 넣은 버전입니다. 엄지열 디자인도 계속 수정중이네요. 키들은 되는대로 꽂았습니다만, 엄지열은 2열 6키, 또는 2열 5키를 생각중입니다. 엄지열은 각 4U가 수용 가능한데, 1.5U-1U-1.5U 또는 1.25U X 3이 가능합니다. 엄지열 모듈은 40mm X 80m로 통일하고, 좌우 모두 결착 가능하며, 결착 방식은 USB-C로,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나중에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상 상태가 엉망인 건 넘어가도록 합시다.
엄지열에 트랙볼 34mm + 4방향 십자키를 넣은 버전입니다. 십자키는 효용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변경할 것 같은데, 트랙볼 센서 때문에 옆에 2U X 2U를 넣을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트랙볼의 높이도 문제가 됩니다. 현재 설계는 수정을 해 놓은 상태이지만, 아무래도 더 낮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책상 상태가 엉망인 건 넘어가도록 합시다.
여기까지 우선 보여드리고, 우선 디자인의 큐랄까, 이렇게 디자인이 만들어진 의도를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이게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다 이야기하면 엄청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한 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손의 움직임에 대한 해석의 문제
- 뉴트럴 상태에서의 손 위치를 기준으로 하는 키보드가 왜 없지?
- 콘케이브가 아니면 정말 도움이 되지는 않는구나.
- 엄지손가락의 기능성에 대한 일종의 신화가 만들어져 있구나.
- 손목과 손등의 움직임, 손가락의 움직임을 해석하는 방향들에 따라 키보드가 달라지는구나.
2. 실제 용도에서의 조작성의 문제
- 마우스를 별도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기본적인 작업 (문서 작업 수준의) 는 가능해야 하는구나.
- 키를 어디까지 줄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가? 34key, 56key는 정말 쓸만한 수준인가? 누구에게?
- 텐트(각도를 높여서 손을 수평에 가깝게 타이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은 어디까지가 편의성에 도움이 되나?
3. 키보드 시장의 변화에 대한 적용의 문제
- 사용자가 직접 손을 댈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구나.
- 현재의 키보드 시장에 대응하는 스플릿 키보드가 있나?
- 그런데도 정말 비싸구나. 그런데 그렇게 비쌀 만한 이유가 있나?
- 어느 정도까지의 기능을 포함해야 할 것인가?
이 이야기들이 현재 만들고 있는 키보드에 대한 기본적인 고민들입니니다. 물론 공부를 하고, 설계를 해 나가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비싼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이런 건 이럴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지점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부분에서 최대한 편의성에 중점을 두고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정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오늘은 손의 움직입에 대한 이야기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다음 글은 아마도 오른쪽을 수정해서 뽑아보고, 그 뒤에 수정된 내용을 기반으로 정리해볼게요.
1. 손의 움직임에 대한 해석의 문제 - 01. 뉴트럴 상태에서의 손 위치를 기준으로 하는 키보드가 왜 없지?
예쁜 손은 절대 아닙니다만, 제 손 사진입니다. 손가락은 두껍고 짧고, 손바닥은 길고 두꺼운, 전형적인 못난 손입니다. 이것도 그냥 넘어갑시다. (앞으로도 넘어갈 게 많을 겁니다. 미리 양해를 구해둡니다)
이 사진에서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뉴트럴 - 그러니까, 손에 힘을 전혀 주지 않은 상태에서 손가락의 위치들입니다. 손바닥을 평면으로 볼 때, 손가락은 엄지를 기준으로 검지만 위로, 나머지 손가락은 더 아래에 위치합니다. 한 번 팔에 힘을 모두 빼고, 늘어뜨린 상태에서 팔꿈치만을 올려 손을 보시면, 아마 이 사진과 비슷하실 겁니다.
기본적으로 콘케이브 키보드가 손에 편하려면, 이 위치를 근간으로 QWERTY 기준 ASDF열이 배열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F열을 기준값으로 손을 위치시키는 것이 익숙하고, F열을 포함하여 그 안쪽 G열, 그리고 그 안쪽에 만약 키가 더 있다면 거기까지를 모두 검지로 타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타이핑하는 분들도 계시긴 하더군요) 그러므로 F, G열은 F열에서 손을 이동하기 편하게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에 비해 중지는 그다지 넒은 영역을 커버하지 않습니다. C열, 그리고 숫자키 2, 습관에 따라 W 키 정도까지를 커버하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보입니다. 새끼손가락 또한 생각보다 넓은 영역을 커버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ESC키나 숫자키 1을 새끼손가락으로 누르는 분은 별로 못 봤네요. 그 결과, 약지가 생각보다 넓은 영역을 커버하게 되고, 그만큼 손목을 몸 바깥쪽 - 그러니까, 왼손은 왼쪽으로, 오른손은 오른손으로 - 꺾는 일이 많습니다. 이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디자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결론을 내려놓고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런 설계 원칙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잘 적용이 안 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더 자세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비싸집니다. 공정이 복잡해지거든요.
1. 손의 움직임에 대한 해석의 문제- 02. 콘케이브가 아니면 정말 도움이 되지는 않는구나.
콘케이브가 아닌 스플릿 키보드들은 꽤 저렴한 가격 - 그래도 비싸지만 - 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저도 몇 개의 스플릿 키보드들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이 콘케이브가 아닌 평평한 스플릿 키보드들입니다. UHK, IRIS, LILY, 지금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EGORDOX 복제품 등등을 써 보면서 느낀 것은, 콘케이브랑 차이가 심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루에 수십 페이지의 원고를 쓸 때 이 차이는 극대화됩니다.
지금 키보드의 콘케이브 각도입니다. 현재 CHERRY 키캡이 끼워져있기 떄문에, 각 키 사이에 높이차가 있고, 이는 타이핑에 문제가 됩니다. 간섭은 없지만요. (기본적으로 불편하더라도 모든 종류의 키캡을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콘케이브 키캡에는 DSA 키캡과 같은 플랫한 키캡을 끼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설계에서도 생각해 볼 수는 있지만, 실제 끼워보지 않으면 감각적으로 알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러니까 출력해서 써보는 거죠.
여기에서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가능하다면 각 손가락의 길이 차이에 따라 모든 각도를 조절하면 좋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제조 가격을 극단적으로 올리게 됩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사람의 손가락 길이를 모두 적용하여 각도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러면 지금 비싸다는 스플릿 키보드 가격을 우습게 상회하는 가격이 나오게 될 겁니다.
이런 6열 디자인의 한계는, 손가락의 길이가 이만큼 길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새끼손가락이 12cm이 되는 분은 아마 통계적으로 소수점 이하일 것입니다. 농구선수들이나 가능할까요. 농구공을 겨우 잡을 수 있는 - 잡고 움직이면 바로 떨어집니다 - 제 손 크기도 매우 큰 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현실적으로 손가락이 닿을 수 있는 거리는 다음과 같다고 봅니다. 아마도 보통은 이보다 더 짧을 거고요.
새끼-약지-중지-검지 순입니다. 이를 보면, 새끼손가락으로 눌러야 하는 키는 최소 55mm, 제일 긴 중지도 15mm는 이동해야 0열 (F열)을 누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6열 키보드라면 팔이 - 손목이 아니라, 상박이 움직여야 손이 앞으로 이동할 수 있으니까요 - 움직이지 않고 키를 누르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콘케이브가 이런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위 사진의 6열 콘케이브 키의 키캡 끝에서 끝까지의 거리는 110.05mm입니다. 만약 콘케이브가 아닌 평면이라면, 19X5+18이므로 113mm가 됩니다. 고작해야 3mm 줄이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한다고 생각하면, 하지 않는 쪽이 현명한 일이 됩니다.
하지만 손가락의 움직임이 관절을 중심으로 하는 원운동임을 고려하면 콘케이브의 이점은 명확합니다. 5열이나 6열의 키를 누르는 데 필요한 입력각도는 일반적인 평면의 키보드에서는 진입각이 30도가 되지 않고, 그 결과 손가락을 길게 뻗은 상태에서 힘을 더 주어야 눌리게 되는 대신, 콘케이브에서는 그 각도를 수직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바꿈으로서 손가락에 걸리는 힘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각속도 모먼트 뭐 이런 계산도 가능하긴 하겠습니다만, 손가락의 부담은 확실히 줄어듭니다. 당연히 손가락 관절에 걸리는 부담도 줄어들고요. 무엇보다 손 자체가 수직으로 이동하는 거리가 줄어들게 됩니다.
1. 손의 움직임에 대한 해석의 문제- 03. 엄지손가락의 기능성에 대한 일종의 신화가 만들어져 있구나.
엄지손가락은 다른 손가락에 비해 가동범위와 힘이 크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이즐 스파이비의 <맞서는 엄지>라는 책은 이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은 과학사나 생물학 이야기가 아닌 예술사 이야기입니다만, 그 근간에는 인간이 다른 유인원과 다른 가장 큰 특성이 엄지가 다른 네 손가락과 '맞서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다른 유인원에 비해 약한 근력에도 불구하고 구별되었고, 특히 이러한 기능적 특질들이 인간에게 존재했으므로 문화와 예술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책이니 추천드립니다. 저는 이 쪽이 전공인 사람이라 이 책의 내용에 모두 동의하기에는 어려운 지점도 있긴 하지만요.
어쨌든, 키보드 세계에서 엄지는 뭔가 신화적 존재입니다. 특히 스플릿 세계에서는, 기존의 키보드를 비판하는 (이게 그럴 일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지점이지요. 이렇게 힘이 세고, 가동성이 뛰어난 엄지가 고작 스페이스바 하나를 두들기는 일만 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입니다.
이 지적 자체는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엄지와 검지 정도가 실제로 더 세밀한 움직임을 하는 데 가장 특화된 손가락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나머지 손가락으로 타블렛이나 트랙볼 같은 입력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근력 자체도 엄지가 가장 뛰어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엄지는 얼마나 뛰어날까요?
엄지는 좌우로 움직이는 데 특화된 손가락입니다. 상하로 (그러니까 키를 누르는) 움직임에는 특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엄지로 스페이스바를 누를 때, 우리는 엄지를 움직이기보다 손목을 움직입니다. 그 덕분에 타격감(?)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만큼 손에 무리를 주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요.
엄지의 기능성의 핵심을 저는 엄지 자체보다는, 엄지에게 어떤 기능을 부여한 상태에서 다른 손가락들이 자유로이 움직이는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키보드에서 쓰게 되는 기능 키들 - 맥의 경우에는 Option, Command, 윈도우라면 Alt, Ctrl, 또는 공통적으로는 Shift, 키보드에 따라서는 FN 키 같은 경우들이 엄지가 조작하기에 가장 유용한 키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스플릿 키보드들이 이런 기준들을 따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엄지에 할당할 수 있는 키가 많으면 많을 수록 유용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는 다른 스플릿 키보드들도 이미 가지고 있는 특성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 절대다수의 - 스플릿 키보드들은 엄지를 최대한 벌리도록 요구하지요. Glove80, Advantage360과 같은 고급의 스플릿 키보드부터 저가 키보드까지 이런 특성들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SOFIE, LILY와 같은 작은 키보드들은 공간을 줄익 위해 엄지 키들을 QWERTY 기준으로 V, B 아래쪽으로 짧게 배치하는 경우가 있고, 이 키들은 엄지로 사용하기가 오히려 편합니다. 키 개수가 작은 게 문제일 따름이지요.
저는 이 키보드에서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엄지가 키를 누르는 동안 다른 키를 누르기 유용하게 - 특히 새끼손가락으로 기능 키를 누르고 다른 키를 눌러야하는 아크로바틱함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엄지손가락이 무리하게 밖으로 벌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최대한 많은 키를 배열하도록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가 이런 디자인입니다.
F키에 검지를 얹은 상태에서 엄지는 위의 세 키, 아래 세 키에 접근이 가능합니다. 물론 왼쪽 아래 키(사진에서는 Option 키) 는 상대적으로 누르기 어렵긴 하지만, 다른 스플릿 키보드들에 비해 키들의 접근은 아주 쉽습니다. 키의 높이들은 조절할 부분이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쓸 기능 중 하나인 Copy-Paste 기능 같은 경우는 엄지와 중지, 엄지와 검지로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트랙볼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왼쪽보다는 오른쪽이 편합니다. 엄지손가락이 덜 벌어진 상태이니까요. 엄지키 유닛은 양쪽 모두 체결이 가능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으므로, 손 크기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붙일 수 있고요. 이는 ULTIMATE HACKING KEYBOARD를 쓰면서 빡친 지점 - 왜 오른쪽에는 키 클러스터를 안 만들어 파는가 - 에 대한 결과이긴 합니다. 연결은 USB-C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별도의 케이블을 연결하여 별도의 모듈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 엄지 모듈에 대한 이야기도 나중에 따로 정리해보도록 하지요.
1. 손의 움직임에 대한 해석의 문제- 04. 손목과 손등의 움직임, 손가락의 움직임을 해석하는 방향들에 따라 키보드가 달라지는구나.
디자인을 어느정도 마무리하며 - 세부적으로 아직 할 일이 더 많습니다만 - 내린 결론은, 손의 움직임에 대한 해석의 방향에 따라 디자인이 극단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 디자인으로 결론이 난 지금까지 약 1년 반 이상을 디자인을 해 오고, 프린트해보고, 버리고를 반복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이렇게 길게 글을 쓰고, 그 안에서 제가 이 디자인을 결정한 이유들을 그럴듯하게 설명했다고 해도, 이 역시 정답이 아니라, 그저 답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몇 가지의 요소를 결정하면 그 댓가로 다른 부분을 포기해야 하고, 그만큼의 강점이 생기는 대신 그만큼의 약점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이 디자인을 Cherry MX 스위치를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물론 로우 프로파일 스위치를 사용하면 그만큼 이득이 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때, 키감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인 -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인인 - 스위치의 제약이 커집니다. 개인적으로도 CHOC 스위치나 로우 프로파일 스위치들의 키감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별로 없기도 합니다만, 2.5mm의 차이 정도는 포기하고 가는 대신, 그만큼의 이익, 또는 그 이상의 이익을 스위치를 선택하는 데서 얻을 수 있다고 결론내렸기 떄문이지요.
게다가, 오테뮤(영어로 썼더니 테무가 금지어군요) GTMX와 같은 로우 프로파일이지만 Cherry MX와 핀 위치가 같은 스위치들이 드디어!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도 디자인을 시작하던 시점까지는 확정이 아니었습니다만 이제는 나오게 되었으니까,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갈수록 사라질거라 생각합니다. 요 이야기도 나중에 더 다룰 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디자인을 정리해 나가면서 생각하는 것은, 더 고려할 지점과 이 정도로 확정하고 정리할 지점을 나누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점입니다. 이 키보드는 제게는 일종의 '키보드 공부에 대한 최종 지점' 이라는 느낌이기 떄문에, 그리고 이 키보드를 공부하는 동안 새롭게 배우고 있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알게 된 것도 그전보다 많아졌고, 덕질도 이 정도면 완성 아닌가... 로 생각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 글 또한 제 키보드 덕질을 한 번 정리한다는 관점에서 이 키보드 작업을 돌아보고, 이를 정리하는 중간 과정으로서의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완성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도 예측은 불가능하고, 아직 고려중인 요소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키보드로 지그비 컨트롤을 할 수 있게 하려면 뭐가 더 필요한가 같은 지점들을 탐색중입니다. '키보드가 작업실의 컨트롤 센터가 되는 것보다 편한 방법이 있을까?' 같은 생각에서 시작하는 아이디어들이지요. '그런데 그런 컨트롤이 되려면 인터페이스가 더 필요한 거 아닌가?' - '그럼 액정 크기를 더 키워?' - '근데 그 기능을 넣는다고 해서 시장성이 있어?' 이런 생각들이 휘몰아칠 때, 그 생각을 어디애서 끊고 어디에서 이을까 같은 것이 지금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는 중이고, 당분간은 이런 즐거움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탄핵 과정까지 지난 3년 중 2년을 이 키보드와 키보드에 연관된 다른 것들을 고민하며 보냈고, 그 과정동안 덕분에 잘 버텨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모두가 그런, 마음을 잠깐 피해 둘, 시간을 나눌 것들이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과, 앞으로 쓸 글들이 제 나름의 회피기로서의 가치가 있었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준비 되는 대로 다음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miseryrunsfast님의 댓글의 댓글
말씀하신대로 스플릿 키보드의 위치 자체는 팔걸이 레벨까지 내려오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스플릿 키보드 쓰시는 분들 중에 팔걸이에 키보드를 붙여 쓰시는 분들도 있고요. 이 부분은 키보드를 어떻게 고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이야기해야 해서 한참 뒤에, 아마도 키보드가 완성된 후에야 붙일 이야기입니다만, 이 부분도 고민은 하고 있어요. ㅎㅎ 하지만 책상이나 의자 디자인 자체가 워낙 다양다종하다보니 이를 일관된 해결책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
miseryrunsfast님의 댓글의 댓글
아마 3D 프린터가 없었다면 저같은 아마추어가 이런 일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miseryrunsfast님의 댓글의 댓글
잘 안다는 말은 아직 못하겠습니다. 시장이랑 성향이 너무 빨리 변해요...
선명님의 댓글
스플릿 키보드를 사용 한다면
키보드의 위치는 책상보다는 의자 팔걸이쪽이 더 인체공학적? 일 것 같은데
의자 팔걸이에 맞는 키보드 거치대? 도 사업아이템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허먼밀러 아틀라스 헤드레스트 처럼
커스텀 팔걸이? 가 수요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