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에 대한 잊지말아야할 아픈 부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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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5.18은 직접적인 사연은 없지만 제 생애 중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기억속에, 마음속에 계속 재생되고 있는 아픈 이야기 입니다.
가려지고 왜곡된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전라도/광주 지역민으로서 그 아픔을 내내 지켜볼 수 있어서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살아오면서의 5.18과 연관된 기억들을 떠올리니 소소한 내용 뿐이고 별 내용이 없어 죄스럽기도 합니다.
- 시골마을에서 당시의 기억
80년 5월, 저는 전라도 시골마을의 막 국민학교 조기입학한 아무 생각없는 작은 아이였고, 저희 집은 국도 옆에서 버스표,담배,막걸리,과자,과일 등을 파는 구멍가게 였습니다. 평소처럼 집안에서 놀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부랴부랴 저와 남동생을 안마당으로 들여보내고 나오라고 할 때까지 절대 나오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무슨 일일까.. 의아해하며 마당으로 와 고개를 들어보니 담장과 대문 너머로 트럭 위에 있던 아저씨들과 눈이 마주쳤고 한동안 얼음이 된 채로 쳐다보고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머리에 띠를 두른 사람도 있었고 브라운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사람도 있었으며 표정과 몸짓이 개선장군들처럼 힘차고 용맹스러워 보였습니다. 트럭이 떠난 후 어머니께 들어보니 그들은 광주로 향하고 있었고 빵과 음료수를 챙겨드렸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5.18에 대해 알게 되었을때 그분들이 시민군을 도우러 가던 길이었구나.. 그분들은 무사하셨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 광주에서의 기억
그 후 진학으로 광주로 이사를 왔고 광주에서의 5.18은 직접 당사자가 아니어서 전해들은 이야기나 금남로 길가에서 접하는 사진들,글들 뿐이었지만 이웃, 이곳 시민들의 가슴에 묻은 아픈 이야기로 일상의 배경, 기억의 공유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으로서 88학번 언니의 대학 진학 후 여학생회활동, 노래패, 북춤 동아리 활동, 집회 활동들로 밤늦게 다니는 걸 보면서는 저나 부모님이나 그저 걱정스런 마음이 컸고 좀 적당히 자중 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당시 통일의 꽃 임수경, 임종석 의장 책받침 사진, 유인물을 보여주며 눈빛이 빛났던 언니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제가 대학에 가서야 88학번 회장오빠가 들려주는 5.18의 진짜 이야기와 남아있는 과제들, 사진들, 일화들, 사연들 그리고 80년대 민주 열사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5.18 당시의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똘똘뭉쳐 자진해서 시위를 돕고 시위대의 음식을 제공하고 스스로 치안과 거리 청소, 질서를 유지하며 사소한 범죄 한건도 없었던 빛나는 시민의식, 공동체의식의 광주시민이었다는 걸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회장오빠의 모습.. 그때 같이 그 공간에 없었던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한켠에 있었습니다.
5.18 위령제,전야제,집회/행진 들에 근접해서 있었으나, 학생회활동을 열심히 하던 선배,동기,후배들에 비하면 저는 한발짝 떨어져 참여할 만큼만 하던 그냥 학생일 뿐이었던 거 같네요. 그럼에도 제 생애 한때나마 몇번 안되지만 거리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노래를 불렀던 그 시기가 있어서 현재까지 한국사회를 살아나가는데 위안이 되는거 같습니다.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 서울에서의 5.18
'96년도부터 서울에서의 사회생활, 직장생활..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피해보상은 오랜 세월 요구되어 왔으나 실현은 더디게 되었고 진정한 사과도 끝내 못받은채 역사는 흐르고 있습니다.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며 끊임없이 불신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건 여전히 씁쓸한 현실입니다.
직장에서 저와 가장 긴밀하게 협업했던 군 출신 분께서 5.18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의 지시된 작전이었고 작전성공의 포상도 있었다는 얘기까지만 듣고 그분과는 더이상 광주 얘기는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1987' 관람을 거치며 어떤 사건을 재조명하고 진실을 기록하고 알리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민주화의 역사가 진행중이며, 지역적.경제적.세대적.이념적 여러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걸 살아갈수록 확실히 체감합니다.
- 아이와 함께 5.18
5학년부터 사회시간에 근현대사가 다루어지더니 6학년때는 좀더 상세화되어 민주화와 역대 대통령에 대해 조사하여 발표도 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와 꼭 초등 중에 5.18 공원에 같이 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외갓집 광주를 매년 다니면서도 아이와 작년('23.5월)에 처음으로 망월동에 갔습니다. 저도 대학때 딱한번 묘지 방문 했었고, 공원 조성 후에는 처음 가봤네요. 아이는 그나마 학교 수업시간, 교과서, 학원논술수업, 학교 독서논술활동을 통해 근현대사를 접하긴 하였으나 글로 접한 것과 직접 현장에 가서 보고 느끼는 건 체감의 차이가 크기에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봅니다.
비슷한 경험으로 아이 미취학일때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 3번, 초저때 조국 장관님 서초동 촛불집회 1번 같이 갔었습니다. 4번 모두 규모가 큰 집회였기에 국민이 뜻을 모아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이 데리고 집회 간다고 하면 부산남자댕댕님은 안절부절하다 결국 데리러 오거나 따라나서거나 하더군요. 인파가 많으니 혹시 다칠까 걱정스럽겠지요. 우리나라 민주화 발전의 역사적 순간에 아이가 전인권님, 양희은님, 승환옹 노래도 듣고 여러 참가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도 들으면서 직접 느끼기를 바랬으며, 저보다는 더 의식있는 시민으로서 사회생활을 하기를 바래봅니다.
(묘지 둘러본 후 전시관에 아이가 남긴 메모 입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5.18은 여전히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울 정도로 진행중인듯 합니다. 안타까운 정치탄압, 검찰독재, 쓰레기어용언론, 친일이 여전히 판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이는데 어느덧 아이도 6년 후면 투표권을 갖는 나이가 되네요..
* 광주에서 자란 해마다 5월이면 어디서든 듣고 부르던 노래 중 가슴에 남아있는 곡
: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https://youtu.be/4Q7VZ5tzX1o?si=JFBH5nC-WdUyCrUT
: 오월의 노래 - 노래를 찾는 사람들(윤선애)
https://youtu.be/jlS_i4FkNyk?si=tNn9Pk4N4f2KCV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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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Jovi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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ヽ(○・▽・○)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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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도미에님의 댓글
진중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어릴적부터 회사생활까지의 경험담도 생생하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시민의식 기르기...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양육이야기입니다.
oHrange님의 댓글의 댓글
즐거운 오후 보내세용~
(⌒0⌒)/~~
Java님의 댓글
아이들에게 후대에게 잘 전해져서,
지금과 미래에 더 이상 이런 참상이 없엇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