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나의 80년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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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셨대"

테레비를 켜면 매일 9시 뉴스를 장식하던 박정희 대통령, 어린 마음에 대통령은 박정희, 박정희는 민족 지도자였다. 그런 대통령이 돌아가시다니, 게다가 그의 부하가 암살했다니. 그런 쳐 죽일 놈을 보았나, 우리나라는? 오일쇼크는? 카터 미군 철수는? 경제개발 5개 년 계획은?

테레비에서는 온통 장례 행렬, 사람들의 통곡, 우울한 분위기를 계속 내보냈다. 우리 어머니도, 할머니도, 당장 나라가 망하는 것 마냥 말씀하신다.

그리고, 곧 이어서 등장하는 "최규하 대통령", 영 미덥잖다. 대통령 박정희에 비해 믿음도 가지 않고, 뭘 해도 시원치 않아 보인다. 그 때 내가 뭘 알았겠나, 그저 언론이 보여주려는 영상이 그대로 나에게 투영된 것이겠지…

어째서인지 내 기억에 최규하 대통령은 며칠이나 한 건가 싶을 만큼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교장실과 교무실을 장식하던 박정희 사진이 내려가고, 반짝반짝한 대머리의 얼굴이 걸렸다. 전두환 대통령이란다. 테레비고 신문이고 온통 환영 일색이다.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축구를 좋아한다… 아버지 음식 취향도 모르던 나는 어느새 새 대통령의 음식 취향까지 알게 되었다.

그 해, 봄이었겠지? 아버지께서 유난히 늦으신다. 평소에 술도 안 하시던 분이셔서, 좀처럼 퇴근 시간이 늦는 법이 없으시던 분이셨다. 아주 가끔, 술 몇 잔 하고 들어오실 때가 있더라도, 적어도 9시 전에는 귀가하셨고, '어, 난 술 한 잔만 해도 얼굴이 빨개져서 난 술 안 해' 하시면서, 당신의 작은 주량을 자랑삼아 말씀하시던 양반이시다. 

그런 분이 10 시가 넘어도 들어오지 않으신다, 어머니는 우리 형제 보고 자라고 하셨지만, 당신은 잠들지 못하셨다. 그렇게 잠들다 불이 환하게 켜져서 문득 잠에서 깨었다. 아버지는 피곤한 얼굴을 하셨지만, 그래도 무사히 귀가하신 것을 무용담처럼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우리 형제에게 야구 글러브를 주셨다. 왜 갑자기 야구 글러브를 사 오셨을까,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다가 그저 우연히 사 오셨을까? 그렇게 80년 봄은 그렇게 우리집을 찾아왔다.

댓글 6

oHrange님의 댓글

슨생님.. 퇴근 혼밥 후 귀가길에 글 읽는데 후반부 엄청 쫄깃해졌다 이야기가 끊겼네요.. 다음글을 기다리겠습니다.

비치지않는거울님의 댓글

교실 게시판에 붙은 뻐꺼 얼굴에 수염을 그렸다가
수학 선생놈에게 뺨을 무지 막지하게 두드려 맞았습니다.
말로는 자기가 그렇게 안 하면 다른 사람이 신고해서 큰일 난다고 했는데
제 생각에는 촌지 안 준다고 그랬던것 같습니다.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더러운 시절이었습니다.

junja91님의 댓글

그냥 그 시절 단편적인 기억들을 주워 모아 담담하게 쓰려고 하는 글인데, 혹시라도 뭐 대단한 거 있나 생각하시면 부담스럽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솔까 뭐 대단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냥 시간 날 때 조금씩 쓰려고요. 그렇게 6.29 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그냥 같은 시대에 코찔찔이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과 기억을 나누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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