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준비 장본 것을 바닥(땅)에 내려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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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커피나무살리기 122.♡.143.26
작성일 2024.08.2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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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아시는 분 계세요?

댓글 2 / 1 페이지

자비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자비 (121.♡.181.136)
작성일 08.23 19:34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가: 축서사 무여스님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면서 명호를 아주 간절하게 불러야 돼요. 아주 간절하게요. 옛 스님 말씀에 기도하는 사람은 간절(懇切) 절(切)자를 이마에 써 붙이고 하라고 했습니다. 간절(懇切) 절자(切)를 이마에 척 써 붙이고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선지식은 기도자는 간절 절(切)자 한 자만이 요긴하다고 한 분도 있습니다. 다른 여러 자가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간절 절자 한 자만 요긴하다는 것입니다.

즉, 기도는 오직 간절 간절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기도가 아주 간절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간절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하면 의외로 바로 쉽게 성취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간절하게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아주 절실하게 성심성의껏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절실하게란 아주 긴요하게 꼭 필요하게라는 뜻입니다. 이 기도는 아주 긴요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해야 됩니다. 즉, 며칠 굶은 사람이 밥을 생각하듯이 해라 합니다. 며칠 굶어 보세요. 배가 되게 고프면 아무 생각도 안 납니다. 자나깨나 오직 밥 생각뿐일 것입니다. 며칠 굶은 사람이 밥 생각하듯이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부르세요.

IMF 한파라고 해서 부도난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부도나기 직전의 사장님의 심정은 어떻겠어요? 오직 회사를 살릴 생각뿐일 것입니다. 회사를 살리는 데는 돈이 필요합니다. 사장님의 머리에는 첫째도 돈, 둘째도 돈, 돈, 돈, 돈 생각뿐일 것입니다. 그런 부도 직전의 사장이 돈 생각하듯이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절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두서너 살 된 아이가 있는데, 그아이는 어머니 품에서만 늘 놀던 아이에요.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볼일이 있어서 며칠간 집을 비웠다고 합시다. 그 아이는 잠시만 어머니가 없어도 울고불고하는 그런 아이라면 며칠간 어머니가 없으니 얼마나 보고 싶겠어요?

울다가 어머니 생각하다가, 울다가는 또 어머니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아이는 먹을 것을 줘도 먹지도 않아요. 형이 놀아주고 누나가 달래도 소용없이 오직 어머니 생각뿐일 것입니다. 어머니가 없으면 죽기라도 할 것같이 오직 어머니를 찾을 것입니다. 절실함이란 아이가 오직 집 나간 어미를 생각하듯이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십시오. 관세음보살께 매달리듯이, '날 좀 살려주십시오.' 하듯이, '당신 아니면 나는 죽습니다.' 하는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절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기도는 성심성의껏 해야 됩니다. 정성껏 해야 돼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그야말로 힘껏 최선을 다해서 해야 됩니다. 그렇게 지극하게 하는 데서 기적이 일어나고 불가사의한 일도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아무 성의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건성으로 메아리처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불러서는 별 영험이 없습니다. 흔히 '노는 입에 염불하듯이 한다.' 그런 말을 합니다. 즉 심심풀이로 한다는 것입니다. 노는 것보다는 염불하는 것이 낫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인데, 기도는 그렇게 해야 됩니다. 하늘도 아주 감동할 정도로요. 정신일도(精神一到) 하사불성(何事不成)이라.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랴! 그렇습니다.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어요? 바로 정성껏 하는 기도나 참선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데도 정성껏 해야되지만 부처님에 대한 정성도 아주 대단해야 돼요.

해인사에 계시는 일타 스님의 법문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타 스님 부모님은 아들을 낳기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드렸답니다. 부처님에게 기도를 올릴 때만 정성을 올린 것이 아니고 농사를 지을 때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공양미를 짓는 논밭에는 대변을 주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농사에는 대변을 줘야 잘 자라고 맛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럽다고 대변을 안 주었다는 것입니다.

고운 풀만 베어다가 거름으로 사용했답니다. 벼가 다 익으면 제일 먼저 익은 것을 낫으로 베는 것이 아니고 손으로 직접 벼를 훑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아를 잘 찧었답니다. 이렇게 정성껏, 그것도 관세음보살님이나 대방광불화엄경을 부르면서 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되시는 법진 거사는 절에 갈 준비가 다 되면 깨끗한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손수 만든 무명베 자루에 쌀을 담아서 지고 마곡사 대원암까지 가서 불공을 드렸답니다. 집에서 절까지는 80리나 되었답니다. 어느 해는 쌀을 짊어지고 대원암으로 가는데 배가 싸르르 아프더니 방귀가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참으며 가다가는 시냇물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방귀를 "뽕-" 하고 뀌고 말았어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러 가다가 방귀를 뀌다니. 방귀 냄새가 쌀에 묻었을 것 아닌가? 불경스럽기도 하지.' 방귀 냄새가 섞인 쌀로는 공양을 올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타 스님 아버지는 쌀을 도로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 다음날 또 다른 벼를 손으로 훑어서 또 방아를 잘 찧어서 또 새로 자루를 만들어서 80리 길을 지고 걸어서 불공을 드리러 갔다는 것입니다.

일타 스님 일가가 41명이 출가를 했답니다. 그런 지극한 신심이 아마 41명이 출가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떤 비구니 스님은 재나 불공을 올리려고 공양물을 사러 가면 반드시 단층 건물의 가게에서는 과일이나 과자 같은 것을 산다고 합니다. 2층이나 3층집은, 2층이나 3층에서 온갖 잡일을 하는 가게에서 공양물을 사면 부처님께 불경스럽다는 것입니다. 살 때도 주인이 보면 신경질이 날 정도로 하나하나 고르고, 조금만 흠이 있거나 모양만 안 좋아도 사지 않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한 걸망 사서는 버스나 열차를 타면 선반이 있으면 선반에 올려놓지만 선반이 없으면 아무리 무겁더라도 무릎 위에 올려놓지, 절대로 바닥에 두지 않습니다. 산을 넘다가도 쉴 때 깨끗한 풀이나 바위 위에 두고 쉬면 좋을 텐데 꼭 무릎 위에 놓는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올릴 것을 어떻게 땅바닥이나 바위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비구니 스님은 부처님께 올릴 마지를 뜰 때에도 반드시 마스크를 하고 손수 아주 정성껏 뜬답니다. 법당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옷을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고 들어간답니다.

기도자는 일타스님의 부친인 법진거사나 이 비구니 스님 같은 그런 정성이 있어야 됩니다. 기도자는 옛날 새색시가 처음 시집와서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나 시아버지 앞에 아주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으로 정성을 다해서 시중을 들듯이 그렇게 하세요. 흔히 법당에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들기도 하고 심지어 먹을 것을 먹기도 하는데, 법당은 부처님을 모신 성스러운 곳입니다. 살아 계신 부처님을 모신듯이 정성을 다해야 기도다운 기도가 됩니다.

이렇게 아주 간절 간절한 그런 기도가 끝나면 반드시 축원(祝願)을 하십시오. 축원은 꼭 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은 축원을 해야, 하고 싶은 생각을 더 내시고 간절한 마음을 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축원은 평생의 소원과 일상의 소원으로 나뉩니다. 평생의 소원은 일생의 목표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목표가 있어야 됩니다.

출처 : 씨라리골

[출처]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가: 축서사 무여스님|작성자 일용

nice05님의 댓글

작성자 nice05 (175.♡.18.168)
작성일 08.24 17:15
하나의 요식행위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사처럼 말이죠.

조상신이란 게 정말 있다면,
대접 제대로 안해준다고 해서 자녀나 손에게 해악을 끼치진 않겠죠. 부모의 마음이란 걸 생각해 본다면 말이죠.

만일 그런 걸로 삐지거나 화나서 후손에게 복수(?) 하는 조상귀신이라면, 치매환자의 의식처럼, 이미 조상이 아닌 다른 악한 세계에 장악된 무언가...... 라고 간주해야할테고요.
그렇다면 섬길 이유가 없어지죠.

그 옛날 의학이든 다른 분야든 일반인들이 상식 선의 지식도 갖지 못하던 시절에 뭔가 도움을 받을 존재가 필요했고, 그들도 그 존재가 사랑이나 선함으로 가득찬 존재가 아니고 내가 무언가를 줘야만 도와주는 계산적인 혹은 화가 나 있는 존재란 걸, 그 시대 사람들도 알고 있었던 걸 겁니다. 그러니 혹여 기분 거스를까 만사 노심초사 하며 준비를 했달까요.

옛말에 귀신과는 아예 멀리하는 게 상책이란 소리도 있으니 섬기지 않기 시작하면 도움도 해악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제사를 이 땅의 문화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경우라면, 굳이 말씀하신 질문에 대한 부분까지 세세히 신경 쓰고 그러실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그런 경우에야 말 그대로 그저 옛부터 전해져 오는 문화를 이어간다는 정도의 마음가짐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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