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의료체계는 진짜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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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제가 뉴질랜드에서 꽤 오랫동안 살면서 직접 보고, 배우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여기 시간은 지금 새벽 두시가 다 되어 가는데 잠은 안 오고 해서 한번 써보려고 합니다. 한국은 지금 의대 정원 확대, 의사 파업, 지방 의료 공백, 모자라는 소아과 등등 때문에 논란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TV조선에서는 종종 말도 안 되는 정보나 휘황찬란한 카피들을 가지고 뉴질랜드의 복지, 의료, 건강과 관련한 온갖 미사여구들로 시청자들에게 이상한 환상을 심어 주는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뉴질랜드 복지/의료 수준은 이 정도인데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은 아직 멀었다. 우리는 헬조선에서 벗어나지 못해” 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가 본데.. 실제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제 입장에서는 뭘 알고나 하는 말인가 싶기도 하고, 헛웃음만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간단하게 큰 골자만 가지고 뉴질랜드와 한국의 의료체계를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1. 사고, 물리적인 충격으로 인한 통증과 상해
한줄 요약: 대부분 무료지만 첫 진료비용 본인 부담 (3만원에서 10만원) + 심사 기간은 대충 5일에서 10일
뉴질랜드에는 ACC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Accident Compensation Corporation, 즉 사고나 상해가 발생했을 때 드는 진료, 치료 비용이나 수술 비용을 정부차원에서 감면해주는 곳입니다. 뉴질랜드는 아웃도어 활동으로 잘 알려진 나라답게, 운동을 하거나 밖에 나가서 활동을 하거나, 운전을 하다가 사고로 다치면 비자에 관계 없이 정부가 치료비용을 보전해 줍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부분은 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조직이 하는 일은 상해가 접수 되면 실질적으로 물리적인 충격 때문에 다친 게 맞는지 (injury) 검토하고, 맞다면 치료비를 완전 보전해 주거나 부분 보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잘 못 디뎌서 굴러서 넘어졌는데 발목을 접질리고 손목을 삐끗한 경우에 여기에 해당합니다. ACC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일단 보건소나 일반의에 찾아 갑니다. 그러면 기본 비용 (보통 한화로 3만원에서 10만원 사이)을 내고 의사가 진찰을 하면서 여러가지 질문을 합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어떻게 하다가 다쳤는지 등등을 세밀하게 적고, 의사가 바로 ACC에 서류를 보냅니다. 그러면 이제 ACC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나서 적용된다고 확인을 해주면 문서를 하나 주는데 그걸 가지고 원하는 치료시설에 가셔서 치료를 받으시면 됩니다. 보통 이 심사 과정이 5일에서 10일정도 걸립니다.
만약 지금 당장 정밀 진료 (엑스레이 등등)나 치료를 받고 싶으시다면 심사가 끝나기 전에 본인 비용부담으로 먼저 치료를 받고, 확인 서류가 나오면 그때 환불을 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ACC 심사가 보류되거나 탈락하게 되는 경우에는 치료비는 전액 본인 부담이 되겠지요.
2. 만성적인 통증이나 질병인 경우
한줄 요약: 보통은 전문의로 바로 못감. 일반의를 거쳐 리퍼럴을 통해 가는 것이 일반적. 50년 기다려서 무료로 받거나 비싼돈 내고 일주일 안에 치료 받거나…
앞서 말씀드린 ACC는 엄격하게 사고와 상해에만 국한됩니다. 그렇다면 위염에 걸리거나 폐렴, 맹장염, 암같은 질병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뉴질랜드에는 GP라고 불리는 일반의가 있습니다. 이들은 전문의가 아니며, 한국에서는 “의원”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길거리에 즐비한 정형외과,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피부과 등등은 모두 “전문의”입니다. 한국에서는 내가 아픈 부위에 알맞은 전문의에게 바로 찾아갈 수 있지만 뉴질랜드에서는 거의 90% 일반의를 먼저 찾아가 소견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일반의에게 가면 보통 한화로 2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정도 진료비를 내야 합니다. 환자는 Registered patient 와 Casual patient 로 나뉘는데 쉽게 말해 “주치의”같은 개념이라 보시면 됩니다. 주치의로 등록된 일반의는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진료비를 내고 소견을 받으실수 있지만, 주치의가 아닌 경우에는 전액 본인 부담으로 10만원 정도까지 내야 합니다.
첫 내원시 일반의는 주로 진통제를 처방해줍니다. 그리고 일주일에서 열흘정도 후에도 나아지지 않으면 한번 더 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때 본인 소견을 첨부한 편지를 써주는데 이제 전문의에게 갈 수 있는 첫단계가 완료되었습니다. 물론 두번째 내원시에도 같은 비용을 또 부담해야 합니다.
질병과 관련해 전문의를 찾아가는 경우, 무료 진료/치료를 받으려면 주로 시립병원급의 큰 병원에 가야 하는데 뉴질랜드 큰병원은 항상 만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수술의 경우 미뤄지기 일쑤이고, 보통 대기 줄이 어마어마 합니다.
가까운 예로 제 지인은 맹장염 때문에 시립병원에 갔는데 3일 째 되는 날 의사가 아픈 바람에 이틀을 더 기다려서 5일째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더 늦어졌다가는 큰일 날 뻔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나마 맹장염은 좀 자주 있는 병이라 수술이 잦은 편이지만 암, 대수술 같은 경우는 정말로 10년 이상 기다려야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하다하다 이제 가이드라인으로 65세 이상 저소득층 환자가 아니면 사설 병원으로 안내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 이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이대로는 안되겠다.. 내 돈을 내는 한이 있어도 지금 당장 빨리 전문의를 봐야겠다 하신다면, 질병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제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수면 위내시경 받는데 한화로 150만원, 누운 사랑니 2개 발치 수술하는데 한화로 350만원 나왔습니다.. 엑스레이 한번 찍는데는 10만원에서 20만원정도 나오고.. ㅎㅎ 가격을 보는 순간 통증이 싹 가시는 경험도 해봤습니다ㅠㅠ 가격이 가격인지라 사설보험이 거의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의료 인력이 해외로 많이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 이마저도 당장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보통 예약 후 5일 내로 치료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3. 도수치료, 한의원, 통증 관리
한줄요약: 사고/상해의 일환으로 치료를 받고 싶은 경우 무료. 만성 질환의 경우 매번 자기 부담.
ACC에서 승인을 해준 경우에 통증관리 차원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성 질환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기 위해서인지 5번인가 8번까지만 무료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도 차도가 없거나 낫지 않으면 그 뒤로는 전액 자기부담으로 받아야 합니다.
만성의 경우.. 예를 들어 바르지 못한 자세로 의자에 오래 앉아 컴퓨터로 작업을 하다가 허리 디스크가 온 경우에는 ACC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매번 내원할 때마다 약 5만원에서 10만원 정도를 내야만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4. 치과
한줄요약: 미성년자는 전액 무료, 성인부터는…
미성년자녀의 경우 충치, 교정을 비롯한 전반적인 치료가 무료입니다. 다만 한국처럼 지르코니아, 금을 마음대로 고를 수 없고, 보통 아말감과 레진을 사용합니다..
성인부터는 어마어마한 금융치료 게이트가 열립니다. 임플란트의 경우 (새로운 임플란트) 기본 약 1500만원부터 시작해서 치조골 이식 등 수술, 전신마취가 들어가면 3000만원은 우습게 깨집니다. 충치 때우는 것도 10만원부터 시작하고.. 역시나 아말감 아니면 레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스케일링은 10만원 정도 하다보니 서민들이 자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래서 저소득층의 사람들 중에 치아를 그냥 뽑아 버린 사람들도 흔하게 있습니다.
쓰다보니 여러모로 슬퍼지네요. TV조선에서 말도 안되는 선동을 하는 걸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와서 시작한 글인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한국의 의료보험이 정말 좋은 제도라는 걸 다시한번 느낍니다.
나중에 시간 나면 뉴질랜드 저소득층, 중산층은 이런 의료 시스템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moxx님의 댓글의 댓글
다소산만님의 댓글의 댓글
지피는 여기도 비슷한데 다만 주치의가 아니더라도 메디케어(영주권이상) 이면 비용은 비숫합니다. 기본료에 따라 국가 의료보험으로 전액(80불??) 커버가 되거나 추가금이 조금 나올수 있습니다. 요즘 Bulk billing 하는곳이 조금씩 줄어 들고 있습니다.
치과는 뼈 이식 여부는 모르겠고 임플란트 경우 2500-4000정도가 기본 입니다. 국가의료보험 전혀 안되고 보험 있는 사람들은 1000-1500 정도 커버가 됩니다.
도수 치료는 만성 통증에 한해 지피가 통증케어 서류를 발급해 주면 그걸 바우처 삼아 아무데나 가서 사용 할수 있습니다. 추가금이 조금 나옵니다. 아니면 대부분 extra 보험(안경, 물리치료, 치과등을 커버, 병원은 hospital 보험 따로) 으로 추가금을 내고 보험커버 금액 한도내에서 사용하고 매년 갱신이 됩니다.
치과랑 안경 때문에 extra 보험은 항상 유지 하지만 hospital 보험은 아직 없습니다. 이제 40중반도 꺽이니 슬슬 고려해 봐야죠.
호주도 의료이야기 나오면 맹장을 빨리 안해줘서 복막염이 됐다던가...영주권이 없어 비용 때문에 맹장을 안고 본국으로 귀국 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ㅠㅠ
영국, 캐나다 같은 곳도 비슷하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제 느낌은 진짜 아픈 사람은 생각보다 빠르고 저렴 하거나 무료도 치료를 잘 해준다는 느낌인데..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종합 병원이 부족해 보이는것도 사실 입니다.
임플란트 15000 은 충격 이네요. 고민 안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끊겠습니다. 호주는 그래도 비행기 표랑 시간등을 감안하면 고민할 수준은 되는데 말이죠... ㅎㅎ
moxx님의 댓글
호주는 메디케어(한국의 의보/건보와 비슷)에서 한국 대비 필수 의료는 지원이 더 좋고 생명에 직결되지 않는 의료(한국에서 주로 의보로 커버 되는 항목)는 오히려 커버가 안되는 차이가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