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1년, 안음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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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전에 올렸던 '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 - 1792년 만인소운동' 과 같은 저자가 시리즈로 엮은 책입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도 특별한 게 없습니다. 같은 저자의 유일한 시리즈 책이고, 또한 요즘 한참 보고 있는 영정조 시대 중 영조 시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1751년 안음현에서 기찰군교(순찰을 돌며 도망다니는 도둑을 쫓아 체포하거나 도적떼를 토벌하는 군인 겸 경찰) 2명이 살해된 살인사건을 다룹니다. 없었던 가공의 사건이 아니라, 1751년 당시 경상감사를 지냈던 조재호가 썼던 일기인 '영영일기' 중 조정에 올렸던 장계를 필사해서 모은 '영영장계등록' 중 해당 사건의 장계에 기반한 것이고, 여기에 조선시대 사법 시스템에 대한 여러 문헌들과 논문들, 저서들을 참고해서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해서 쓴 책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고문헌을 딱딱하게 직역해 놓은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읽기 쉽도록 조선시대판 추리소설 식으로 재구성해서 썼기에 과연 범인이 누군지 추리해 가면서 읽는 재미가 있고, 또한 저자의 추측이나 의견, 그리고 당시 검시의견에 대한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감수를 받아 쓴 평가도 들어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의 형사 사법 시스템이 그저 사극에서 보는대로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관아에 잡아들여서 흰옷 입히고 주리를 틀면서 '네 죄를 알렷다' 라고 고문하는 게 아니라, 시체를 검사하는 검시 과정에서부터 용의자를 심문하고 조사하며 판결을 내리는 과정이 아주 세세하고도 체계적으로 묘사되고 있고, 비록 당시의 과학적 기술적인 한계는 있지만 억울함, 즉 원통하게 죽은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그렇게 풀어주는 과정에서 또다른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게끔 최대한 과학적 기술을 동원해서 법의학서를 만들고, 또한 이에 기반한 형사처리 준칙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는 걸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을 분명 경상감사 조재호가 장계로 올렸기에 조정에서 이에 대한 처분이 있었을 터인데, 막상 영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이 사건에 관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아마도 이 당시가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던 시기라서, 사도세자에 관한 기록을 모두 지우는 과정에서 같이 휩쓸려서 지워진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실화에 기반한 조선시대판 추리소설 한 편 읽으면서 조선시대의 사법 시스템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책 사이즈도 B5 정도의 작은 사이즈라서 가볍게 읽을 수 있구요, 이 책을 읽고 조선시대 형사 사법 제도에 대해서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면 각주에 있는 각종 참고도서와 논문 등을 살펴보면 더 많은 연구를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