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샌디에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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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발보아 파크의 정원. 하지만, 즐거운 시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 부부는 황당한 상황을 맞았습니다. 요즘 도둑들은 자동차 문 따는 수고 따위는 사치로 여긴다 합니다. 제일 약한 부분인 뒷문 작은 유리를 냅다 깨 버린 다음, 손을 넣어 문을 따고, 그리고는 한 몫 살뜰히도 챙겨 갔습니다.
항상 최악의 상황 따위를 상상하며 다니는 저는, 주머니에 이것저것 몽땅 넣고 다녀서 크게 피해가 없었지만, 부인님은 여권, 운전면허 등이 들어있는 핸드백을 통째로 도둑 맞았습니다. 황당함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는데, 일단 정신을 차리고 911을 했습니다… 만, 이런 도난 따위는 911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군요. 그냥 경찰서 웹사이트 가서 신고서를 작성하라 하는 것으로 통화는 끝났습니다.
당장 내일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부인님의 신분증이 없습니다. 퍼뜩 생각난 것은 엘에이 총영사관. 전화를 해 보니, 다행히 일요일에도 전화를 받아 주었습니다. 서둘러서 여권 사진 하나를 가지고 영사관으로 올라오라 합니다. 아… K 공무원, 감사합니다.
미국서 여권사진 증명사진 등등 찍으려면? 약국으로 갑니다. 퍼뜩 생각납니다. 옛날 살던 델마 쪽에 월그린이 있었지. 서둘러 차를 몰았습니다. 울기 직전의 부인님을 달랜다고 이것저것 지껄이고 있는데, 솔직히 제가 더 놀랐고, 뭐라도 말이라도 해야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습니다. 겨울철이지만 샌디에고는 햇볕이 쨍쨍한 봄 날씨 같았는데, 유리조각이 퍼져 있는 뒷자리의 깨진 유리창으로 바람이 슝슝 들어와서인지, 아니면 놀라서인지, 추워하는 듯한 부인님을 위해 자동차 히터를 올립니다. 그렇게 급하게 찍은 여권사진, 잘 나왔는지 아닌지는 알 게 없죠? 알아보기만 하면 되지…
LA 총영사관은 코리아타운 한 복판인 윌셔가에 있습니다. 예전에 한 번 가 본 경험이 있어서 수월하게 찾아 들어갑니다. 늦은 시간이지만, 연락 받고 출근해 주신 영사관 직원분께서 친절하게 맞아 주십니다. 역시나 최악의 상황을 항상 상정하는 쪼잔한 마인드의 제 아이폰에 담겨 있는 여권 사본과 기타 등등 신분 증명 서류 덕분에, 여행 증명서를 무사히 발급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행 증명서는 생긴것은 꼭 여권처럼 생겼는데, 페이지 숫자가 적고, 유효 날짜가 짧습니다.
무사히 신분증을 발급받고 보니, 저녁 늦도록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어 갑자기 허기가 몰려옵니다. 이제 한 숨 돌렸구나 싶으니 다시 입맛도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엘에이 오면 꼭 먹어야 하는 북창동 순두부집을 들어갑니다. 뜨신 국물이 속에 들어가니 그래도 살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급히 세면도구와 속옷 등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마지막 일박을 한 후, 마지막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도둑놈은 도둑놈, 우리는 마지막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야죠? 다운타운 샌디에고에서 긴 다리를 건너서 코로나도를 방문했습니다. 샌디에고 관광에서 꼭 방문해야 할 곳입니다. 코로나 섬이라서 코로나도인가? 그건 아니고 Coronado 입니다. 이곳에서 다운타운 샌디에고를 바라보면 아주 근사합니다.
렌트카 하면서 보험을 든든하게 들어둔 덕에, 아묻따 자동차를 스윽 밀어주고 바로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갑자기 샌디에고 법원에서 소환장이 도착합니다.
junja91님의 댓글의 댓글
달콤오렌지님의 댓글
너무 든든한 남푠님 이시네요~! 폰 백업에, 보험에~
부인님께서 더 반하셨을듯~!
발보아파크 정원 사진이 멋집니다~! K-공무원 위력도 고맙네요~ 다음편 소환장 기대 중...
junja91님의 댓글의 댓글
영사관 직원은 정말 너무 고마왔습니다. 늦게라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
높다란소나무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