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줄펌글 씨리즈#1 푸른알약 - 9. 반복을 발견하는 생각의 도구, 실습편 (1/3) (feat. 윤동주의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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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줄한당 소모임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보다가 싸커라인 게시판에서 같이 읽어볼만한 가치로운 글을 찾아서 다모앙에 소개해보는 것을 기획해보았습니다.
그 시작으로 싸커라인 필명 '푸른알약'님의 인공지능 관련 시리즈물의 챕터 1을 저자의 허락을 구하여 퍼왔습니다. 저자의 설명과 같이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고 작성된 펌글이라는 점 이해해 주시고,내용의 무단 전제나 도용 및 다모앙 이외 사이트로의 전달은 금지되니 관련하여 필요하신 분들은 원문 링크를 통해 저자의 동의를 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음에 양해를 구합니다. 내용이 쉽지 않아 친구와 대화하는 형식을 빌었습니다.)
갈길이 너무 멀어서 바로 들어갈게. 윤동주의 서시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두들 알고 있는 시잖아? 의무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으니.. (뭐 모를 수도 있지). 여튼 이 시를 선택한 건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한 시라서 그런 것도 있고, 이 시가 정말 아름다워서 그런 것도 있어. 이 아름다움은 시인의 정밀한 사고에서 우러나온다고 생각해. 한 번 보자구. (행번호는 인용을 하기 편하려고 붙여둔 거야)
서시
윤동주
1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2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3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4 나는 괴로워했다.
5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6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7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8 걸어가야겠다.
9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감정(정서)가 어느 정도 느껴져. 그런데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면 시를 이해한 게 아니잖아? 그래서 교육과정에서는 그 이유를 밑줄 치고 알려주지. 놀랍게도 지금도 그렇더라구. 해석의 일관성을 위해서인가 싶지만 사실 선생님도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야. 교사용 교육자료에 그렇게 나와있기 때문에 가르칠 뿐이지.
생각을 하려면 대비개념이 반드시 필요했잖아? 그래서 이 시를 해석하려고 개념을 자기의 머리 속에 있는 기존 지식(스키마)에서 가져오려고 할 거야. 그러면 안 돼. 의사소통의 오류가 대부분 여기에서 시작되거든.
여기 사과가 하나 있다고 해보자. 색이 무슨 색인지 상상해봐. 대개 빨간 색이겠지? 그런데 사과라는 말을 듣고 황옥을 떠올린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황옥은 노란 색이니까 우리는 사과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서로 다른 걸 지칭하고 있는 거야. 한 단어나 한 어구에서 부터 이런 어긋남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이후의 논의는 완전히 산으로 가버릴 위험이 커져.
문학 작품의 해석도 작가와 독자의 대화라고 볼 수 있으니까(움베르토 에코) 이런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한 그 사람이 제공한 정보뭉치 내부에서 대비개념을 가져와야 해. 대화를 할 때는 일단 끝까지 들어보자 하는 자세가 이걸 반영하고 있는 거랄까. 시의 해석에서는 이걸 내재적(구조적) 해석이라고 불러.
다시 시를 찬찬히 보면 눈에 들어오는 반복이 4개 있어. 죽음(1, 6행), 바람(3, 9행), 나(4, 7행), 별(5, 9행). 여기에 9행 자체가 두 번 등장, 즉 반복되기 때문에 별과 바람의 관계에 주의가 쏠려. 그런데 3행에도 바람이 등장하기 때문에 바람을 공통점으로 놓고 틀로 정리할 수 있어.
여기서 (ㄱ)의 공백이 발견되고 비로소 별의 대비개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지. 3행에서 바람과 관계가 있는 것은 잎새니까 이걸 (ㄱ)에 채우고 나면 별과 바람과의 관계, 잎새와 바람의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도 대응이 된다는 걸 알게 되지. 정리하면.
바람이 잎새에 불때 시인에게 어떤 정서가 일어나는지는 4행에 표현되어 있지, 괴로워했다고. 반면에 별에 대해서는 ‘노래하는‘ 마음을 가지겠대(5행). 그 노래가 괴로움의 진혼곡(레*엠)이 아니라는 건 6행에서 바로 확인돼, ‘사랑’하기 때문이지. 그런데 이 사랑의 대상이 단지 별이 아니라 모든 죽어가는 것이니까 여기에 잎새가 포함된다는 걸 알 수 있어. 이렇게 말이지.
이제서야 잎새에 바람이 일면 왜 괴로워지는지 비로소 이해돼, 잎새가 죽어가니까. 그런데 ‘괴로워했다’와 ‘노래하는‘은 정서라고 묶으면 하나의 속성이지만 정서의 성질이 다르니까 두 개를 갈라놓을 수도 있어. 이 지점이 속성의 쪼개기에서 오류를 만들기 쉽다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지. 일단 이걸 쪼개보자.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도 일단 주어진 정보뭉치의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시도해야 돼)
정서라고 불리는 속성을 쪼개고 나면 정보공백이 보이는데 앞단계의 속성 간 상관관계를 고려하면 (ㄴ)에 괴로워했다는 정서를 채울 수 있어. (ㄷ)의 공백은 6행의 ‘모든’ 죽어가는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같은 정서(사랑 노래)가 일어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지. 우리는 이 정보뭉치가 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속성1에서 속성2로 넘어가는 것을 시적 화자의 태도 변화라고 알 수 있어. (국어 공부하는 거 아니라면 이 용어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돼) 여기서 1차적으로 정서의 속성쪼개기가 맞다고 볼 수 있어.
ps) 단계별로 최대한 생각을 검증할 수 있도록 쓰다보니 미.친.듯.이. 길어지는 구나. ㅜㅜ 국어수업 하는 줄.. 만약에 이 시리즈를 처음보는데 여기까지 읽었다면 분명히 보통 사람은 아닐거야.. 흥미가 있다면 (링크) 참조. 만약에 링크를 눌러 시리즈를 확인했다면 뭐하는 사람인지 댓글로 꼭 알려줘.. ㅋ
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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