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뜻'을 부여하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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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2024.06.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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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뜻'을 부여하는 걸 좋아합니다.
'뜻'이 달려 있지 않으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흔히 길가에 자란 이름 없는 풀들을 '잡초', '잡풀'이라고 부르는데,
조금 생각해 보면, 아름답고 멋진 의미를 담은 이름을 아직 부여받지 못해서,
그렇게 '의미 없는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겁니다.

어떤 이에게는, 혹은 어떤 동물에게는 무척 소중한 '그 무엇'일 수 있는데,
잠시 그 공간에 머물다 지나는 어떤 이에게는 '무가치한, 불필요한 그 무엇'으로 비치는 거죠.
있으나 없으나 별로 상관이 없거나, 혹은 제초 작업을 해서 없애야 하는 불필요한 것,
이런 것으로 판단되는 게 아닐까요.


픽사의 애니메이션 월-E 에서는 더 이상 사람이 거주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혀진 지구를 떠나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사람들이 멀리 떠나버리죠. 월-E는 지구를 청소하고 있고요.
공식적으로는 뭐라고 불리는지 기억나지 않은 '이브'(월-E가 '이름'을 지어줬죠)들을 보내서
지구의 환경이 다시 사람들이 돌아와도 되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브'가 찾는 '사람이 돌아와도 되는 환경'에 증거. 그건 바로 작은 '초록색 식물'이었습니다.
길가에 자란 이름 없는 풀들.. 바로 '잡초, 잡풀'도 그 중 하나였을 겁니다.
어느 때에는 '무가치하고, 불필요한 그 무엇'일 수 있지만,
어느 때에는 '인류의 미래를 바꿔버릴 그 무엇'으로도 의미 될 수 있는 거죠.
'이름' 혹은 '뜻'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소모임 '경로당'의 경로는 보통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로 敬老
: 노인을 공경함.

저는 경로당에 입당을 하기 전에 한 번 망설였습니다.
왠지 경로당 하면 '벌초를 하러 갔을 때 거기 계신 어르신들께 인사를 들여야할 것' 같지,
제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상상이 되질 않으니까요.
손가락을 접어서 세어보면 '아.. 많이 접었다 폈다를 해야 하긴 합니다'만,
아직 그 정도로 연륜이 깊어진 것도 아니고, 연배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랬는데, 생각해 보면 '언제부터 그 범주에 들어가는 것인가?' 를 판단하는 것은
제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보는 관점이기도 하고, '젊다 혹은 나이가 들었다'는 것도
역시 제가 어찌 해볼 수 없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다 상대적인 거죠.

아직 열 살도 안 된 꼬꼬마가 '살다 보니..' 라고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 친구들의 눈에는 저 역시 당연히 '경로당 자격 합격'이지 않을까요.
도리질을 치며 부정해도 한 해 한 해 나이는 알아서 오르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해서, 국어사전의 '경로'의 다른 의미를 대입해 봅니다.

경로 經路
: 지나는 길.
: 일이 진행되는 방법이나 순서.

네비게이션에서 흔히 듣게 되는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다시 경로를 재설정..'.
우리들의 삶이라는 게 '길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아주 명쾌하고 즐겁고 확실한 길을 걷게 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가시덤불에 웅덩이에 수많은 장애물에 뒤덮인 길을 걷게 되기도 하죠.


자신이 지나온 길을 다시 되돌아갈 방법은 없습니다.
간혹 실수하고, 혹은 굳이 그렇게 하지 말 것을.. 이라는 아쉬움이 남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걷고 있는 길을 중단하거나 멈출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나 있는 길을 묵묵하고, 더 조심스럽게, 더 단단하게 밟으며 나아가야죠.
어떤 길이 정답이고, 어떤 길은 오답이고.. 이런 건 사실 없는 것 같습니다.
수 십억 명의 사람들만큼 수 십억 개의 자신의 길이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경로당'에 '내 자신이 가는 길'이라는 의미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돌아보면서 자신이 걸었던 길을 추억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이고, 활기차고, 행복한 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저는 그래서 '경로당'이 좋습니다.



끝.

댓글 28

Awacs님의 댓글

작성자 Awacs (118.♡.188.12)
작성일 06.10 11:04
좋은 중의적 의미네요.
우리는 그럼 패스파인더가 될 수도 있는거죠. 노인네들이 아니라 ㅎㅎㅎ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10 12:24
@Awacs님에게 답글 역시 '화성에 갈끄니까~~'가 정답일까요.. 흐흐흐

diynbetterlif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diynbetterlife (220.♡.37.28)
작성일 06.10 12:41
@Awacs님에게 답글 경로당의 경로가 길을 찾을 때의 path가 되는거군요.

의미 좋습니다. 패쓰파인더…

(지나가다가 적어봅니당)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10 12:43
@diynbetterlife님에게 답글 영화, 미술 작품은 이미 완성되었고, '그에 대한 해석'은 '보는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거ㄹ.. (후다닥) ^^;

diynbetterlif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diynbetterlife (220.♡.37.28)
작성일 06.10 12:56
@벗님님에게 답글 ㅎㅎ 사실.. 싱클레어 님이 쓰신 소명글에서 그 분이 감정적/모욕성 표현을 자제하고 논리적으로 썼다면 경로당이 매우 위험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시 그 소명글을 보시면 아실거예요..

경로당 성격이 특정 주제없이 친목으로 보이기 쉬운 성격도 분명 있고요. 과한 비난에 경로당 ‘전체‘가 타겟이 된 면도 있었지만요..
이번 사태가 큰 백신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오갈 수 있게 개방적으로만 운영된다면, 누구나 얘기에 참여하고 나눌 수 있다면 앞으로도 쭉 흥하지 않을까요!

경로당 포함 모든 소모임이 흥하길 응원합니다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10 13:03
@diynbetterlife님에게 답글 음.. 조금 조심스럽기는 한데, 여기 경로당은 항상 열려 있는 공간이긴 합니다.
명부라는 것도 누구는 안되고 누구는 되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한 명 두 명 늘어나는 재미로 정리했던 것이고,
그래서 저도 그 분들 모두 다 넣어서 항상 갱신하면서 suno.com 노래도 만들어보고 했었죠.
항상 개방적이고 열려 있는 공간이긴 했는데.. 공격적으로 오셨던 분으로 인해 예외 상황이 발생되어버린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대처 방법도 곤궁한 상태였고요.
그러다보니 이런 상황들이 연출된 것 같습니다. ^^;

무명님의 댓글

작성자 무명 (183.♡.3.86)
작성일 06.10 11:19
멋져요. 
멋진 글 잘 보고 배웁니다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10 12:24
@무명님에게 답글 네,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입니다. 올려 놓고 몇 번이나 고쳐요. ^^;

핑크연합님의 댓글

작성자 핑크연합 (180.♡.105.88)
작성일 06.10 11:43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10 12:25
@핑크연합님에게 답글 네, 감사합니다. ^^

랑조님의 댓글

작성자 랑조 (72.♡.40.71)
작성일 06.10 11:50
벗님의 글을 읽으며 마음에 위로를 얻네요. 너무 소중한 말씀 감사해요~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10 12:25
@랑조님에게 답글 네, 감사합니다. ^^

문없는문님의 댓글

작성자 문없는문 (119.♡.18.31)
작성일 06.10 11:58
조금 더 뜻을 명료하게 "노인정"으로 바꾸길 제안드립니다. ㅎㅎㅎ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10 12:25
@문없는문님에게 답글 'NO 인정' 입니다. 그랄 수 없는 없습니다. ^^;

누가늦으래요님의 댓글

작성자 누가늦으래요 (122.♡.0.202)
작성일 06.10 12:22
내비당이란 뜻도 있다?ㅋㅋㅋ 재밌습니다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10 12:26
@누가늦으래요님에게 답글 저는 사실 '젊은이당'이었으면 하고 바랬었습니다. 흐흐흐..

colashaker님의 댓글

작성자 colashaker (106.♡.129.150)
작성일 06.10 15:19
어쩐지.. 경로당이 더 좋아지는 순간입니다.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10 15:23
@colashaker님에게 답글 사람 사는 게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힘들 때는 등도 토닥여주고, 함께 기운도 내 보고 그런거죠. ^^

딜리트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딜리트 (219.♡.26.159)
작성일 06.10 16:19
벗님의 글을 읽고 무릎을 탁 치고, 이마도 탁 치고,  선생님이란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이 글은 나중에 꼭 써먹을 겁니다.  또 배웠습니다.
저는 분명히 이 곳에 머물면서 여러 앙님들의 지혜를 배운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10 16:32
@딜리트님에게 답글 어이쿠, 부끄럽습니다. ^^;

딜리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딜리트 (219.♡.26.159)
작성일 06.10 16:41
@벗님님에게 답글 저 오늘 비싼 영양제 주사 맞고 왔단 말이죠.  여기서 지혜를 배우는 것으로 퉁 칠거에요..^^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10 16:42
@딜리트님에게 답글 흐흐흐, 감사합니다. ^^

비가그치고님의 댓글

작성자 비가그치고 (106.♡.142.137)
작성일 06.11 16:41
와아.... 너무 좋은 글입니다ㅜ
역시 으르신!!ㅋㅋㅋ
연륜없이 나올 수 없는 철학과 필력이십니다!!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11 17:09
@비가그치고님에게 답글 저 역시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저도 많이 배워가고 있어요. ^^

sanga78님의 댓글

작성자 sanga78 (173.♡.151.177)
작성일 06.12 07:49
어르시느앙님의 글에서 위로 받곤 합니다. 감사합니다.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72.♡.52.229)
작성일 06.12 07:51
@sanga78님에게 답글 네, 감사합니다. ^^

cgkoh님의 댓글

작성자 cgkoh (14.♡.244.137)
작성일 06.13 10:03
역시 어르신의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깊은 통찰을 보여주시네요. 저 이런 중의적인 것 좋아합니다. 철학도 대부분 중의의 뜻들로 점철되고 시도 은유와 중의가 없으면 앙꼬없는 찐빵이 되는 거죠.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13 10:05
@cgkoh님에게 답글 중의적인 표현.. 개인적으로는 이런 '중의적'인 표현이 '고오오급 유머'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말장난이기도 하고, 깊이 들여다보고 원류를 찾아가다보면 결국 만나게 되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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