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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 - 1792년 만인소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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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셰도우
작성일 2025.02.24 11:16
분류 독후감
128 조회
3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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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읽고 있는 책들 파트 중 하나가 영정조 시대, 그 중에서도 문 대통령님과 이 대표님이 자주 읽고 영향을 받았다는 정조 시대와 관련한 책들이고, 딱히 이 책을 고른 이유는....그냥 도서관에서 빌릴 책 보면서 서가 뒤지다가 정조를 울렸다길래 호기심에(ㅋㅋㅋ) 집어 봤습니다.

사실은 내란 직전에 빠져들었던 '옷소매 붉은 끝동' 때문에 내란 전부터 영정조 시대에 관심을 두고 파고 있었는데, 그 연장선이기도 하죠. 그래서 그냥 제목에 정조가 들어가고, 정조를 울렸다길래 궁금해서 읽어 보기로 했습니다 ㅎㅎ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정조 시대의 1792년에 영남 유생 1만명이 정조에게 상소를 올린 영남 만인소 운동을 자세히 다룬 책입니다. 정조 시대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 중 미시적인 특정한 사건을 다룬 책이기에 일일이 배경 설명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짧게나마 설명을 하자면, 영조 대부터 권세를 잡고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앞장서고 정조의 즉위를 반대하던 노론 세력들을 누르고 자신을 도와줄 세력이 필요했던 정조가, 노론과 대척점에 있는 남인들, 그 중에서도 영남의 유생들과 손을 잡고자 1792년에 영남 유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도산별과'를 치뤄서 이들을 특채시키고자 했습니다.

문제는 이 당시까지만 해도 영남은 역적의 땅이라서 벼슬길이 막혀 있었다는 겁니다. 영조 4년(1728년)에 있었던 이인좌의 난 때 영남 안음현에서는 정희량이라는 사람이 함께 거병했는데, 정희량이 병력도 더 많고 최후까지 버틴 탓에 영조는 아예 안음현을 폐지해 버리고 영남 사람들의 벼슬길을 막아 버립니다.

해서 이들을 다시 등용시키고자 실시했던 도산별과에 대해서 노론들이 가만 있을 리가 없었고, 노론들 중에 총대를 메고 제일 먼저 나선 사람이 사간원 정원이던 류성한이란 사람이었고, 그가 올린 상소 내용이 '매일 식사하듯 경연(임금이 신하와 경전과 학문을 논하고 배우는 자리)에 참여하던 정조가' 최근에는 경연에도 참여를 잘 안하시던데(경연 불참을 말하는 건 그 시대에 왕의 잘못된 행실을 돌려서 비판하기 위한 당시의 일종의 관용적 표현이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은미한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 고 합니다.

여기서 '무슨 은미한 뜻' 이라 함은 당시에 누가 봐도 '돌아가신 사도세자를 생각하고 있는 것' 이라 읽혔고, 정조의 역린인 사도세자를 건드린 류성한의 이 상소에 대한 소식을 들은 영남의 유생들이 너도나도 뜻을 모아 정조에게 류성한을 탄핵하라는 상소를 올리게 되는 것이 주 배경입니다.


영남 만인소 운동은 말 그대로 1만명이 연명하여 상소를 올렸다는 것인데, 이렇게 많은 숫자가 모인 건 조선시대에 최초의 일이었고, 만인(萬人)이란 말은 1만명이란 뜻 외에도 모든 사람을 뜻하는 관용구이기도 했기에, 이 숫자는 제아무리 노론이라 해도 무시할 수 없는 공론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아직도 기세등등했던 노론 세력 탓에 정조도 류성한을 직접 탄핵하는 결과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당시에 상소를 직간접적으로 막았던 자들을 비롯해서 류성한과 관계가 있었던 자들이 줄줄이 귀양가거나 파직되면서 변화를 이끌어내기 시작했고, 이어 영남의 유생들이 하나둘씩 관직에 등용되면서 영남도 역적의 땅이라는 오명을 씻고 정조를 도울 수 있는 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이런 영남 만인소운동이라는 미시적인 사건을 아주 많은 문헌들과 자료들을 세세히 수집하고 분석해서, 이 상소의 주요 인물인 류이좌 라는 사람이 쓴 천휘록을 중심으로 류이좌를 비롯한 영남의 유생들이 류성한의 상소 소식을 듣고 뜻을 모으고 상소를 올리기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과정부터 상소를 만들기 위한 조직, 일명 소청을 비롯한 대표자 격인 소두(疏頭, 혹은 소수(疏首))를 비롯한 실무진을 선출하는 과정, 꾸리기 위한 움직임과 경상도에서 한양으로까지 이동 과정, 상소를 접수하고 정조에게까지 이르는 동안의 수많은 사소한 사건들과 사람들과 자금의 움직임 등을 아주 자세하게 이야기 형식으로 재구성해서 읽기 쉽게 풀어놨습니다. 해서, 영남 만인소운동과 당시의 유생들의 문화와 조선시대의 소통과 언로에 대해서 깊이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 해도 흥미 있게 읽어 볼 만한 ,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뱀발을 붙이자면, 영남 유생들의 상소는 2차까지 있었고 3차 시도도 했지만 정조의 만류로 불발되었고, 1차 상소를 유생들에게서 직접 들은 정조가 몇 시간 동안 우느라 제대로 말도 못했고(이에 대한 정조실록의 기록은 '상(정조)이 억제하느라 목이 메어 소리를 내지 못해 말을 하려다가 말하지 못했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유생들과 밤새 이야기를 하느라 다음날 새벽 3시 50분경이 되어서야 소두를 비롯한 상소단이 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정조는 평생의 한이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지지해 주는 세력을 드디어 만났다는 기쁨과 회한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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