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카 vs 디카. 직업사진가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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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앙 모공에 19년 9월에 썼던 글을 옮겨옵니다. 폰카와 디카의 차이에 대한 사용기로 받아들여주시면...
안녕하세요. 사진을 밥벌이로 삼고 있는 사람입니다. 눈팅만 하며 몇 년인데, 익숙한 주제가 나와서 핑계 삼아 모공에 글을 적어봅니다.
저는 15년 좀 넘게 상업사진을 했고요. 주로 인물과 건축사진을 찍습니다. 잡지도 찍고, 광고도 찍었습니다.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은 그쪽 일은 거의 접고 제주도로 와서 동네사진관 사진사로 살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땐 SLR에서 DSLR로 넘어가던 시기였습니다. 잡스의 아이폰이 아마 2007년에 처음 나온 걸로 기억하니까, 그때는 지금과 같은 의미에서 폰카는 없었습니다. 폰카와 디카 사이의 논쟁(?)과 비슷한 상황이 그때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있기도 했었네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는 디카는 어쩔 수 없이 DSLR에 초점을 맞춥니다. 오래도록 써왔고, 그 촬영이 대부분이니까요.
저는 아직도 대부분의 촬영을 DSLR로 하고, 일상적으로는 리코의 GR2를 갖고 다닙니다. 폰카는 점점 비중이 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제 사진에서는 열세입니다. 물론 아내는 폰카를 아주 잘(?) 쓰는 편이어서, 아내가 폰카로 찍는 제주 풍경을 엽서로 만들기도 합니다. A4 절반 크기의 엽서까지는 폰카로 촬영해도 큰 이질감 없이 제작할 수 있습니다.
폰카와 디카의 차이를 몇 가지 생각해 보면,
1.
제게 가장 와닿는 부분은 소통과 표현의 차이입니다. 아이폰의 발명 이후로, 이전까지 문자언어가 담당하던 소통의 기능 중 많은 부분을 이미지언어가 대체했습니다.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이미지 중심의 SNS에는 문장 하나 없어도 타인의 일상을 충분히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내 소식, 감정을 전하고 공유하기 위해서는 장황한 텍스트가 필요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지요. 폰카는 그런 이미지를 통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든 가장 큰 공헌을 했습니다. 언제든 찍고, 가볍게 찍고, 바로 업로드 가능하니까요.
그에 비해서 DSLR을 쓰면 좀 다릅니다. 우선 촬영 장비 자체가 크고 무겁지요. 1. 촬영하고 2. 컴퓨터로 옮기고 3. 필요한 후보정을 하고 4. 업로드합니다. 촬영과 업로드 사이에 두 단계가 더 들어갑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번거로운 작업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수고를 감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순한 소통 말고, 뭔가 내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런 쪽인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소통의 목적보다는 표현의 의지에 가깝습니다. 표현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내 의도를 개입시킬 수 있는 공간이 많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에는 DSLR이 폰카보다 더 많은 여지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2.
표현.에 보충되는 부분인데, DLSR이 가지는 풍부한 조작성이 있을 겁니다. 렌즈 교환을 통해서 화각을 바꿀 수 있지요. 화각은 단순히 넓게 찍고 멀리 당겨 찍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화각마다 이미지 문법이 약간 달라집니다. 광각에서는 화면 안에 있는 원근감이 과장되는데요. 멀리 있는 것은 아주 멀게, 가까이 있는 것은 아주 가깝게 찍힙니다. 그리고 그 멀고 가까운 것 사이는 엄청난 속도감을 가지는 직선과 곡선이 채우지요. 과장과 속도감. 이것이 광각의 특징입니다. 현대의 다큐사진에 많이 보이는 형태인데요. 빠르고 사건 많은 시대에 어울리지요. 폰카의 기본카메라는 대부분 광각 계열입니다.
망원은 좀 다른데요. 한 놈만 팬다.는 전설(?)처럼, 망원은 대상 하나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묻습니다. 다른 건 돌아보지 않지요.
표준화각이라고 부르는, 우리 눈의 원근감과 가장 닮았다는 화각은 이야기가 좀 더 복잡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선 빼겠습니다.
DSLR은 다양한 화각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 원하는 이야기에 가장 적당한 화각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물론 폰카도 앞으로 다양한 화각에 대응하게 되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DLSR의 압승입니다.
3.
화질 부분은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차이입니다. 스냅용으로 GR2를 쓰는 이유도 작은 외형에 비해 큰 CCD 사이즈 때문입니다. 직업이니까, 언제 어떤 사진이든 혹시나 잡지나 인쇄용 원고로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사진은 최소 A4 사이즈로 인쇄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준비합니다. 그럴 경우 폰카는 조금 위험한 선택입니다. 웹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원본 이미지로만 쓴다면 A4 정도는 어떻게 커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후보정까지 생각하면 조금 걱정이 됩니다. 물론, 예전 아이폰 사진을 광고할 때, 애플에서는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으로 지하철 역을 도배하곤 했었습니다. 가로 4미터, 세로 1.5미터 가까이 되는 사진들은 모두 아이폰으로 찍은 것인데 그 감동은 전혀 문제가 없었지요.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뭉개진 디테일과 계단처럼 꺾이는 명암 계조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4.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DSLR의 장점 중에 큰 부분은 뷰파인더입니다. 폰카를 쓰면서 개인적으로 어색하고 어려운 부분은 화면 구성입니다. 폰을 켜고 사진을 찍으면 화면 가득 장면이 잡힙니다. 그러면 폰의 테두리만큼, 딱 그만큼의 프레임을 빼면 그냥 시선의 확장이고 연장입니다. 저는 그게 참 어색합니다. 하지만 DSLR을 들면, 내가 보는 화면을 제외하면 까만 세상만 남습니다. 그러니까 까만 세상 속에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는 사각의 프레임. 그건 좀 다른 세상입니다. 일상이라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기분이지요. 남들이 모르는, 나한테만 보이는 비밀스러운 장면을 발견한 기분이 사진을 찍는 쾌감 중에 큰 부분입니다. 이게 폰카에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진으로 산책갈 때는 여전히 DSLR을 메고 45mm, 20mm 단렌즈 두 개를 챙깁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세는 폰카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 글에서 다른 분들이 지적하셨듯이, 디카의 시장은 점점 줄어갑니다. 저처럼 직업으로서 장비가 필요한 사람은 계속 있겠지만 소수겠지요. 산업은 시장의 크기에 따라 투입되는 연구개발 역량이 달라질 겁니다. 폰카에 대한 발전은 당분간 계속 가속될 테고, 지금까지 전문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사진의 많은 부분이 폰카로 감당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지금 당장은 폰카와 디카의 성능이나 활용도가 다툴 여지를 남기는 수준이지만, 머지 않을 것 같습니다. SLR과 DSLR의 논쟁이 철지난 이야기로 들리는 걸 보면 말이지요.
좀 장황하네요. 새벽에 보고 괜히 주제가 반가워서 생각도 정리해 둘 겸, 적었습니다. 좋은 추석 되세요. 촬영 때문에 고향도 못가고, 제주도 사진관에서 씁니다.
MoBe님의 댓글의 댓글
꿈꾸는식물님의 댓글
지금까지도 가방에 35미리를 물린 풀프 한대를 넣고 다닙니다.
저는 직업 사진가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 공감되네요.
이제는 한번 찍고 후작업하고 하는 작업들이 점점
번거롭고 피곤해지는데 그래도 진중하게
뷰파를 들여다보는 진지한 재미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특히 중형 필름카메라 펜탁스645n 도 가끔 운용하는데 사진 한장 찍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이
즐거운 작업이기도 합니다.
필름값이 비싸서,,, 한장 찍을려면 아주 오래 구상하고 준비해야죠..
ㅠ..ㅠ
MoBe님의 댓글의 댓글
나의아저씨님의 댓글
저도 핸드폰으로 찍을때와 dslr로 찍을때 구도가 달리 느껴지더라고요..
뷰파인더로 나만의 세상을 보는게 좋습니다.
MoBe님의 댓글의 댓글
에티님의 댓글
MoBe님의 댓글의 댓글
찰스님의 댓글
특히 4번의 경우,
사실상 모바일로만 사진을 소비한다는 기준으로는
dslr과의 차이는 심도밖에 없는데
왜 사진기를 포기하지 못하나...
그 이유가
뷰 파인더로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봐요.
MoBe님의 댓글의 댓글
이사사님의 댓글
MoBe님의 댓글의 댓글
이사사님의 댓글의 댓글
하얀소망님의 댓글
같은 시각, 같은 장소, 거의 같은 환경에서 찍은 미러리스 크롭바디의 사진과 폰카의 사진은 너무 달랐습니다. 삼성 폰카는 채도가 높고 샤프니스가 과하게 느껴집니다. 애플 폰카는 색감은 자연스러운데, 역시 작은 촬상면은 어찌할 수 없더군요. 재현해내는 색의 범위도 폰카의 색상과 미러리스 풀프의 색상은 차이가 있더군요.
아무리 AI로 아웃포커싱을 구현한다 해도, 풀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공간감은 아직 못 느끼겠더군요.
괜시리 눈이 DSLR에 먼저 적응해 버리는 바람에, 폰카는 금세 한계를 느끼는 눈이 되어버리고 말아서, 참 불편합니다.
진지하게 찍고 싶을 때는 소니 A7시리즈 풀프에 35mm와 28-75 2.8을 들고 나가고, 가볍게 찍고 싶을 때는 캐논 M50에 22mm 물려서 나가곤 합니다.
MoBe님의 댓글의 댓글
MB18NOMA님의 댓글
5번의 경우
지금은 사진을 감상하는 소비자의 도구가 대부분 폰이기 때문에 dslr로 찍은 세로 사진을 가로 모드 폰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작아져 촬영자가 의도한 세부묘사를 제대로 볼 수 없어 안타까울 때가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GXR A12 28미리와 A12 M마운트에 50미리 렌즈를 물려서 찍은 사진들이 참 좋았습니다. 그 기억으로 GR2를 들였는데 적응이 안 돼 서랍속에 썩히고 있습니다.
MoBe님의 댓글의 댓글
좀 다른 이야기지만, 프린트가 작은 해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조금 큰 크기로 프린트하셔서 벽에 한 번 붙여놓고 보면, GR2 다시 꺼내고 싶은 마음이 뿜뿜 하실 수도...;;
MB18NOMA님의 댓글의 댓글
돼지도살자님의 댓글
어쩔수없는 시대의 흐름이지만, 점점 사진/카메라 시장이 쪼그라드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ai 기술이 포토샵에까지 들어오게 되고 상상도 못했던 수정까지 가능해지다 보니
이젠 내가 뭘 어디까지 보고 믿어야 하는지 감도 안잡히네요.
게다가 ai가 이런 속도로 발전하게 되면.. 어지간한 피팅모델, 쇼핑몰 포토들 설 자리도 곧 빠르게 없어질것같기도 하고요
'있는 사실 그대로를 기록한다' 라는 의미에서 상업사진 자체가 사라질 일은 없을것같지만
저같은 핫바리들이 나눠먹을 파이가 점점 줄어들다보니..ㅠㅠ 물론 모든 업계가 그렇둣이 잘 버는 사람은 계속 잘 벌겠죠
지금도 제주도에 계신가요? 코로나 터지고 해외에서 활동하던 촬영자들 제주도로 많이 넘어갔다는 소문까진 들었었는데
요즘 사정은 어떤지도 궁금하네요
얼마전 동네에 작은 스튜디오를 처음 오픈하고 테스트촬영 데이터 컨버팅 하다가 넋두리같은 댓글 한번 남겨봅니다.
MoBe님의 댓글의 댓글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얼마 전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AI시대가 어쩌면 사진관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든 나를 쉽게, 심지어 나보다 더 멋진 나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니까 역설적으로 진짜 나를 확인받고 또 지난 내 삶을 긍정해주는 시공간의 경험이 가치를 얻을 것 같습니다. 사진관은 그런 방향으로 간다면 어쩌면 좋은 파도에 올라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빛님의 댓글
사진찍는개발자님의 댓글
본인 찍은 사진 감상하는 걸 좋어해서 폰카 화질은 제겐 별로여서 여전히 바디, 렌즈 투자를 최선으로 합니다.
Winnipeg님의 댓글
분명히 느낌은 너무나 다른데 전문직이 아니면 이게 또 굉장히 번거롭네요. 또 고민고민...