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대한 글을 읽어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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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에
불교에 대해 말씀해주시는 @코미 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제가 알고 있는 불교 라는 건
그냥 '수박 겉핥기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구나' 하고 체감하게 됩니다.
불교의 그 깊이와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도 모두 정의하고 나열하고 분류하면서
과연 '삶'이라는 게 무엇일지,
'존재'라는 게 무엇일지를 탐구했던 그런 '치열한 모습'이 보이는 것 같거든요.
뼈를 깎는 수행을 거치며 진정 깨달음을 얻고자 하나,
이 정신이 머무르는 거처가 육신이다보니,
이 육신이 살아가는 세상이 현생이다보니,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상만사를 매정하게 모두 끊어내고
깨달음의 길로,
수행으로 길로 과연 향할 수 있을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이런 저런 욕심들이 저를 휘감고 있는 것 같거든요.
하나를 받았으면 하나 혹은 둘을 건내주어야 한다는 생각,
은혜를 입었으면 그에 대한 보답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들이
결국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관점'에서 저를 놓아주지 않는 듯 합니다.
작게는 부모님과 가족, 친한 지인들, 은혜를 입는 여러 사람들..
나 혼자 깨달음을 얻겠다고 이들을 물리고 입적을 한다?
아직은 생각이 짧아서인지,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인지..
그런 선택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환생'이라는 게 있을까?
기억하지 못하는 이전의 삶와 다음으로의 삶이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이라는 생명체로서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생'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름없는 미물로, 흙 알갱이, 한 방울의 물, 공기 중의 어떤 부유물로 지내왔 듯,
사람이라는 생명체로서의 이 시간이 다하고 나면,
다시 이름없는 미물로, 흙 알갱이, 한 방울의 물, 공기로 되돌아가는 게 아닐까요.
의식이 없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기나긴 나날들'처럼,
잠시 사람이라는 몸을 빌어 이렇게 잠깐 '소풍'을 즐기다가,
다시 의식이 없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기나긴 나날들'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보면,
'이 생을 과연 선하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자문을 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그렇기에 선하게 살아보는 게 답이 아닐까' 라고 화답하게 됩니다.
어차피 한 번 살아갈 생인데,
더 멋지고 신나고,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거든요.
그냥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끝.
MoonKnight님의 댓글의 댓글
MoonKnight님의 댓글의 댓글
그걸 또 설명도 해주시니까요
재미있는 얘기 항상 감사드려요 ^^
MoonKnight님의 댓글
종교적인 내용을 떠나 스스로 정신수양을 하는데 있어서 불교만큼 쉽게(흔하게?) 접할 수 있는게 없거든요
일반적으로 종교인의 삶은 절대자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착한 삶을 사는 것인데
불교는 나를 먼저 생각하고 주위가 변해도 나만 중심을 잡고 있으면 된다라는 쪽이라서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사실 그 '답'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또 그 '답'이라는 게 정말 우리들이 생각하는 '답'이 맞긴 한 건지,
무엇 하나 제대로 알진 못하지만, 그 만큼 깊이 파고들어가는 과정 자체에서, 그 동안 모르고 놓이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발견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표피는 '사람'이라고 두르고는 있지만, 그에 '걸 맞는 삶'을 살아오고 있기는 한가.. 하는 부끄러움도 있습니다. ^^;
MoonKnight님의 댓글의 댓글
웃긴게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 제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생각이 부드러워 지더군요
그래서 더더욱 "너희들이 있으려고 내가 있었나 보다.." 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벗님처럼 깊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라서 원초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이 매우 약한 편입니다 ㅎㅎ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MoonKnight 님은 그냥 바로 통과하실텐데 말이죠. ^^;
코미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