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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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는 마지막으로 갔던 것이 초5쯤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2018년? 그 즈음이겠네요. 역사탐방 체험 때 갔던지라..
그때는 없었는데 2021년 생겨난 사유의 방에는 국보로 구 제78호, 제83호 (지금은 각각 1962-1, 1962-2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반가사유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풍경이 딱 펼쳐집니다.
사실 입구 쪽 통로에서는 꽤 멀리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들어가자마자 압도되는 듯한 느낌이 확 났습니다.
저 사이로 확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나더군요.
왼쪽이 78호, 오른쪽이 83호입니다.
둘 다 이름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인데, 위의 번호를 1962-1, 2 로 각각 붙여서 구별합니다.
좌측에 있는 반가사유상은 1912년 한 골동품상이 데라우치 마사타케 당시 일본 총독에게 바친 것을 데라우치가 당시 조선총독부 박물관(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 입니다)에 기증한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초기에는 신라에서 제작되었다는 설이 우세했는데요. 그러나 전형적인 신라 양식을 띄고 있는 83호와는 양식이 많이 다른 점 등을 토대로, 현재는 백제나 고구려 제작설이 학계에서 우세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 유명한 반가사유상이자, 제가 이번에 사유의 방을 찾아간 이유이기도 한,
국보 1962-2 (구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입니다.
역사 교과서에도 자주 나오고, 흔히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단순히 반가사유상이라 하면, 많은 분들이 떠올리시는 유물이지요.
아까 전의 반가사유상이 왕관을 쓰고, 갑옷을 입은 듯 화려하게 보이던 것과는 다르게 수려한 외모이지만,
그 수려함의 미학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표현해 낸 유물입니다.
이 반가사유상은 신라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많은 설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데요.
우선 이 사진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국보 제 1호, 일본 고류지 목조미륵보살반가상 입니다. 고류지를 광륭사라고도 하는데요.
이 반가상을 자세히 보시면 위의 국보 제 83호였던 반가사유상과 생김새가 굉장히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얼굴의 미소, 큰 귀, 보관의 모양새며 자세와 옷주름...
그리고 이 나무로 된 반가상에 대해《일본서기》에는 623년 신라에서 온 귀한 불상을 이 절에 모셨다는 내용의 기록이 있으며, 재질도 한반도에서만 자라는 적송 소나무인데, 적송 소나무는 지금의 경상도 지역에서 특히 많이 자랍니다. 정밀 분석 결과, 제작에 쓰인 소나무는 봉화군에서 자란 적송이라 하지요.
또 두 상이 쓴 보관은 삼산관(三山冠) 이라 하는데요. 반원 세 개를 이어붙인 듯한 모습의 이 관은 신라에서 제작된 반가사유상에서만 고유하게 발견되는 형태입니다.
이외에도 경상도 지역에서 출토된 다른 여러 반가사유상들과도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등, 여러 학설이 많습니다.
반가사유상은 그 미소가 특징이자, 키포인트입니다.
굉장히 포근하고 인자한 미소는 보는 사람들도 그 이유를 궁금하게 만들지요.
고려청자에 관한 특별전도 열리고 있어서 그것도 관람하였는데, 저는 저 반가상들이 유독 기억에 남았습니다.
지금도 상설전시관 2층으로 가시면 사유의 방에서 전시 중에 있으니, 여러분도 시간이 되시면 한번 쯤 관람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해방두텁바위님의 댓글
Dymaxion님의 댓글
기술적으로는 1번째 반가사유상이 더욱 도전적이고 의미가 있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금속 주조 공법으로 제작을 했는데, 살두께가 얇은 부분은 1~2mm에 불과한,
기존에 유래가 없는 매우 챌런지한 초박형 주조를 시도했고
이렇게 주조를 하다 보니깐 미성형(underfill)된 부분이 나오게 되어서
주조 이후에 미성형 된 부분을 별도로 새로 주조한 후, 이어붙여서 완성했다고 하더라구요.
엑스레이로 찍은 사진을 보니깐 십자가 모양으로 내부의 웰딩 라인이 쫙 보이던데
수작업으로 그걸 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작업이 되어 있던...
2번째 반가사유상은 그보다 50년 정도 후에 제작된 걸로 보이는데
이번에는 좀 안전하게 주조 살두께를 4~10mm 정도로 더 두껍게 해서 한 방에 주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 소설 창작
초박형 주조 시도할 때 아마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을텐데
혼자 할 수 있다고 고집을 피우면서 딱 했는데 보기좋게 실패
아 X됐다 이거 어쩌지 하면서 며칠 밤 새서 고민하면서 해결책 찾고
여러개의 파트로 쪼개서 그걸 손을 달달 떨면서 웰딩으로 이어붙이고
결국 성공! 아 살았다 하면서 사지에 힘이 탁 풀린 장인이
쭈그리고 앉아서 먼 하늘 쳐다보면서 한 숨 푹 쉬었겠쥬
저는 기술 덕후라 그런지 그래서 1번째 반가사유상을 제작한 선배 장인의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에 점수를 더 주고 싶더라구요.
보라돌이님의 댓글
이런글이 많아 질 수록 커뮤니티의 품격이 올라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냥 인생이 풍부해지는 느낌이랄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